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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판매 대금도 못 받았는데, 오히려 내 빚?”, ‘양날의 검’된 어음제도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양날의 검’, 현재 어음제도를 표현하기에 딱 적합한 말이다. 내 물건을 팔았는데, 그 판매대급이 다시 내 빚으로 돌아오는 모순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판매대금은 3달 뒤에나 들어온다면 어떨까.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자금융통의 한 방법으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어음. 하지만 이제 ‘양날의 검’이 돼 기업 연쇄도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어음의 대안으로 내놓은 정책들도 근본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도산원인의 1순위가 뭘까. 자체 경영악화가 아닌 바로 거래처 부도다. 지난 2010년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자리에서 공개된 기업은행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도산원인 1순위는 거래처부도(23.5%)로 나타났다. 2순위도 매출채권 회수부진(19.4%)으로 나타났다.


경제개발 시대에 자금융통의 한 방법으로 활발히 거래됐던 어음이 어느새 ‘양날의 검’이 됐다. 사실 어음제도의 부정적 측면이 드러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우리는 이미 어음을 받았던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경험이 있다. 이후 폐지논의도 활발히 이뤄졌으나,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게 신용창출과 현금화에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거래현실 속에 다수의 보완수단이 마련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대체수단도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고, 또 다른 부작용과 함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어음제도의 단계적 폐지’, ‘만기일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줄지 않는 어음거래, 단계적 폐지 주장하는 중소기업계


어음이란 미래의 일정기일에 일정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것을 약속한 증권을 말한다. 어음의 종류에는 약속어음과 환어음이 있다. 지급을 약속하는 증권을 약속어음이라 하고, 제3자에게 지급을 위탁하는 증권을 환어음이라 한다.


약속어음은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단기 신용창출과 현금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기업간 자금융통과 생산 활성화의 수단으로 고속경제개발시대를 지탱했다. 하지만 발행업체의 대금지급 지연 또는 부도 시 하청 중소기업의 자금난이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는 폐해가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아직 어음을 이용한 거래 관행은 줄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16년 어음제도 폐지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판매대금의 34.2%가 어음결제로 이루졌으며, 어음 수취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36.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설문에 응답한 중소기업의 54.4%가 제도 보완 후 단계적 폐지를, 18.6%가 즉시 폐지를 지지할 만큼 현행 어음제도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내 물건 판돈이 다시 내 빚, 상환청구권 문제


최근 송인서적의 부도사태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어음제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우월적 지위에서의 거래, 송인서적의 부도에 따른 연쇄부도 우려가 그것. 송인서적은 출판사들에게 ‘갑’의 위치에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힘의 논리였을까. 송인서적은 대형출판사와는 현금거래를 해왔고 나머지 중소형 출판사들과는 어음거래를 해왔다. 결국 송인서적 사태로 피해를 입게 될 출판사들은 중소형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송인서적의 몰락과 함께 고스란히 소형출판사들은 그 피해를 떠안게 됐다.


왜 소형출판사가 송인서적의 부담을 떠안게 될까. 바로 상환청구권 때문이다. 어음 거래의 구조를 살펴보자. 만약 A사가 B업체에게 1억원 상당 규모의 물건을 공급하고 대금으로 어음을 받았다고 치자. A사는 자금순환 때문에 어음의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아 9,500만원의 현금을 받았다. 하지만 B업체가 만기일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부도가 났다. 그럼 은행은 그 어음을 할인한 기업과 중간에 배서했던 모든 기업에 상환청구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행 어음제도는 발행자(구매 기업)가 부담해야 할 상환청구권상환청구권(결제 의무)이 납품기업으로 전가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약속어음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손혁준 덕성여대 교수는 “현행 어음제도는 어음을 발행한 대기업이 도산하면 어음을 수취한 중소기업들도 줄도산 위험 가능성이 존재하고, 중소규모의 영세기업이 약속어음제도로 피해를 입어 기업도산에 처한 경우에도 이를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손혁준 교수는 이어 “최근 핀테크 등 지급결제시스템의 새로운 변화와 전자상거래의 급속한 증가로 네트워크상 결제방식을 활용해 어음제도를 대체하고 있다”면서 “어음제도가 지니는 피해 사례를 고려할 때, 이를 대체할 현금성 결제수단이 활성화되는 추세이므로 현행 어음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판매대금을 현금으로 받기까지 107.9일 소요


기업들은 어음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어음 만기기일이 너무 길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1년간 판매대금을 현금으로 받기까지 평균 107.9일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처에 납품을 하고 대금을 지급받음으로써 완료되는 거래에서 판매대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하거나, 은행에 어음할인을 이용해 조기회수해야 한다면 업체는 적절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약속어음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매출채권 미결제에 따른 영향이 크며, 특히 대기업 및 수탁기업이 거래관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경우 대금지급을 연기하는 등 남품대금 회수 관련 불공정 거래관행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어음은 비정상의 극치다. 물품구매나 용역발주 시 지급의무가 발생하면 30일 이내 현금지급이 원칙 아니냐” “매입처 대금결제가 늦어지면 경영활동이 정지돼 급여지급도 어렵다” 등의 의견을 내며 지급기일이라도 단축되기를 바라고 있다.



소규모 기업일수록 원활할 자금 흐름을 위해 어음 지급기일의 단축을 희망하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어음의 지급기일과 관련해 중소기업 의견조사할 결과를 보면, 어음으로 결제하는 이유는 조사업체의 37%가 “거래처에서 어음으로 결제해주므로 현금이 부족해 어음으로 결재한다”고 답했고, “제품생산후 자금회수까지 기간이 오래 걸려 어음으로 지급한다”는 응답도 29.9%로 나타났다.


또한 “어음대금을 늦게 결제받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라고 응답한 업체는 전체의 72.2%로 나타나,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음 대금결제 지연으로 곤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적절한 어음대금 지급기일로는 응답업체의 49.7%가 60일을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영세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어음 지급기일 관련 단축건의가 적지 않았다”면서, “판매기업의 경우 어음대금 회수까지의 기간이 오래 소요돼 만성적인 자금난에 허덕이는 만큼 어음 지급기일 등 현행 어음제도는 검토 및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문제 해결 못한 어음대체 결제수단


사실 이런 어음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정부도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기업구매전용카드, 기업구매자금대출, 전자방식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국 납품대금 공정화 기여에 미흡하다는 평가와 함께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냈다.


2001년 한국은행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을 도입하면서 종이어음 사용에 따른 중소기업의 연쇄부도와 어음깡 등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결국 대기업이 법정관리 등으로 납품대금이 미결제되자 은행이 납품기업에 상환청구권을 행사해 중소납품기업들이 상환의무를 지게 되는 상황이 또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어음제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 일었다. 또 어음남발 사례처럼 발행기업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악용할 우려가 있음에도, 은행이 발행기업의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외담대를 발행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사례도 발생했다.


김영환 전 의원(19대 국회의원)은 2014년 당시 (주)이에프씨(에스콰이어)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수제화를 납품하던 중소·영세업체들이 납품대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은행에 갚아야 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외담대는 어음대체 결제제도로 도입됐으나, 구매기업이 납품기업의 부담으로 구매자금을 조달하는 기형적인 대출구조”라며 “은행은 납품기업이 대출금을 책임지기 때문에 상품판매에 적극적이고, (주)이에프씨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후에도 계속 대출이 실행됐는데, 이는 은행의 신의성실의 원칙, 건전한 금융거래질수 유지 규정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구매기업이 상환을 해야 하는 제도적 유인이 없다”면서 “어음은 신용부도처리 등 제재 수단이 있는 반면, 외담대는 구매기업에 대한 신용상 제재가 거의 없어, 구매기업은 재무상황이 악화되면 어음 등 다른 결제수단 보다 외담대의 발행을 늘리고 상환은 미루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외담대는 대우조선·경남기업에서 사용되는 등 피해사례가 지속되고 있다.


상환청구권 없는 매출채권 팩토링이란


지난해 12월14일 중소기업중앙회 주최로 열린 ‘약속어음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 및 토론자들은 ‘상황청구권 없는 매출채권팩토링’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어음제도의 상환청구권으로 인해 연쇄도산 위험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한종관 경영혁신연구원장은 “현재 선진금융의 트랜드는 물적담보·연대보증·소구권 행사 방식의 후진적 금융에서 탈피하고 있다”면서 “신용도·기업가치·기술수준 평가에 근거한 선진금융으로 전환 추세”라고 소개했다.


팩토링 제도는 판매기업이 팩터에게 매출채권을 매각해 현금화하고, 팩터는 판매기업에게 매출채권 양수에 따른 자금을 제공하고 변제기에 구매기업으로부터 대금을 회수한다. 당연히 구매기업은 팩터에게 매출채권 대금을 상환하면 된다.


한종관 원장은 “상환청구권 없는 팩토링 제도는 그동안 유사제도가 가지지 못한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매출채권의 조기현금화 ▲기업간 상거래에 따른 신용위험 해지 ▲판매기업 재무구조 개선 ▲팩터보유 신용정보로 선제적 리스크관리 등 4가지를 들었다. 팩토링이 구매자 부도시 판매기업에게 상환청구권을 행사하는 은행의 외상대출금 담보대출과 가장 큰 차이점은 대금이 미결제될 경우 판매기업은 상환책임이 없고, 팩터가 구매기업에게 매출채권을 가지고 구상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실제 팩토링은 현재 해외에서 3,052조원으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한 원장은 “우리는 2014년 기준 16조5,000억원 정도”라며 “경제규모가 작은 대만, 칠레 등도 팩토링 시장규모는 한국에 비해 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에서도 대부분 상환청구권 없는 팩토링으로 운영중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 원장은 “선진금융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팩토링 활성화가 필요하다”면서 “중소기업은 채무에 대한 부담없이 고유 경영활동에 전념이 가능하고, 정부는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을 개선하며, 운용기관도 신용보험·신용보증 등 유사제도와 융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금융선진국은 매출채권팩토링이 보편화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31위 수준”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선진금융에 필요한 조건, 즉 자금조달 기능, 국제규범 부합, 리스크 헤지 등을 충족하므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병섭 교수는 “이미 미국·영국·일본·독일·이탈리아 등 많은 국가에서 매출채권을 활용한 자금조달이 기업의 중요한 자금조달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미국의 팩토링제도는 전통적 방식의 상환청구권이 없는 팩토링”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물건이 팔리고 제때 판매대금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기업은 생존하기 힘들다. 국경이 사라지며 더 이상 국내기업들만이 경쟁상대가 아닌 지금, 우리와 다르게 선진금융의 지원을 받는 해외 유수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과연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핀테크 혁명을 통한 금융선진화도 한창이다. 근본적으로 어음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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