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값이 안정되지 않아서, 쌀 산업이 붕괴하거나 전업해서 포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지금도 일본 쌀값이 2~3배 상승해서 난리가 났지 않습니까? 앞으로 기후 위기로 국제적인 흉작이 발생한다든지, 정치적인 이유로 곡물 수입 통제가 이루어지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할 겁니까? 농업은 전략 안보 산업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모두 보조금 주면서 농업을 진흥해요.”
6·3 대선을 앞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16일 전북 정읍시 정읍역에서 열린 유세에서 국가 농업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며, 식량안보를 지킬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 온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동안 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세 차례 추진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비난하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3차례 행사한 이후 법안이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내 쌀값이 기대하는 시장가격에서 폭락 또는 폭등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차기정부 양곡법 처리 여전히 숙제...이재명 "농업은 전략적 안보사업"
양곡관리법은 1950년 2월 정부가 핵심 주곡인 미곡(쌀)의 수급을 관리하고 가격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해당 법안은 정부가 벼를 직접 수매해 자유시장을 거치지 않고 가격을 결정했던 추곡수매제(2005년 폐지)를 시작으로, 정부가 수매한 벼에 시장가격을 도입해 방출하는 공공비축제(현재까지 시행)와 쌀 생산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해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쌀 소득보전 직불제(2005~2020년)로 이어간다.
이후 정부는 쌀값 하락 시 차액을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을 폐지하고, 작물 종류의 제한을 없애는 동시에 타작물 생산 농가에도 경작 면적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익직불제(2020년부터 현재)로 개편해 운영하고 있다.
2020년은 초과 생산 물량이 없어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2021년 ‘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2018~2020) 종료로 인해 쌀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나는 동시에 생산이 급증하면서 쌀값이 급락 조짐을 보였다. 정부의 대응마저 늦어지면서 2022년 들어 쌀값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
당시 쌀값은 역대 최대치인 25%대 폭락을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3차례에 걸쳐 37만t으로 시장격리에 나섰으나, 가격 하락을 멈출 수 없었다. 같은 해 9월 정부가 45만t에 대한 추가 시장격리 조치 발표가 있고 나서야 쌀 가격이 진정됐다.
◇일본 쌀값 대폭등...지난해에 비해 올해 2배나 올라
최근 일본에서 쌀값 폭등 현상이 벌어졌다. 일본 쌀값 폭등을 원인별로 보면 이상고온에 따른 생산량 감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체 식량 증가, 관광객 급증에 따른 쌀 소비증가 등으로 요약된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17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던 일본 쌀값은 이달 12일 들어 처음으로 내려갔다. 이달 4일까지 5kg 쌀 한 포대가 일주일 동안 4214엔에 거래돼, 전주 대비 19엔 하락한 것이다.
현지 매체인 엔애이치케이 월드는 “일본 내 쌀값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여전히 2배 이상 비싸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일본 내 쌀값(5kg)은 지난해보다 2000엔 이상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오사카 내 한 학교는 일주일에 세 번 쌀밥을 제공하다, 현재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였다. 훗카이도 북부 내 한 슈퍼마켓에서는 매대에 가득 차 있던 쌀 포대가 사라지고, 펜케이크가 대신 비치되어 있다고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쌀 가격 안정을 위해 올 여름까지 매달 국가 비축미를 계속 방출할 계획이지만,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교토통신의 여론조사를 인용해 일본 국민 87%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쌀값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또한 일본 국민 74% 이상은 쌀과 기타 식료품에 대한 대미 수입 협상을 언급하며 “현재 진행 중인 미일 관세 협상이 일본에게 유리하게 끝날 것 같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논 재배면적 조정제’ 사업...농민단체 등 적극 반대
우리 정부는 올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통해 쌀 재배면적 8만ha(국가 전체 쌀 재배 면적 72만ha의 11%)를 감축하고, 2023년부터 추진해 온 대표적인 대체작물인 가루쌀 매입 및 제품화 사업을 지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에서 쌀이 과잉 생산되는 가운데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2월 ‘농업전망 2025’ 보고서를 통해 올해 식량용 쌀 예상 소비량은 273만t이며, 2035년에는 233만t까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통계청도 지난해 국민 1인당 평균 식량용 쌀 소비량은 55.8㎏이라며, 관련 조사가 시작된 1962년 이래 절반 가량 줄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가운데 농림식품부는 지난해 12월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강화하며, 참여하는 농업인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벼농사 재배면적을 줄이는 사업에 지자체와 농업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먼저 농식품부는 벼에서 타작물 재배로 전환하는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전략작물·친환경 직불금을 2024년 1865억원에서 2025년 244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타작물 전환과 논 재배면적 자율감축 등에서 성과를 창출한 지자체를 발굴해 공공비축비 매입을 우선 확대 배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이러한 정부 방침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 등 농민단체는 19일 성명을 통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는 자기가 지을 농사를 농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쌀 수급 문제의 모든 책임을 농민에게 떠넘기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벼 재배면적을 강제로 조정하는 농정 쿠데타를 막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정부가 쌀 재배면적 감축 성과를 창출하는 지자체에 공공비축미 매입을 우선 확대 배정한다는 부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경남 사천 시의회는 16일 임시회를 통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 철회 촉구 건의안’을 의원 전원의 동의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대표 발의자인 진배근(국민의힘) 의원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침서에 보면 지자체에서 (벼 재배면적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공공비축미 추곡수매를 감축하겠다는 문구가 나온다”면서 “우리 농촌 현실을 볼 때 노쇠한 연령층, 부녀자 1인 가구 등 악조건만 지니고 있는데, (정부가) 그런 형식으로 농업권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업 영농 후계자들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정부가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며 “(대신) 우리 농지를 더 개발해서, 좀 더 규모화된 농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가루쌀’ 사업...사업성 논란에도 예산은 매년 늘어나
농식품부는 2023년부터 쌀 과잉 생산을 줄이기 위해 전략작물직불 사업의 일환으로 가루쌀 재배를 장려해왔다. 당시 정부는 가루쌀에 대해 물에 불리지 않고 빻을 수 있어 빵·제과의 주원료로 쓰인다며, 수입 밀가루를 대체할 작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사업 시행 지침서를 통해 논에 가루쌀을 재배하는 농업인에게 1ha당 50~430만원의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같은 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국내 식품업계에 쌀가루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내 식품 기업들에게 21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가루쌀 활용 제품화 사업에 나선다.
하지만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가루쌀 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문 의원은 가루쌀은 수발아 현상으로 인해 재배가 힘들고, 글루텐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쌀빵, 쌀과자 등 제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2023년부터 전량 매입한 가루쌀 6900t에 비해 업체용으로 판매된 물량은 30%(2024년 9월 기준)에 불과한 2000t을 기록했다.
특히 문 의원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23년 추진한 가루쌀 제품화 사업에 대해 “15개 기업이 참여했으나, 정부 보조금(총 21억) 수령 뒤 제품 미출시 및 판매 실적 미달 등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식품업계 관계자는 “사업에 참여해 OO제품을 출시했지만, 실적이 미비해 제품을 단종했다”고 밝혔다.
사업에 참여한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루쌀 사업에 대한 지속성, 가루쌀 제품의 높은 생산 단가 등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루쌀에 대한 지속적인 공급 가능성 우려와 밀가루보다 높은 단가로 인한 원가비용 상승 우려 등으로 지속 가능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사업에 지속적인 참여 의사가 없음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가루쌀 정책을 2009년부터 시작해 10년 이상 추진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가루쌀 소비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가루쌀 사업이 2023년부터 현재까지 사이클이 한번 돌았는데, 지금 성과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반응했다.
한편, 2023년 가루쌀 사업을 본격 시작한 정부는 2024년 240억원을 투입해 사업 예산을 확대했다. 예산은 전년(107억원)보다 133억원 늘었고, 올해도 가루쌀 사업에 469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확대된 예산을 통해 ▲가루쌀 재배법 농가 교육 사업 ▲농기계 등 지원 사업 ▲가루쌀 제품화 사업 ▲전략작물직불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