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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


나와 타자, 삶과 죽음, 물질과 정신, 우연과 필연, 번영과 멸종 등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역설’로 풀어낸『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저자인 안드레아스 바그너(Andreas Wagner) 교수는 취리히 대학교의 진화생물학 및 환경학 연구소 교수이자 미국 뉴멕시코 산타페 연구소 외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일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마쳤으며, 그의 논문은 생물학 분야 최고 논문상인 J. S. 니콜라스 어워드를 받았다. 유전자에서 복잡한 분자 네트워크에 이르는 생물 시스템의 진화를  주 연구 분야로 하여 100편 이상의 과학 논문과,『생명 체계의 굳건함과 진화성Robustness and Evolvability in Living Systems』, 그리고 생명 체계의 혁신에 관한 포괄적인 이론을 제시한『진화론적 혁신의 기원The Origins of Evolutionary Innovations』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서 중 가장 널리 알려진『생명을 읽는 코드, 패러독스Paradoxical Life』는 ‘독립출판협회IPBA의 올해의 책 2010년 과학 분야 최고의 저서’로 선정되었다.

자연, 그 거대한 생명의 드라마
노예처럼 희생하는 부모,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아교수류탄 개미, 숙주식물의 뿌리에 침투하는 기생식물, 엉덩이 8자 춤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꿀벌, 동굴 탐색 개미들을 파견하고 집단 의사결정을 하는 알비페니스 개미 등 생명의 파노라마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시세계에서는 더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자살하는 세포, 세포 분자들 간의 형태로 주고받는 대화, 섹스 없는 유전자 교환, ‘팽창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태아의 신경관 세포,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박테리아 등 보이지 않는 생명의 세계에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자연에는 협력과 이용, 번영과 기아, 위험과 안전, 삶과 죽음의 스토리들로 가득하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이 인간 지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의미’의 세계이자, 이런 의미가 무수하게 교환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임을 말해준다. 생명 현상에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겹겹이 쌓인 중층 구조의 복잡한 과정들이 숨어 있다. 우리 인간은 이런 의미의 세계를 극히 일부분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 자연이 보여준 모습의 10만 분의 1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숨겨진 의미의 세계, 나아가 자연의 진리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저자 안드레아스 바그너는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패러독스’의 인식이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으며, 패러독스를 기초로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이해하는 키워드, 패러독스
나와 타자, 본성과 후천성, 물질과 정신, 부분과 전체, 우연과 필연, 창조와 파괴 등 역설적 긴장이 생명과 자연을 창조하는 근본 요인이며, 우리는 이런 패러독스를 인식함으로써만 세계를 넓은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나와 타자, 부분과 전체 등의 개념은 겉으로는 상반된 개념처럼 보인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 둘은 자연스레 분리된다. 그런 후 둘 중 하나가 더 근본적이라거나, 더 우위에 있다거나, 더 영향력이 있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이는 인과론적 세계관에 길들여진 전형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다.

생명 현상에서는 나와 타자, 부분과 전체, 안전과 위험, 우연과 필연 등이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수렴된다. 상반된 두 개념은 ‘생명’ 창조 과정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분자적 관점에서 단세포 유기체가 하나의 복잡한 다세포 유기체로 창조되는 과정은 이들 패러독스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패러독스는 생명 창조 및 진화의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다양한 목적을 향해 미세하게 조절되고 통합되며, 우연적으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진행된다. 미세 분자의 형태(예로, DNA 문자 서열)가 세포 군집, 더 나아가 한 개체, 친족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불확정성 원리가 지배하는 무수한 우연적인 현상들은 ‘생명’이라는 필연의 세계로 귀결된다. 

패러독스는 세계의 근본에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역설적 관계의 상호성을 파악해야 인간과 생명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학계의 주류였던 결정론적 세계관은 원인에 따른 결과, 논리와 증명에 기초해 과학과 진리의 문제를 해명하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시각으로는 자연을 정확히 관찰하거나 우주만물의 진리를 발견하기 힘들다.


하나의 운명인 역설적 관계 : 나와 타자, 삶과 죽음, 물질과 정신, 우연과 필연, 번영과 멸종
가령 우리는, 대화가 물질이 필요 없는 의미 전달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화는 무수한 물질이 개입해야 가능한 물질과 의미의 상호작용이다.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음파로 압축된 공기분자가 이동해야 하고, 우리 뇌의 신경세포를 발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이 작동해야 한다. 사실 일상적 세계는 ‘물질’과 ‘의미’(정신)의 분리가 불가능한 세계다. 따라서 우리의 고정된 관념으로는 생명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우리가 발견한 자연법칙도 자연을 해석하는 하나의 확률법칙일 뿐 자연의 내적 적합성을 말해주진 않는다.

생명의 패러독스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나-타자의 관계다. 나와 타자의 운명은 대단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운명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생충’이란 용어는 운명의 사슬을 명료하게 말해준다. ‘기생’은 모든 동식물에 해당되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가장 적게 해를 끼치는 식물도 햇빛 경쟁을 하면서 자기보다 힘없고 작은 식물의 햇빛을 앗아간다. 다른 동식물의 무수한 죽음과 파괴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기생동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나-타자의 역설적 관계는 현대 경쟁사회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보상을 얻는 것보다 타인을 배신하거나 이용해서 더 많은 돈과 지위, 이득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죄수의 딜레마’는 배신과 협력의 득실 분석(비용-효과 분석)을 통해 ‘나-타자’라는 역설적 관계의 통찰 없이 우리 삶과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비즈니스 협상이든, 이혼 협상이든, 군비 경쟁이든 간에 우리 일상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이다. 나의 운명과 타인의 운명은 강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역설적 관계가 이 책의 중심 테마다. 이를테면 삶과 죽음의 역설이 있다. 유기체 형성이나 국가 건설에서 삶과 죽음, 또는 창조와 파괴는 항상 함께 있어왔다. 왜, 어떻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인가? 또 부분과 전체의 역설에서는 “당신의 행동을 책임지는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파헤친다. 즉 당신을 행동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유전자인가, 당신 자신인가, 아니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인가? 번영과 멸종의 역설에서는 안전과 위험의 문제를 다룬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5번의 대량 멸종이 말해주듯 한 유기체의 성공적 삶은 완전한 멸종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우리 삶엔 항상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듯이 안전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들은 자신들의 유전자, 자원, 생존 무기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게임을 하지만 그 게임을 통해 지구에서 생존, 번영할 수 있었고, 궁극엔 대량 멸종에 이르기도 했다. 안전과 위험은 지구를 창조, 유지시켜 온 역설적 긴장이었으며, 지금도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계속 새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부분보다 전체를, 전체보다 부분을 강조하는 두 시각(전체주의와 환원주의)의 대립, 생명을 필연으로 귀결시키려는 인과론적 세계관이나 지적 설계론의 맹점 등 세계를 보는 우리의 결정론적 시각의 취약성을 환기시킨다. 단순한 유기체에서부터 복잡한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유전적 불변성을 이어온 진화 과정에는 무작위적인 우연 현상이 지속적으로 개입해왔다. 돌연변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돌연변이는 DNA 염기서열을 무작위로 뒤바꾸어 인간 진화의 역사를 추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돌연변이가 생명의 열쇠일 수 있다. 진화란 곧 생명체의 본질인 불변적인 자기복제가 돌연변이 같은 수많은 섭동으로 방해받아 실패하는 경우가 무수하게 포함된다. 따라서 진화의 역사에는 우연적 속성이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필연만큼이나 생명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다. 프랑스의 생화학자 자크 모노의 말처럼 “인류는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다. 생명을 단순한 생존 기계의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으로 치부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의 꿈은 몽상에 불과하다. 생명은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초월하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우연과, 우연에서 파생된 필연의 자연 법칙은 생명의 역사에서 창조의 원천으로 기능해왔다.


인간을 이해하는 키워드, 패러독스
우연-필연의 역설적 상호성은 인간사회에도 풍부한 유비를 제공한다. 예로,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은 인종 간 거주지 분리 현상이 고착되는 이유가 실은 노골적인 인종 차별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적 현상에 기초한 인간들의 미묘한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우리가 취미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것처럼 애초에 희미했던 선호들이 쌓이고 쌓여 완전한 거주지 분리가 형성된다.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우연한 선택들이 예측 가능한 법칙으로 고착되는 현상은 자연 및 인간 세계에서 무수히 볼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무수한 생명체와 과학 현상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존재하는 역설을 폭넓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다룬다. 매혹적인 역설적 긴장 관계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 그 좋은 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파괴적인 패러독스를 품고 있다.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히틀러 같은 폭군이 통치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정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용 사회는 관용자들을 제거할 비관용자들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관용의 원칙을 파괴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또한 ‘자유의 역설’과 맞닥뜨리며 살고 있다. 인간 삶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거나 제한해야 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자원입대나 대출, 근로계약 등 우리는 우리가 얻으려는 자유의 대가로 자유를 구속하는 약속을 한다. 가장 치명적인 자유의 역설은 아마도 돌이킬 수 없는 (자유의) 선택인 ‘자살’일 것이다. 역설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지만 역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묘미는 과학적 관점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나와 타자, 부분과 전체, 우연과 필연, 삶과 죽음 등 서로 대척점에 있는 현상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자연과 우리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 책의 생물학적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본성과 핵심에 접근하는 앎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패러독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는 생물학에 대한 이해를 넘어 철학적 사색에 이르게 한다. 생명 저변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패러독스의 탐구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깊이 고찰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적 설명을 넘어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과학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오랜 철학 논쟁과 과학 논쟁에 대해서도 숙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준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진정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생물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좋은 행동’이 진정한 이타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나는 이들과 다른 세 번째 관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는 완전히 다르고 분리되어 있지만, 한쪽의 행동이 다른 쪽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아와 타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아와 타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파괴적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전쟁에 참여하는 나라들이다. 전쟁은 수백만 명을 죽이고 수세대 동안 이룩한 업적을 파괴한다. 이 견원지간은 결국엔 피에 굶주렸던 분노에서 고통스럽게 깨어나는데, 이때는 어떻게 해서 그런 분노가 터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짐이 정치적 분쟁을 지속시키는 경우도 있다. 20세기에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었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동독과 서독의 분쟁이 그 예다. 이 분쟁 사례는 인간이야말로 자아와 타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장본인이자, 자아와 타자에 대한 아주 근시안적인 견해를 가진 존재임을 말해준다.

대량 멸종은 스펙터클한 생명의 드라마다. 하지만 이는 영겁의 세월 동안 진행되어온 수많은 멸종 드라마 중 한 편에 불과하다. 이 보이지 않는 멸종 드라마는 생명의 존재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과거가 말해주는 생명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들 중 99.9%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성공(또는 현재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여주는 지표는 결코 아니다. 성공적인 삶의 재앙적인 실패는 위험과 안전, 실패와 성공이 비록 상반된다 해도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의 이면에는 죽음이 있다. 기계적인 컴퓨터건, 진공관 컴퓨터건, 혹은 구식의 트랜지스터 제조방식이건 간에 오래된 것의 죽음과 폐기가 진보의 이면에 존재한다. 인간세계의 모든 변화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여러분이 파괴된 것을 높이 평가하든 아니든, 변화는 파괴를 수반한다. 이런 원칙은 기술뿐 아니라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자녀양육법, 치료법, 통치법 등 끊임없이 변하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설, 생각, 이론이 널리 채택되면 과거의 것은 서서히 사라진다. 그렇다고 과거의 것이 쉽게 죽는 것은 아니다. 양자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말을 빌리면 “반대자를 설득해 그들에게 올바른 빛을 보여준다고 해서 새로운 과학적 진실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실이 승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반대자들이 모두 죽었을 때다.”

자유의 역설은 모든 인간이 맞닥뜨리는 본질적인 역설이다. 즉, 한 인간의 선택의 자유에는 이런 자유를 포기할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 소설『모비 딕 』의 아합 선장이 이런 선택을 했다. 고래에게 다리를 물어뜯긴 아합은 배의 대장장이에게 빨갛게 달군 인두로 절단된 다리를 지지라고 한 후, 자신이 못 하게 막아도 무시하라면서 다리를 지지지 못하게 하는 선택을 포기했다. 인두로 다리를 지지는 끔찍한 순간에 아합은 비명을 내지르며 제발 그만두라고 사정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선택할 자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상우
본지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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