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소송 원고패소판결은 사법부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살인기업인 담배회사를 비호하는 꼴이다”
배 변호사는 10일 대법원이 담배소송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울분을 토했다.
이 날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방아무개(65)씨 등 흡연피해자들이 ‘오랜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며 KT&G와 국가를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KT&G가 제조한 담배에 설계상, 표시상의 결함이나 그 밖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결함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고의적으로 정보를 은폐하는 등 위법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고, 첨가제 투여나 니코틴 함량 조작으로 의존증 유지 등의 위법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또 흡연과 폐암의 일반적 연관성은 인정하면서도 “특정 흡연자가 담배를 피웠고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는 둘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흡연피해자들은 담배에 들어가는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와 제조사가 제조과정에서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고의로 위험물질을 넣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제기된 4건의 담배소송 중 1999년 제기된 2건의 담배소송에 대한 확정판결이다.
앞서 1심에서는 흡연과 암의 발병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2심에서는 폐암과 후두암 등 일부 암들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했으나 담배회사들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1999년 처음 소송이 제기된 이래 15년간 소송 대리를 맡아온 배 변호사는 “니코틴이 원래는 중독성이 강하지 않지만 담배제조과정에서 80여종의 발암물질을 일으키는 600여종의 첨가물을 첨가해 중독성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담배제조에 대해 규제하는 법도 전무하다. 기획재정부가 담배사업법으로 담배제조를 철저히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배 변호사는 “일 년에 5만8000명을 죽이는 살인기업이 어떻게 버젓이 합법적인 영업을 보장받을 수 있나”며 “국민의 생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살인기업을 옹호하는 판결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고 통탄했다.
그는 “그러나 사법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이 중대한 사건에 대해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공개변론 기회를 요청했음에도 상고기각판결을 내렸다”며 “국민의 생명을 무시하고 국민들을 마약의 손아귀에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판결”이라고 힐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은 이제 1라운드일 뿐이다. 정의를 찾기 위한 행보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미화 변호사는 “이번 담배소송에서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하기 위한 담배회사 내부자료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외국은 담배회사의 은밀한 내부 자료까지 다 공개돼 회사들이 담배를 어떤 의도로 제조했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앞으로 고등법원에 있는 담배소송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제도적 미비점들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날 피고인 KT&G측 변호를 맡은 박선교 변호사는 “15년 간 지속된 재판에서 제조사의 담배 설계상․제조상․표시상의 위법을 인정하지 않았고 흡연과 폐암 등과의 인과관계도 추정에 불과하다는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준비 중인 담배소송에서도 담배회사의 위법성을 입증해야 하는 점은 마찬가지여서 어렵지 않겠나 하는 전망을 보여줬다”고 내다 봤다.
한편 건보공단은 14일경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공단부담금 환수 청구 소장을 접수할 계획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