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을 3가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혀로는 맛을, 몸으로는 반응을 그리고 정성으로 애주가가 밤새 술을 마셔도 아침에 숙취가 없는 깔끔함을.” 우리 술 협동조합을 이끄는 정희철(전통주조 예술대표) 조합장의 술에 관한 지론이다. ‘우리 술 협동조합’은 전통 술을 빚는 생산자 30여 명이 작년 10월 경 의기투합하여 올해 1월 창립한 전통술 조합이다.
국내 술시장은 8조 6천200억 원(2008년 매출기준)에 이르는데, 전통주가 자치하는 비중은 4% 정도이다. 그나마 국순당, 장수막걸리 등이 시장의 70% 정도를 점유하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전통주 육성을 위해 팔을 걷었다. 그 뼈대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전통주 제조업체 시설개선과 기술보급, 양조용 원료 품질개선 등에 2015년까지 1천120억 원을 지원키로 한 ‘전통주 등의 산업발전 기본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술을 빚는 생산자들은 지금의 생산구조로는 미래는커녕 당장 생존도 불투명하다는 걱정이다. 미래에 대한 위기감은 경기지역 대표 막걸리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80년 역사의 지평막걸리도 같이 고민할 정도다. 이런 절박함에서 전통주 생산자들이 한 울타리 안에 모였고 멍석을 편 사람이 경기대 조효진 교수다. 조 교수는 3년 전부터 경기대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공동으로 설립한 전통술 교육기관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전통주 제조, 유통 등에 관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강좌를 거쳐 간 수강생은 1만 500여 명이 이른다고 한다. 원래 이 강좌는 외국인, 양주운영자 등에게 한국의 양조문화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술이 그 나라나 지역 문화의 핵심(Core)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강좌가 진행되며 시나브로 강좌가 알려져 현재는 지인, 미인, 주인, 강인 등 4개 과정이 진행될 만큼 반응도 좋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교육을 통해 얻어진 지식은 작금의 전통주 시장이 정부의 지원에만 기대기에는 현실이 너무 절실하다는 위기의 인식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우선 뜻을 같이하는 생산자들 중심으로 둥지를 마련한 것이 우리술 협동조합이다. 현재의 전통주 시장 상황에 대해 묻자, 조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외침 있을 때 관군 기다리다 전쟁 끝난다. 지금은 의병이 나서야 할 때다.”
이런 전통술의 명맥을 잇고 화려한 부활을 기치로 의병처럼 일어선 ‘우리술 협동조합’의 총대를 맨 사람이 정희철(51세) 조합장이다. 법을 전공하여 변호사이기도 한 정 조합장의 독특한 이력도 궁금하여 5월초 물이 좋다는 강원도 홍천의 양조장을 찾았다. 기와를 얹어 지은 전통가옥의 마당에 들어서니 텃밭에서 한창 바쁜 정 대표가 손을 털며 반갑게 맞아 준다. 석류빛 음료수를 나누며 질문을 이어갔다.
동홍천 톨게이트에서 이곳 내촌 물걸리까지 25Km 정도라 20여 분이면 닿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네요. 특별히 산 넘고 개울 건너 이곳까지 오신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틈 날 때마다 처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다 6년 전쯤 여기 와서 살려고 준비했습니다. 옛날 홍천은 산과 물에 둘러 있는 궁벽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궁벽한 곳이 아닙니다. 마을 앞으로 2015년 완공 예정인 내촌IC가 공사 중에 있어 교통은 휠씬 좋아질 것입니다. 오시는 길에 보셨겠지만 내천천이 일급수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초입 동촌리에서 팔(八)열사가 기미(1919)년에 독립만세운동을 벌인 기미만세공원이 있는 충혼의 고장이기도 하구요.
현재는 전통술을 빚고 있지만,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충남대) 교수를 역임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으신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귀농하신 까닭은?
사법고시 치르고 판사 임용을 생각했는데 운동권 전력으로 임용이 안 돼 신림동에서 헌법강의를 했습니다. 1천 페이지 이상 되는 판례집을 뒤지며 준비하고 강의하는 것이 보통 중노동이 아니더군요. 그러다 선배와 인연으로 가족과 떨어져 충남대에서 강의와 지도 등을 하며 밤에 목공 등을 병행하다 과로가 쌓였습니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남들은 밤에도 공부하냐며 농담하기도 했지만 몸을 너무 혹사하여 상태가 심했습니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나 이곳에서 쉬면서 책도 쓸 겸해서 왔습니다,
그러면 술을 언제부터 제조하기 시작하셨나요?
제 고향이 군산 옥구인데 그 지역 쌀이 좋습니다. 그 쌀로 빚은 막걸리를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좋아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들로 막걸리와 친해졌고 처와 함께 7년 전부터 양조장도 다녀보고 인터넷도 보며 틈틈이 술을 담가 보았습니다. 이곳 홍천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조금씩 빚다 작년 3월 주류제조 면허를 받은 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떤 술을 제조하고 있으며, 술을 빚으며 얻는 성취감이라면?
저희는 현재 탁주(만강에 비친달)와 약주(동몽) 2종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홍천 찹쌀과 단호박 누룩을 주원료로 이곳 백우산 자락의 지하암반수로 빚습니다. 이후 저온창고 옹기에서 60일(탁주), 80일(약주) 숙성시킵니다. 알콜 도수 10%인 ‘만강에 비친 달’은 단호박에서 우러난 노란색이 마치 달빛 같아서 그리 이름을 지었습니다. 알콜 17% 도수 약주 ‘동몽’은 술을 통해 서로가 같은 꿈을 꾼다(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술을 개발하는 것은 흥미로운데 사실 양조일은 노동입니다. 하지만 이게 재미지요.
정 대표께서 운영하는 ‘전통주조 예술’과 더불어 ‘우리술 협동조합’ 조합장도 맡고 계신데 조합원들의 기대도 클 것 같습니다. 운영방안은?
저희 조합원들 중에는 4대째 가업을 잇는 지평막걸리, 추사 김정희선생 생가가 있는 충남 예산에서 사과로 와인을 만들어 대상(大賞)을 받은 (주)예산사과와인, ‘2012년 아시아 포럼’ 공식 만찬주인 ‘시인이 만든 술’을 제조하는 전남 화순의 ‘술빚는 마을’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법적인 지식이 있다고 맡기신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전통주 협회 등이 친목적 성격의 운영이었다면 우리 협동조합은 공동이익 실현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술을 고급화하여 용기로 유리병을 쓰고 싶어도 현재는 주문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유리병 제조회사들이 유리병을 최소 10만 병 단위로 주문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희 조합원들이 힘을 모으면 이런 문제부터 하나 둘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합원마다 지역 특성도 강하고 제주도에도 조합원이 있을 정도로 조합원이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고 그만큼 주관도 강하실 것 같은데….
전통주를 제조하시는 분들 중 가양주(家釀酒)로 시작하신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주관이 강하신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은 조합원 모두가 주인이므로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합니다. 그 바탕위에 정보를 공유하고 병을 공동구입하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점차 브랜드와 판매망을 넓힐 수 있는 것이고요. 이와 함께 온라인을 통한 판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반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서 서울과 안동 하회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에 공동판매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력으로 국내에서 기반이 닦이고 명성이 쌓이면 해외 진출의 길은 자연 열릴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에 나비가 찾아오듯 말입니다.
‘우리 술 협동조합’ 조합원의 고민은 거의 비슷해 보인다. 요약하면 “좋은 술은 빚을 수 있다. 문제는 판로이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런 고민의 물꼬를 트기 위해 ‘수수보리아카데미’를 수료한 13명이 십시일반으로 추렴하여 전통술 카페를 연다. 그게 ‘물뛴다(muldwinda.com)’이다. 조금은 낯선 ‘물뛴다’는 물고기가 뛰는 것처럼 밝고 활기찬 ‘발랄(潑剌)’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강에서 뛰는(鳶飛魚躍) 것처럼 자연스럽고 절로 즐거울 것 같아 ‘물뛴다’로 이름을 지은 경기대 조효진 교수를 찾아갔다.
조 교수님은 ‘우리 술 협동조합’ 생산자 조합원도 아니면서 그 어느 조합원보다 적극적인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제가 원래 관광이 전공이고 그중에서도 예약시스템 등 IT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요즘 말하는 ‘슬로시티(slow city)’가 눈에 들어오데요. 당연한 수순처럼 지자체 관광을 생각하게 되었고 향토 음식, 전통술에 천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수수보리아카데미’를 수강하신 분들과 통정하며, 우리 술 보급을 고민하다 ‘물뛴다’라는 공간을 열게 된 것입니다.
위치가 대학 앞이지만 대학생들이 마시기에는 좀 부담(8천원/병)될 것 같은데 기대만큼 잘되고 있는지요?
말씀드린 대로 ‘물뛴다’를 연 목적이 돈 벌 생각보다 우리 술을 일반에게 소개하는 공간으로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운영수익도 우리 술 발전에 쓸 계획이고요. 2011년 개업하여 오래는 안 됐지만 다행히 적자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감사하죠.
화장품협동조합 같은 조합에서는 이루세(eruse), 유틸리티(utiliti) 등 조합 공동브랜드를 만들기도 하는데요. 우리 술 조합에서는 그와 같은 계획은 없으신지요?
전통주하면 보통은 막걸리나 복분자주 정도를 생각하시는데요. 전통주도 약·탁주와 과실주 그리고 증류주 등 3가지로 대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저가 막걸리와 향수(鄕愁)만을 고집한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뒤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주도 다양성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 다양성의 바탕으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전통주 제조법을 과학화, 현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주질(酒質)은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 크지 않은 전통술 카페에서 유명 디자이너인 신연우씨를 점장으로 영입하는 등 열정이 많으신데요. 앞으로 어떤 일을 중점으로 하실 건지?
신 점장님을 모신 것은 우리술 조합 브랜드 통합 작업이나 상표개발 등 이미지 통합 같은 분야에서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양성 위에 통일을 추구한다 할까요? 다양성을 통해 프리미엄급 등 여러 종류의 전통주를 개발하고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저가막걸리를 통한 시장 확대는 한계에 이를 수 있고, 그러면 연못의 물을 퍼내 물고기를 잡는 ‘갈택이어(渴澤而漁)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크게 봐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금전으로만 보지 말아야죠. 각자 이익만 추구한다면 주식회사로 가야합니다. 우리에게는 협동이 자산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술은 와인, 사케 못지 않은 좋은 술이라는 것입니다. 협동조합이 대박치는 사업이 아니더라도 같이 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So cool’ 하게 되고, ‘Sool Coop(술쿱, 우리술 협동조합 약칭)’도 한류의 첨병이 될 것입니다.
최종호 편집위원 / ktchoi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