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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활 ‘사랑할수록’의 김재희

다크초콜렛에서 ‘된장’으로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불확실한 항해’라고 했다. 언제 어디서 태풍을 만날지 반짝이는 태양빛을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부활 ‘사랑할수록’이라는 곡으로 가슴 속 그리움들을 불러일으켰던 보컬리스트 김재희가 이번에는 ‘된장’이라는 재미있는 신곡을 들고 나타났다. 그동안 그는 어떤 항해 가운데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재희, 그를 만나봤다.

가수 김재희 신곡 ‘된장’으로 컴백
“이승철의 소리쳐, 등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든 홍진영 씨가 내 인생 이야기를 듣더니 ‘된장’이라는 곡을 만들어 줬어요. 보리밥에 비벼먹고 싶은…풋고추에 찍어먹고 싶은…뭐 이런 내용인데, 가사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더니 ‘형이 바로 이런 된장 같은 사람이다’고 하더라고요.”

‘사랑할수록’으로 큰 사랑도 받았고 방황도 외로움도 지나면서 어느덧 마흔 즈음에 서있는 김재희. 홍 씨는 이런 그에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방황도 눈물도 헛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들이 형을 더 숙성되고 발효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재미있는 가사에 라틴 느낌이 나는 편곡으로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된장’이라는 곡이 탄생했다.

사실 부활 ‘사랑할수록’은 그의 다크초콜렛처럼 진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사뭇 다른 편안하고 구수한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한 것. “조용필 선생님도 계속해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시는데, 나도 알을 깨야하지 않겠나”며 그는 락커의 알을 깨뜨리고 대중 앞에 서려고 한다. 락 음악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편안하고 고향 같은   장르지만 락 음악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음악은 장르에 갇히지 않으니까 말이다.

또한 한동안 뮤지컬 ‘요셉 어메이징’, ‘남자가 사랑할 때’ 등 5작품을 계속했더니 가수활동을 하고 싶은 열정이 생겼다. 뮤지컬 배우라는 이름도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이름이지만 ‘가수’라는 이름으로 다시 복귀하고 싶은 것이다.

“가수로서 방송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은 의욕도 욕심도 많이 생긴다. 이 욕심이 어린 시절의 뜬구름 잡는 욕심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욕심이길 바란다. 내 인생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출발점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된장’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고 설레임을 표현했다.

형을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인생이었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그는 부활의 보컬이었던 김재기의 친동생이다. 형 김재기가 스물여섯 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당시 스물셋밖에 되지 않았던 그는 “처참했고 참담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음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 형이다. 사고 나기 이틀 전 부활의 김태원 형에게 내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사실 그는 부활에 합류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음악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어느날 음악을 해야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와 버렸다. 처음에는 형이 그의 선택에 반대했지만 곧  같이 음악 해보자며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을 함께 나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틀 후 형은 불의의 사고로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불광동 판자촌, 번지수도 없는 곳에 태어나 살면서 집안을 일으켜보겠다고 집념을 불태웠던 형이, 거짓말처럼 가버렸다.

그때 형은 이미 ‘사랑할수록’ 가이드송 작업을 해놓은 상태였다. 아버지는 김태원 씨에게 “재기가 고생만하다 죽었다. 동생 재희가 이 애랑 목소리가 비슷하니 동생(재희)이랑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이에 그는 형의 죽음을 등에 업고 부활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사랑할수록’이라는 노래가 아픈 사연과 버물어지면서 최고 히트를 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은 노래가 좋다며 웃어주는데 나는 정작 웃지를 못하겠더라. 이 영광은 형의 것인데, 라는 생각에 괴로웠고 부활 그룹 안에서도 내 존재 자체가 형의 흔적들을 털어내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부활과의 이별을 회상했다.

갑작스런 이별 때문인지 그는 형에 대한 그리움이 무엇보다 깊다. 평생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형을 생각하면 의리 끈기 집착 그리움 진짜사랑 뭐 이런 것들이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노래를 부를 때 형에 대한 생각으로 샤워를 했다.”

형이 떠난 후 삶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됐던 순간들을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 나서야 그도 이제 여기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인생에 마중물 같은 존재가 돼 준 형. “형은 내 마음의 멘토이고 사랑이다. 그리움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방황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형이 나에게 더욱 새로운 의미와 존재가 됐다.”

그래서 그는 오는 8월 형에게 띄우는 편지로 음반을 내고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려고 한다. 음악을 하는 동안 음악의 길을 열어주고, 음악에 대한 마음을 더욱 깊어지게 해준 형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평생 이렇게 갚고 싶다.


방황, 걸림돌 아닌 디딤돌
부활 그룹에서 탈퇴하고서 그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개인 솔로 앨범 1집 2집 3집이 잇따라 제작 회사의 경영난으로 표류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광활한 우주에서 살아보겠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누에고치처럼 외롭고 두렵고 어두운 시간들이었다. 이 세상의 왼손잡이처럼 홀로 빙빙 떠도는 것 같았다. 사실 힘든 순간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올림픽대로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안 죽더라. 운명이 있구나 생각했다.”

뭐든 다시 시작해 봐야지라는 심정으로 개인사업, 농사, 대리운전, 레스토랑 서빙, 라이브카페 가수, 포장마차 등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은 묵묵부답, 막힌 담이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한창 등산을 다니던 어느 날 사진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제작감독을 우연히 만났다. 그분은 긴 머리의 그를 보며 “예수가 여기 있었네”라며 예수 역으로 캐스팅했다. 예상치 못했고 예상치 않았고 예상할 수 없었던 어떤 일이, 어떤 만남이 그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는 인생에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신비가 있구나, 싶어 다시 희망과 열정을 내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지저스크라이스트슈퍼스타 이후, 그는 또 다리에 부상을 당해 당분간 뮤지컬 공연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잡았던 희망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가 싶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왼쪽 망막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중심성망막염으로 원상회복이 어려우니 더 악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시력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막막했다.”

이 병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 병에도 ‘불구하고’ 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는 그동안 살지도 죽지도 못해 몸부림치던 모든 것들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이후 몸도 마음도 회복되고 곧 김태원 씨의 도움으로 방송에도 출연하게 됐다. 뮤지컬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희망은 ‘중심성망막염’을 디딤돌 삼아 새순 돋듯 다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 전에는 삶에 부딪히려고만 했다. 그런데 받아들이다보니 삶이 달라지고,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가는 걸 느꼈다.”

인생의 모든 과정들이 다 제각각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방황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황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쳤고 행동했기 때문에 방황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 시간들을 보낸 이후 난 알을 깨고 나와야만 부를 수 있는 ‘된장’이라는 의미 있는 곡을 얻게 됐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점
이제 인생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점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는 그는 어렸을 때의 막연한 꿈 대신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꿈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해야겠다. “목표만 보고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등산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묵묵히 열심히 가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운명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다보면 뜻하지 않는 곳에 길이 나있고, 또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길이 열릴 수도 있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여정 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변해 있다.”

음악을 해도 세월은 가고 음악을 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음악을 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가수다. 그는 가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행복하다. “결국 오늘도 내일도 초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거다.”(웃음)

이희 기자 
leehee@mbc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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