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과자 하나를 사도 2000원 이하가 드물다... 내용물도 줄어든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올랐지?”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는 A씨는 슈퍼마켓에서 가공식품의 원 가격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고물가에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서민 입장에서는 라면·빵·과자·음료 같은 가공식품 가격을 급격히 올랐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지출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최근 한국은행이 6월 중순 발간한 ‘가공식품 생활물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가공식품 품목 중 53개(75%)가 가격이 올랐다. 보고서에는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던 시기에 가공식품 가격이 다수 인상됐다”고 적혀있다.
서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12.3 계엄 사태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정부의 가격 감시 기능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식품기업들이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는 점이다. 6.3 조기 대선으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고물가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재명 정부의 '물가 잡기' 압박...'반값 세일'로 답한 식품업계 얼마나 갈까
실제 6월 소비자물가지수(2.2%)가 다시 2%를 넘어서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가공식품(4.6% 상승)이다. 특히 커피(12.4%)와 햄·베이컨(8.1%), 라면(6.9%)의 상승 폭이 컸고, 라면은 21개월 만에 최대로 올랐다.
정부는 물가 잡기에 나서면 식품기업들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유통업계는 여름철 할인행사에 나서는 등 알아서 기는 전략을 앞다퉈 내놓기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7월 4일 식품·유통업계와 간담회를 열었고 농심, 오뚜기, 삼양, SPC, CJ제일제당 가공식품 할인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농심과 동서식품 등 일부 기업은 이미 대형마트 등에서 할인행사를 시작했고, 다른 기업들도 7월 중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라면과 빵, 커피·음료, 아이스크림 등의 할인행사에 들어간다. 할인율이 10%에서 최대 50%에 달하는 이른바 ‘반값 세일’ 소식에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소비자들은 일단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과거 정부는 가격 급등기에 물가 안정을 위해 다양한 할인행사를 진행해 온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작황 부진과 상관이 없는 라면과 과자, 음료 등 공장에서 생산하는 가공식품은 한 번 판매 가격이 정해지면 좀처럼 가격이 내려오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보여주기식 할인행사는 오래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국가통계포털(KOSIS)를 통해 소비자물가지수 중 가공식품 연간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2001년 이후 24년 동안 가공식품 지수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통업체의 라면 가격이나 과자·음료 값을 내릴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결국 할인행사로 7월이나 8월 물가 상승률을 잠시 진정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미 많이 오른 가격표는 2개월 뒤에는 ‘원상 복귀’된 금액으로 팔릴 것이다.

소주·맥주 등 주류의 외식 가격은 또 어떤가. 주류업체들이 소주나 맥주 가격을 올렸지만, 식당이나 술집에서 파는 소주·맥주 가격은 7~9개월간 내렸다. 자영업자들이 줄어드는 매출을 잡으려 소주 또는 맥주 한 병 공짜, 심지어 무제한 제공 등 할인행사에 나선 게 가격하락에 원인이다. 한시적 할인행사는 물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한시적일 뿐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근원 물가를 잡는 방법은 원재료 가격에 맞춰 가격을 떨어뜨리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6월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맥(소맥분)의 2025년 1~4월 평균 가격은 2022년과 비교해 22.6% 하락했고, 대두는 무려 41.3% 급락했지만 같은 기간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13.6% 상승해 대비를 보였다. 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원재료 가격 하락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고, 실질적인 가격 인하를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다행인 부분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대로 치솟으면서 이재명 정부가 ‘물가 잡기’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이다. 단, ‘한번 올린 가격은 절대 내리지 않는다’는 유통업계의 법칙이 흔들릴 수 있을 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새 정부의 물가 안정에 대한 의지는 확보해 보인다.
8일 시장분석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코코아와 커피 원두 선물 가격(7일 기준)은 한 달 전 대비 각각 19.87%, 21.01%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폭등했던 코코아 가격이 올해 초 들어서야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아라비카 커피 선물 가격도 지난해 말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뒤 올해 들어서는 가격 내렸다. 7일 기준 아라비카 커피 선물 가격은 1파운드 당 2.85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2024년 7월 9일) 2.47달러 대비 약 15% 가량 높은 수준이다. 물론 커피 유통업체의 실제 커피 품목의 가격과 커피숍의 판매가에 원두 선물 가격이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서민의 지갑은 봉이 아니다... '이윤 추구만이 살 길' 유통업계에게 상생이란?
결론적으로 6월 기준 가공식품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6% 올랐다. 이는 2023년 11월 이후 1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물가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국내 가공식품 기업은 원재료 가격 외에도 제품 가격 인상에 다양한 요인이 있었다고 해명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환율이나 인건비도 제품 가격 인상 배경 중 하나”라며 “원재료는 사전에 비축하는 만큼 원가가 실시간으로 제품 가격에 반영되기도 쉽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통업체 측이 원자잿값이 내려도 가격을 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공식품 업계의 오래된 관습이다”라며, “물가 상승분에 비해 인건비의 비중이 크지 않지만, 원자재의 등락보다는 꾸준하게 오르는 인건비가 핑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충남대 정세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원자재가 오른 만큼만 올려야 하는데 그 이상의 금액을 올리거나 정부 혼란을 틈타 너도나도 이참에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행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리적인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이윤율을 비교 분석해 6개월·1년 단위로 상황을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서민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 반영률만 실시간으로 반영한다면 소비자 불신이 커지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재명 정부가 앞장서서 '생활물가 잡기' 대책에 사활을 거는만큼 이제 소비자도 합당한 권리를 주장해 볼 때가 됐다. 유통업체의 가격 횡보에 서민만 호구 잡히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당장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할인 가격에 물건을 내놓았다고 물가가 안정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소비자는 기회주의적인 유통기업들을 감시하고, 악덕 기업의 물품은 등한시하면 된다. 이윤에 먹고 사는 유통업체는 소비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팔아먹는 데만 급급한 업체는 소비자를 속이는 작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상생을 실천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