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좁고 집 좁은 건 살아도 마음 좁은 건 못산다. 우리 팀장의 소심함과 신경증은 옆에서 두고 보기 안타깝다. 게다가 요즘은 심기까지 영 편치 않다. 인사 발령 시기인데다가 연봉 협상 날도 코앞이다. 사실 실력은 바닥을 쳤고 옆 팀 새로 스카우트된 경력 팀장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입사한 경력 팀장 연봉이 장난이 아니라던데.. 찬밥 신세 된 우리 팀장의 스트레스는 내게도 불화살로 떨어진다. 이럴 때는 불똥 피하는 마음으로 말 걸지 말고 눈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만만한 게 난가보다. 오늘은 드디어 터졌다. 아침부터 내 책상을 넘보더니 “지난주에 부탁한 ‘기획서’ 내일까진 거 알지? 어떻게 되가?”라고 묻는다. 내일까지라고 해놓고 왜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주는지 모르겠다. 그간 밀린 일들 때문에 오늘 밤에 작업해야 해서 나도 심난하구만. 그래서 “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거의 마무리 되갈껄요”라고 말했더니 뭐 씹은 얼굴이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아! 참 직장생활하기 힘들다.
1. 확대 해석하지 말고 속마음을 헤아리자!
학교 교육 중에 읽기 교육은 52%를 차지하는 데 반해 듣기교육은 8%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공자는 논어에서 예순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듣는 이순(耳順)이 된다고 했다.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경청을 제대로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말하는 입이 아니라 말을 듣는 귀가 대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귀담아 듣기란 쉽지 않다. 듣기는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경청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혀가 아니라 귀가 마음을 연다. 듣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고 건성으로 대강 듣고 적당히 들었다면 이제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자. 서로 목청을 높여 시끄러운 것보다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들을 수 있어야 소통이 이루어진다. 상사가 “요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라고 묻는데 부하가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소리’만 들은 것이다. 상사가 말한 ‘의미’를 들은 부하는 내 표정이 안 좋은가를 생각하고, 상사의 ‘욕구’를 들은 부하는 생기발랄하게 표정을 바꿀 것이다.
듣는데도 버전이 있다. 들려오는 소리만 듣는 Hearing이 가장 낮은 버전이다. 상대가 말하는 의미를 듣는 Listening에 비하면 상대가 원하는 욕구까지 듣는 Active Listening이 최고 버전이다. 부모님이 늦게 들어왔다고 화를 내시면 겉으로 보이는 분노와 비난만 듣지 말고 속에 담겨있는 걱정과 사랑을 듣자. 고객이 욕을 하고 화를 낼 때에도 겉으로 보기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속 깊은 이면에는 자신의 불편에 대한 아픔과 상처가 있다. 딸아이가 동생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억지를 부리면 못된 말버릇이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동생 때문에 속상한 딸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어야 한다. 위의 사례로 보자 치면 “지난주에 부탁한 ‘기획서’ 내일 까진거 알지? 어떻게 되가?”라고 묻는 상사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불안하다’,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알고 싶다’, ‘내가 얘기한 거는 다 반영했니?’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것을 읽어야 한다. 지금 화자는 오늘 상사가 한 말보다는 상사의 최근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한 게 아니라 상상하고 소설을 쓴 것이다. 만에 하나 앞뒤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그분의 최근 근황과 상태를 아는 것도 중요한 판단 소스이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 상사가 한 말은 제대로 듣지 않은 채 혼자 상상한 것으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상사가 만에 하나 옆 팀장 때문에 조바심이 나서 히스테리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용도로 활용해야지 빠져나갈 핑계의 용도로 활용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오해하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아서다. 너무 확대 해석하지 말고 오늘 궁금해 하는 상사의 지금 마음을 읽도록 노력하자.
2. 묻기 전에 수시로 중간보고하자
보고는 상사를 위한 일이 아니다. 내가 편하자고 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를 비롯하여 예상치 못한 폭탄 요소들이 숨죽이고 있다. 곳곳에 숨겨진 지뢰를 미리 발견하려면 미리 의논해야 한다. 지름길을 찾기 보다는 움집을 피하는 게 낫고 지름길 간답시고 폭탄 맞아 쓰러지면 아예 중도하차다. 수시로 지도를 보며 샛길로 안 빠져들어야 하고, 수시로 지팡이 짚으며 지뢰를 점검해야 한다. 1시간 만에 해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맨 처음 일을 준 상사의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맨 처음 사용하려던 목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추가로 알아낸 좋은 정보원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마무리될 요행수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업무보고’는 다 끝난 다음에 짜잔~하고 내놓는 게 아니라 수시로 진척된 만큼 중간에 하는 거다. 보고하며 방향 잡고, 보고하며 구체화하는 거다. 보고하며 질문하는 거고 보고하며 협의하는 거다. 생각은 마치 샘물 같아서 묻다 보면 나 스스로도 아이디어가 나오고, 물음에 답하는 상사도 알토란 같은 정보가 떠오른다.
시험지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학생이 결코 점수가 높은 게 아니듯, 일도 혼자서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다고 훌륭한 결과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순간마다 상사의 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틈을 만들면, 일의 결과도 훨씬 나을 뿐 아니라 일하는 티도 팍팍 낼 수 있다. 상사가 먼저 “외부 미팅은 어떻게 결론이 났지?”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전화나 문자로라도 진행 결과를 간단히 보고하자. 미팅 결과의 디테일은 나중에 만났을 때 해도 되지만 간단한 진척사항만이라도 수시 보고를 하면 상사의 마음이 편해진다.
3. 상사 취향에 맞춰 점수 따는 기회로 삼자
가장 완벽한 보고는 내 상사의 취향에 맞는 보고다. 빠른 말투, 급한 성격을 지닌 상사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빼고 담백한 언어로 보고를 해야 한다. 특히 보고의 타이밍을 최대한 앞으로 당기고 수시로 진척사항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보고하는 게 좋다. 반면 꼼꼼하고 내성적인 상사는 좀 더 충분한 자료와 서면으로 보고하는 게 좋다. 말로만이 아니라 이메일로 하고, 그간의 진척사항을 볼 수 있도록 이메일 이력을 보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사가 복도에서 만나서 물었다고 복도에서 단문으로 대답하는 건 보고를 한 게 아니라 대답을 한 거다. 꼼꼼한 상사에게 대답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무엇이 어떻게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고하자. 이런 업무보고 과정은 업무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부하 입장에서 ‘업무보고’는 상사에게 점수 따는 중요한 기회다. 상사는 일을 주며 일이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후배의 태도를 시험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너무 알아서 혼자 해내는 후배보다는 성실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상사에게 배우려는 자세인 후배가 더 키워주고 싶다. 사실 상사들도 후배 앞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질문하고 의논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상사는 챙겨줄 기회를 갖게 되고 챙겨준 후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긴다. 상사 스스로의 결정권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고 상의하자. 피터 드러커는 상사에게 모를 때만 묻지 말고, 먼저 답을 준비하고 질문하라고 했다. 상사에게 질문하는 것은 내가 예상한 답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내가 놓친 것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다. 반면 내 예상과 상사의 생각이 일치한다면 내 실력이 점점 더 상사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므로 쾌재를 부를 수 있어 더 좋다. 이제부터라도 상사의 취향에 맞춰 질문하며 의논하도록 노력하자.
추천 사회어
● 30% 정도 남았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보고드릴 수 있습 니다. 괜찮으실까요?
● 어제 주신 일, 대략 틀만 잡았는데 방향이 맞는지 한 번 봐주시겠어요?
●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하기로 한 기획서가 50% 정도 진행되었는데 점검 한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 그때 찾아보라던 자료는 주문해서 내일 받을 거예요. 다른 거 추가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게 있을까요?
지윤정
(주)월토피아 대표
월토피아 평생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