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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회어 탐구생활

“동료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사회어”

곶감과 수업은 빼먹어야 제맛이고 계란과 호두는 까먹어야 제맛이라는데, 상사와 동료는 없어져야 제맛인 것 같다. 기껏 결재를 해주면서 잘해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 결과가 나쁘게 나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책임을 추궁한다. 이럴 때 상사도 밉지만 옆에서 깐죽거리며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뭐랬니?’ 하는 동료도 못지않게 얄밉다. 혼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것처럼 옆에서 부채질하는 동료가 더 섭섭한 법. 프로젝트 추진할 때는 팔짱끼고 ‘잘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불구경하다가 ‘내가 쉽지 않을 줄 알았지,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구. 내가 맨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거든’ 이라며 뒷북을 친다. 그렇게 잘 알았으면 진작에 팔을 걷어 부치고 말리든지, 아예 수수방관할 거면 책망이나 말았으면 좋겠다. 한발 걸쳐 놓고 있다가 꼭 끝에 가서 선 밖으로 나가 손가락질하는 관객마냥 거리감이 느껴지고 배신감이 든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별로 안내면서 무슨 아이디어가 나오기만 하면 ‘나도 그 생각을 했었어. 내 말이 그 말이야’하며 남의 어깨 위에 올라탄다. 묻어가고 올라타는 동료, 그냥 조용히 따라오기만 하면 좋으련만 짓밟히고 비아냥거리는 통에 열불이 더 오른다. 차라리 혼자 고민하고 혼자 고생하는 게 속 편하지 훈수 두듯 기웃거리는 동료를 품고 가는 일은 정말 약 오르고 속 뒤틀린다.

오해받고 있는지 살피자
불러주지 않으면 이름이 아니고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축복이 아니고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말로 다 하기 어려울 때가 있고 말해봐야 부작용만 낳을 때도 있다. 오히려 어설픈 몇 마디 말보다 할 말 잃은 침묵이나, 주억거리며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 정의 내린 부호가 주는 정교함의 한계 때문에 담으려는 뜻과 달리 수십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위의 상황에서도 화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고 라도 해주고 싶어서 위로랍시고 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청자에게는 비꼬는 것이나 책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데 문제가 있다. 화자는 청자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정녕 몰랐을까? 몰랐다면 센스가 무딘 거고, 알았다면 상대를 뭉갠 거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과 무관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한 게 아니라 스피치를 한 거다. 커뮤니케이션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나누어야 할 말을 나누는 거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염두해 두고 하는 거다. 이제부터 상대가 내 본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면서 말하자.

커뮤니케이션은 내 입 밖으로 말하는 것까지가 아니라 상대가 듣고 이해하는 것까지다. 말만 잘할 뿐 상대에게 무딘 사람은 안 하는 게 나은 말까지 한다. 촉을 세워 내 말이 상대에게 의미가 있을지 살피면서 말하자. 요리책을 본다고 배가 부르지 않고 의학개론서를 본다고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도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언변만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하고 있지만 매번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한국말은 이제 잘하니 영어만 배우면 된다고 덮어둘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어떻게 나누어야 좋을지 유치원생이 자음 모음 배우듯이 신기하게 깨닫고 성찰해야 한다.

성공하면 남의 덕, 실패하면 내 탓
혼자 달리는 것보다 2인 3각 달리기가 어렵고 답답하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엉킨다. 혼자 하는 게 단출하고 몸 가볍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 속담도 속 모르고 하는 소리다. 혼자 들면 금방 옮기는데 같이 들면 찢어지고 펄럭거리고 놓치고 구겨진다. 혼자 하는 게 간단하고 간편하다. 함께 하면 맞추고 나누고 조율하고 오해 풀다 시간 다 간다. 게다가 한 명이라도 사고를 치는 경우엔 나머지까지 덤터기를 쓴다. 우스갯소리로 한 명이 똥을 싸면 다른 사람은 똥을 치우고, 한 명은 냄새를 없애고, 나머지 한 명은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해야 한다지 않는가. 한 명이 사고 치면 그 일을 수습하는 데 세 명이 필요하다. 또 함께 일하다 보면 누구의 공인지, 누구의 탓인지 애매할 때가 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가 실행자를 섭외하고, 다른 동료가 실행을 지원했다면 셋이 다 하긴 한 거다. 누구 한 사람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주식도 성공하면 투자고 실패하면 투기라고 한다. 프로젝트도 성공하면 내 덕이라고 하고 실패하면 남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태도는 한 번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다음번에는 서로 몸 사리게 만드는 원흉이 된다. 이왕 한 거 남 탓 하거나 뒷북치지 말고 서로 끌어안고 미래를 모색하자.

성공하면 창밖을 보고 실패하면 거울을 보랬다. 성공하면 다른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밖을 향해 감사하고, 실패하면 내가 무엇을 보완해야 할까를 안을 들여다보며 성찰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한 것은 앞뒤 안 따지고 밀어부친 동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에 느낀 실패예감을 설득력있게 어필하지 못한 내 문제다. 프로젝트에 실패한 동료가 무능한 게 아니라 그런 동료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내가 무능한 거다. 진정 어깨동무하는 동료라면 ‘거봐’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해야 한다. ‘내가 뭐랬니?’가 아니라 ‘내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해야 한다. 

위로의 정석
진흙탕에 넘어졌다. ‘어서 일어나 나와’라고 한심해하는 친구보다 진흙탕에 몸소 들어와 진흙투성이인 나를 안아 줄 때 진정 위로가 된다. 신영복님의 말처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다. 직장동료의 아픔을 위로해 줄 때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하소연 앞에서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주기는 쉽지 않지만 함께 아파하고 스스로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 일은 할 수 있다. 그 누구의 위로보다 동료의 위로는 생생하다.

회사 속사정을 잘 알고 지금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더 절실하다. 직장동료는 단순히 같은 사무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절친한 친구다. 그 경계선은 같이 망가지며 질펀하게 술에 취할 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마음 담긴 위로를 나눌 때 허물어진다. 점점 개인주의가 되어가는 요즘, 직장에서 동료의 하소연에 괜시리 말 섞었다가 덤터기 쓸까봐 몸을 사린다는 사람이 있다. 참 쓸쓸하고 씁쓸하다. 직장인들이 깨어있는 시간 동안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직장이고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이 동료다.

직장은 제일 많이 마음고생을 주기도 하지만 제일 많이 마음 위로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프로젝트에 실패한 동료를 위로할 때 현란한 묘수가 아니어도 좋다. 똑부러지는 해결책이 없어도 좋다. 밥숟가락도 들 수 없는 기력의 사람에게는 진수성찬이 되려 부대낀다. 그저 그의 초라하고 빈 밥상에 생색 없이 마주 앉아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지 모른다. 그저 곁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주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이제 앞으로는 어깨 너머로 어설프게 훈수 두기보다 곁에서 진심으로 토닥여주자.



지윤정
(주)월토피아 대표
월토피아 평생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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