
청년은 국가의 거울이자, 미래의 설계도라는 말이 있다. 청년의 삶의 질은 한 사회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꿈과 미래의 출발선에서부터 수많은 '빚의 굴레'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흔히 우리 청년들에게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이라는 멍에가 씌워진다. 힘들게 졸업하더라도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남아 있던 대출금에 더해지는 월세 보증금 대출이 기다리고 있다. 한 달 소득의 절반 이상이 고정비로 빠져나가는 사이 부족한 생활비, 자기계발에 또 대출이 따라붙는다. 부채가 청년세대의 일상적 조건이 되면서 새 삶을 향한 도약이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 더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나라 39세 이하 평균 부채 보유액, 약 9천425만 원
2024년 통계청이 실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9세 이하 평균 부채 보유액은 약 9천425만 원에 달한다. 그중 20~29세 청년 가구주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율은 30.4%다. 자산형성의 기반을 다지기도 전에 매우 큰 금융 부담을 먼저 떠안는 것이다.
특히 청년 부채의 60% 이상이 전세금, 월세, 주택담보대출 같은 주거비용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단순히 개인의 경제력이 부족하거나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주거불안, 자산 격차, 정책의 한계 같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 부채는 소비나 주거 선택을 제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도한 채무 부담은 청년들의 자율적 삶의 설계와 사회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에 더해 결혼과 출산, 노후 준비와 같은 장기적 삶의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당장의 생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저출생·고령화와 같은 국가적 위기와도 직결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
‘청년 부채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의 1인당 평균 부채는 1,637만 원에 달하며, 생활비와 주거비 부담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실질적인 마이너스 수입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청년 개인의 경제적 곤경을 넘어 정신건강 악화와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며, 결국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는 심각한 위기로 번지고 있다.
청년 부채가 개인의 소비 행태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공적 투자 부족과 교육 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된 사회적 부채임이 명확하다. 이는 학자금 대출과 같은 필수적인 사회 진입 비용을 개인이 오롯이 떠맡아야 하는 한국 사회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는 중요한 통찰이다.

◆청년 부채, 개인의 책임에서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재정의해야
이제 청년 부채를 개인의 책임에서 벗어나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접근해야 한다. 학자금 제도를 비롯한 청년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하며, 이는 국가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 및 취약계층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 자문위원회는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 부채 악순환, 구조를 바꿔야 끊어진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에선 대출 없이 시작하는 청년기 실현을 위한 기본 자산 패키지 제공 등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기 위해선 구조적 개혁과 실질적 지원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청년 부채, 맥락과 실태 그리고 과제’를 주제로 첫 발제에 나선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 부채가 금융정보 미비·사회적 지지 체계 부족 등 다중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며 “금융 취약성이 신용불량이나 채무불이행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채무조정 등 정책 개입의 신속한 연계 △생애주기에서의 상향 이동을 위한 발판 마련, 대출 없이 시작하는 청년기 실현을 위한 기본 자산(교육·의료·주택) 패키지 제공 등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권의 실현이 자유권 보장의 전제 조건
청년의 불평등한 경제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회권’의 측면으로 접근이 필요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영섭 금융과미래 대표는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서 “고등교육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 전체의 필요이자 권리로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회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핵심으로 하며,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노동 3권,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 등 다양한 권리들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이어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는 모든 인권의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상호연관성을 확인하며 자유권과 사회권의 통합적인 이해를 강조했다”며 “이는 사회권의 실현이 자유권 보장의 전제 조건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인식은 다소 역설적인 측면을 보인다. 2022년 한국 사회 인권 상황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만족도는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나,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안전할 권리’나 ‘노동권’ 등 다른 사회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면서 “이러한 현상은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 자체는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즉, 학자금 대출 등을 통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권리’의 형식적 측면은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받을 권리’의 중요성에 대한 낮은 인식은 고등교육이 개인의 사적 투자로 강하게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등교육이 주로 개인의 성공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만 강조될 때, 그 공공재적 성격과 사회권적 함의는 간과될 수 있다”며 “이는 고등교육이 개인 간의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흐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만약 교육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여겨진다면, 학자금 부채와 같은 재정적 부담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되어버린다”고 꼬집었다.
한 대표는 “학자금 부채는 고등교육이라는 사회 진출 관문에서 발생하는 필수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게 만든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사회적 부채’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의 사회권 확대를 위해 △학자금 대출 원금 일부 또는 전부 감면 등 포괄적 채무감축 방안 △대학 무상교육 전환 △한국장학재단을 학생복지재단으로 개편 등 모든 청년이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자금 대출, 중금리 수준에서 점차 낮아져 1.7% 유지
한편,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학자금 대출 지원이다. 과거 한국의 학자금 지원 제도는 ‘빚’ 중심의 대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그러다 2012년 장학금 지원을 전면적으로 시행했고 전환의 계기가 됐다.
한국장학재단 통계에 따르면 국가장학금 규모는 2012년 약 1조 9,000억 원에서 2022년 약 4조 6,200억 원으로 증가했고, 학자금 대출도 2011년 2조 8천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1조 6,050억 원 수준으로 공급이 줄어 들었다.
초기 학자금 대출 제도는 서민층의 고등교육 이수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으나, 대출 이자율이 7.65%으로 중금리 수준이였던 것이 점차 낮아져 1.7%로 유지가 되었다. 참고로 공무원연금의 학자금대여사업, 군인연금 학자금 대여제도, 사업연금 학자금 대여사업은 모두 무이자로 시행되고 있다.
한영섭 대표는 “이러한 정책 과제들은 단순히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모든 청년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수적”이라면서 “청년 사회권 확대는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국가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회생 기회를 잃은 청년, 고령의 정부 부양자로 남아
이어진 토론에선 채무감면을 넘어, 청년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회생 중심 채무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순덕 롤링주빌리 상임이사는 “회생 기회를 잃은 청년, 고령의 정부 부양자로 남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장기 연체자의 회생을 돕기 위해‘배드뱅크’제도를 도입했다”면서 “한마음금융, 희망모아, 신용회복기금, 행복기금 등 여러 사업이 운영됐지만, 실제 초점은 채무자의 회생보다는 채권 회수에 맞춰져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청년층이었던 채무자들은 소득 기반도 없이 장기 추심에 노출되었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실적 중심 운영 아래 회복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그렇게 회복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은 고령에 이르러 노동이 아닌 복지 예산에 의존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정부의 부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임나연 연구위원은 이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형성 및 저축지원 제도는 가입과 활용이 복잡하고, 중간 소득층이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핵심 정책의 통합 및 혜택 유형 명확화, 모든 청년 정책의 가입경로 및 Q&A를 제공하는 일원화된 플랫폼 구축, 자산 축적의 현실을 반영한 소득·자산 기준의 탄력적 설계, 정책 성과 및 데이터 확보를 통한 실질적 개선 방향 도출, 기본 금융교육과 맞춤형 상담 창구 마련과 더불어 주거 안정, 양질의 일자리 창출 병행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수민 상임이사는 “청년 부채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꾸준히 지적된 사회적 문제”라면서 “청년 생활 경제 데이터(가칭) 구축과 청년의 생활·경제 문제의 정확한 진단과 해결을 위한 보편적 재무 상담, 명확한 금융 활용을 위한 경제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등 청년 부채 관련 부처 간 적절한 역할 분담과 통합, △청년의 자산형성이 아닌 자본형성으로의 전환 등 패러다임 전환, △미래 적금, 배드뱅크 등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 등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