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전쟁양상은 하늘, 즉 공중을 장악해야 승리할 수 있다.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을 보더라도 공중을 지배하지 못하면 비참한 패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3차원으로 하늘을 나는 전투기나 폭격기 등에게 지상에 있는 탱크 등의 장비는 한낮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공군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상대국보다 더 성능 좋은 전투기 등을 보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공군이 보유하고 기종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F-5, F-4 등은 생산된 지 30년이 넘어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서 이미 수명이 다해가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교체가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공군은 과거 한국형전투기사업으로 도입한 KF-16과 최근에 도입한 F-15K 등으로 전력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FX는 Fighter Experimental의 준말로 대한민국 공군이 2009년 이후 일선에 배치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말한다. FX는 KFX(Korean Fighter Experimental)라는 한국형전투기 개발사업과 맞물려 우리나라 항공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대형 이벤트 사업이다. 사업액수만도 정부가 책정한 예산 8조 3천억 원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의 무기도입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FX, 차기전투기사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고유의 한국형전투기를 개발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 기동헬기 ‘수리온’ 개발에 성공한 한국이 KFX로 명명한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공군은 2020년쯤 현재 전체 전투기 수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F-4와 F-5가 수명이 다해 도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속기로 KF-16보다 성능이 향상된 KFX 도입을 희망해왔다 국방과학연구소도 KFX, 한국형전투기 개발에 적극 찬성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기술부족으로 인해 단독으로 KF-16과 같은 중형전투기를 개발할 수 없어 T-50과 수리온 헬기처럼 선진국 기술을 도입해 공동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KFX 사업은 21세기 초에 벌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투기 개발 사업이다.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물론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사가 뛰어든 이유다.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의 4개 업체가 맞붙어 보잉의 F-15K가 승리한 과거 FX 사업 규모가 4조원 정도였다. 그런데 FX와 KFX 사업에는 FX 전투기 도입예산 8조 3천억 원과는 별도로 KFX 한국형전투기 생산비로 25조 원가량(500여 대 생산 기준)이 들어갈 전망이다. 당분간은 세계 최대의 전투기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FX사업은 한국공군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포함된 전투기를 구매하겠다는 의지가 공론화되면서, 해당업체들은 이미 치열한 물밑싸움에 돌입했다. FX 입찰에는 미국 보잉사의 F-15SE,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3개 기종이 참여하여 치열한 수주전쟁을 벌이고 있다.
FX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3개 기종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 록히드마틴 F-35는 막강한 스텔스 기능을 자랑하지만 지속적인 개발일정 지연과 날로 치솟는 가격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한국공군이 이미 보유한 미국 보잉사의 F-15를 업그레이드한 F-15SE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장점이지만 완벽한 스텔스기가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최근 리비아 공습작전에서 뛰어난 성능을 과시하였으나, 스텔스 기능의 한계와 그동안의 한미관계가 마음에 걸린다.
방위사업청의 현명한 판단
지금까지의 전투기 도입을 보면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 왔다. 계약당시에는 갑을 관계로 놓여 있다가 계약이 끝나면 갑을관계가 바뀌는 현상을 우리는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만 했다. 전투기 도입당시의 각종 계약에 묶여 고장난 부품 등에 대한 정비 및 유지보수를 위해 막대한 예산과 기나긴 시간을 허비하는 사례도 보아왔다.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최신예 F-15K(60여 대)와 KF-16(170여 대) 전투기들이 부품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의 한국공군 시스템으로는 전투기 도입비용보다 전투기 운용기간 8,000시간(30년)을 기준으로 전투기 유지보수비용이 훨씬 더 많이 국외로 지출된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우리가 FX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FX를 통하여 KFX에 필요한 기술들을 도입하여 완전한 한국형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비록 지금은 한국형전투기를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의 기술력이 부족하더라도, FX를 통하여 해외도입을 하다보면 기술이 축적될 것이기 때문이다. 항공산업은 30여만 개의 부품이 어울려지는 최첨단산업이다. 더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정복해야 할 산업분야 중의 하나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어울리기도 하고 막대한 경제효과와 일자리창출을 할 수 있는 분야가 항공사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FX 사업을 추진하는 방위사업청은 10조 원대의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어울리지 않게 여러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현재 제시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3개 기종에 대한 충실한 평가와 협상을 내실있게 진행하여야 한다. 그동안 방위사업청은 기종 결정 시점을 4번이나 번복했다. 처음에는 2012년 10월까지 기종을 결정하겠다고 하다가 12월로 연기했고, 다시 올해 2월로 연기한 데 이어 또 다시 7월로 후퇴하였다. 방위사업청의 FX 최종 기종결정 연기는 공군이 원하는 전투기 도입은 물론, 한국형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들도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울러 전통적인 한미관계 등도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KT-1(훈련기), KO-1(전술통제기)를 우리 힘으로 생산한 저력을 갖고 있다. 현재 국내 항공산업은 비록 외국기술의 힘을 빌려왔지만, 수리온 한국형기동헬기 생산과 더불어 FA-50 초음속 경공격기도 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FX 사업을 통하여 진정한 KFX, 한국형전투기를 만들 수 있어야만 한다. FX 사업의 최종결정권을 지닌 방위사업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남용
신흥대학교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