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내외 경제 침체 불안과 '트럼프발 관세'까지 더해지면서 상반기 국내 유통시장은 소비 위축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소매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켰고 온라인·오프라인의 성장 격차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배송 서비스 강화로 온라인 채널이 급격하게 성장한 반면, 오프라인 채널인 편의점과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 2월,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해당 월 전체 유통업체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4.4% 증가했지만, 순수익은 되레 줄었다. 또 온라인 채널은 16.7% 증가했고, 오프라인 채널은 7.7% 감소했다.
오프라인 채널 중에서는 대형마트가 18.8%로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으며 △편의점(-4.6%) △백화점(-3.6%) △준대규모점포(-1.2%) 순으로 모두 역성장했다. 대형마트의 경우 스포츠 카테고리가 31.3%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이어 △의류(-23.6%) △생활(-22.5%) △잡화(-21.5%) △식품(-19.7%) 순으로 연이어 줄어들며 매출하락의 원인이 '절제된 소비 시장' 이라는 정답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로 꾸준하게 매출을 신장해 온 편의점의 부진은 주목할 만하다. 유통업계는 편의점이 올해 4.6% 감소한 것은 점포 출점을 통한 성장이 제한과 소비 경기 악화에 따른 집객력 감소를 원인으로 관측했다.
이에 대해 남성현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편의점은 실질적으로 점포 출점을 통한 성장 여력이 낮아지고 있다"며 "산업 성장이 제한되는 구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비관적 실적이 소매시장과 편의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내 대형마트는 다양한 규제로도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업계를 괴롭히는 대표 규제로 지목된다.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등 대규모 유통시설의 입점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휴업과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배송 규제도 함께 받는다. 심야 시간은 물론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금지돼 있다.

◇정부의 대형마트 정책 인식은 '비몽사몽'...규제에 발묶인 유통업계는 '哭소리'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양극화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주 요인을 '온-오프라인 독점 체인화'라고 부른다.
극소수의 메이저 플레이어(Major Player)가 시장을 장악하는 반면 마이너 플레이어(Minor Player)는 설 자리를 잃는 ‘양극화 현상’이 유통업계에서 심화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여파로 소수의 대기업 중심 온라인쇼핑 플랫폼에 고객이 쏠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채널도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소수의 대기업 중심의 특정 업체로 고객들이 몰리면서 선두 독주 체제가 고착화하는 상황이다.
이에 이마트, 롯데마트, 코스트코 등 오프라인 대형마트들도 온라인 배송 서비스 강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배송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마트는 1시간 내로 즉시 배송해 주는 '퀵커머스' 진출을 추진 중이며 롯데마트는 '제타'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하는 등 온라인 배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한해 소매시장에 영향을 미친 주요 지표들을 살펴보면 2022년~2023년 초까지 5~6%를 넘나들었던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2024년 들어 2%대로 내려왔다. 올해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매우 높은 상태이다. 마트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선식품, 가공식품 물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올해 대비 2024년 국내 대형마트 시장은 전년대비 약 0.5% 하락한 23조 5,000억 원 규모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업 대형마트 기준) 대형마트 업계는 2020년 이후 지속적인 매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3년 0.5% 소폭 성장하긴 했지만, 전년도에 7.6%나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기저효과도 거의 없다.
이 와중에 대형마트 및 유통업계 심화 현상을 부축이는 또 다른 변수는 정부의 규제가 손꼽힌다. 대형마트(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의무휴업일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통업계 및 소비자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다시 붉어지고 있다.
2013년 도입 이후 13년째를 맞은 해당 제도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논의되면서 유통업계를 둘러싼 논란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고 있다. 정부·여당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해 대형마트 휴무일을 ‘공휴일’로 고정하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자율 지정 권한을 없애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통업계는 "시대를 역행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정치권 내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지자체 판단에 따라 둘째·넷째 주 평일 중 하루를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였던 2013년에는 공휴일(일요일)을 기준으로 월 2회 쉬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후 자치권이 확대되며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상당수 매장이 평일로 옮겨갔다.
그러나 국회에선 ‘공휴일 고정’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마디로 일요일마다 마트 휴무일을 고정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심사 중이다. 업계는 ‘공휴일 휴업’이 소상공인을 보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한다.
‘대형마트 공휴일 고정' 논란에 수혜자는 소상공인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며 "이를 명확히 제도화하는 입법 추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도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은 유통재벌로부터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고 노동자의 건강권,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장만 보는 곳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 됐다”며 “공휴일 규제가 다시 강화되면 고객 불편은 물론, 협력사 납품 일정과 물류 운영에도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대형마트 규제를 강화해도 소비자는 전통시장으로 가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이 실질적인 수혜를 입는다”며 “이런 구조에서 오히려 피해를 보는 건 마트 안에서 장사하는 약국, 안경점, 제빵점 등 소상공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이마트는 전체 156개점 가운데 63개점이 평일에 휴업하고 있고, 롯데마트는 전체 111개점 중 39개점이, 홈플러스는 126개점 중 50개점이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문을 닫고 있다.
유통 연구계는 이번 논란은 결국 정책이 현장 중심에 따른 변화로 봐야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 유통협회 관계자는"대부분 평일에 일하는 소비자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대형마트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장을 보는 것을 넘어 외식, 쇼핑, 아이들과의 외출까지 겸하는 생활 공간이 된 지 오래다"라며"정치가 유통 현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그 공백을 메우는 건 결국 소비자의 불편이다"라고 말했다.
◇"역행하는 유통정책은 발전없어"...대형마트·백화점 줄도산에 정부는 '곤욕'
매년 유통산업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넘어가면서 유통가 경쟁이 심화해 타격이 컸다. 1인 가구 등의 영향으로 소비 패턴까지 바뀌면서 매출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단적으로 3월에는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사실상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경쟁사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내 대형마트업계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올해 공격적인 할인 행사와 신규 점포 개점, 기존 점포 리뉴얼 등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238% 늘리며 8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마트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강조한 ‘본업 경쟁력’ 강화 전략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작년 기업형 슈퍼마켓(SSM)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편의점인 이마트24의 통합 매입 체계를 구축해 원가 절감과 수익성 개선에 나섰다. 또 지난 2월과 4월에는 ‘트레이더스 마곡점’과 ‘푸드마켓 고덕점’을 열었다. 2027년까지 3개의 점포를 추가로 열겠다는 구상이다.
경쟁사 롯데마트는 △매장 리뉴얼 △신선 및 자체 브랜드(PB) 상품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한다. 영국의 글로벌 리테일 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업해 온라인 그로서리(식료품) 사업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 1월 ‘천호점’을 6년 만에 개점한 데 이어 상반기 안으로 ‘구리점’ 개장도 준비하고 있다.
대형마트 유통업계들은 위기에 직면하며 발빠른 준비로 매출 정상화를 이루고자 분주함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3사(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폐쇄한 점포만 25곳으로 지난해에만 7곳이 문을 닫았다. 유명 백화점들도 재작년부터 서서히 문을 닫으며 '쇼윈도 쇼핑'은 옛 말이 됐다. 백화점업계도 양극화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은 명실상부 국내 톱3 백화점이지만, 이들이 운영 중인 모든 점포의 매출이 순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백화점 안에서도 점포별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4년 유통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백화점 중 상위 10개 점포가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했다. 반대로 하위 10개 점포의 매출 비중은 3.5%에 그쳤다. 강남 신세계백화점과 여의도 더현대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등 수도권의 몇몇 최신·초대형 점포에만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지방 중소규모 백화점은 영업을 이어가기조차 힘들다. 이른바 ‘백화점의 지역 양극화’가 심화한 것이다.
그러나 불황 속에서 일부 백화점이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엔 대형 점포의 집객력이 있었다. 백화점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패션 카테고리의 부진에도 연매출 1조원 이상 대형 점포들은 F&B(식음), 팝업스토어 마케팅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며 10%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등은 올해도 3조원을 웃도는 연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백화점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오는 21일부터 지급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백화점에서 사용이 제한된다는 부분이다. 백화점은 코로나19 당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도 제외되면서 매출 부진이 심화했다. 또 일몰 예정인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연장 없이 폐지될 경우 고가 상품이 많은 백화점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모 백화점 관계자는 “유통업은 시장 점유율이 높을수록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인프라 구축에 선제 투자한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 간 격차가 특히 큰 업종”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선두업체는 독과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투자를 해야 사업을 영위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사업 자체를 영위하지 못해 중간의 입지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이커머스 양극화는 '돈 넣고 돈 먹기'...중국 플랫몸에 덜미 잡힐까 '물량 벌크'
가장 큰 문제는 국내서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장악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로 불리는 중국 ‘크로스보더’ 플랫폼이 최근 한국 시장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배경들이 대형마트의 '매출 꼬리'를 잡는 '타격 히터'로 부각된다.
크로스보더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의미다. 해외 상품을 싸게 들여와 팔거나(직구) 국내 생산자 상품을 해외에 판매할 수 있도록(역직구) 도와주는 플랫폼을 말한다. 중국 쇼핑 앱의 최대 무기는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격’과 ‘상품 구색’이다.
고객들은 저렴한 '묻지마 상품'에 환호하고 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뜻으로 ‘알리지옥’ ‘테무지옥’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해외 직구 방식으로 판매자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니 사실상 무관세 혜택을 받고, KC인증(안전 인증) 의무도 면제받는다. 무료배송·무료반품 정책까지 동원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에 국내 업체도 온라인 심화 작용 저하를 위해 '물량 공격 태세'를 준비하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지난달 기준 약 3211만 명으로 전월(3183만 명) 대비 약 0.9% 증가했다. 대한민국 전 국민 5000만 명 중 절반 이상, 5명 중 3명이 매월 쿠팡을 이용하는 셈이다. 쿠팡 유료 멤버십인 ‘와우’ 가입자 수도 1400만 명에 이른다. 쿠팡이 와우 월회비를 8월에 기존보다 2배 가까이(4980→7890원) 올렸지만, 그에 따른 고객 이탈 상황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 월회비 인상에도 고객들이 쉽사리 탈(脫)쿠팡을 못하는 것이다.
또 이커머스업계의 쿠팡 쏠림 현상은 티메프 사태를 겪으면서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중소 유통플랫폼들은 연쇄 도산을 하고 있다. 가구, 가전제품 전문 유통플랫폼 알렛츠(ALLETS)가 8월 말을 “부득이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폐업했다. NHN도 국내 최초 디자인 상품 쇼핑몰 1300K를 비롯한 4개 플랫폼도 지난달 30일 영업을 종료했다.
특히 H&B(헬스앤뷰티) 편집숍은 1위 사업자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CJ올리브영이 시장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자랑했던 글로벌 뷰티 편집숍 ‘세포라’는 5월 한국에서 철수하는 수모를 겪었다. 신세계백화점 계열 ‘시코르(CHICOR)’도 겨우 전국에서 2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뷰티 로드숍 브랜드 ‘더페이스샵’, ‘네이처컬렉션’을 운영해온 LG생활건강도 가맹사업 철수를 선언한 상태다.
한편, 한국과 비슷하게 공휴일에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했던 다른 선진국은 최근 소비 패턴 변화에 맞춰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1956년 상점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상점폐점법'을 제정했던 독일은 2006년 이후 대부분 주에서 제약을 풀었으며, 프랑스는 2016년 일명 마크롱 법을 통해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 제한을 완화했다. 일본도 소규모 점포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점포 영업을 제한하는 백화점법을 1937년 시행했지만, 논란으로 2000년에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