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노인복지와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를 비교하자면 “최적이냐, 아니면 최저이냐”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노인요양도 마찬가지이다. 노인요양은 이제 개인적인 부양이 아닌 사회적인 부양의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보다는 민간 의료기관이 많은 국내 의료 시스템의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문제가 의료시장의 문제인지, 의료복지의 문제인지 의료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 혼란스럽다.
선진국에서는 국공립 의료기관이 많고 민간 의료기관이 우리나라만큼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민간 의료기관에게는 그만한 진입장벽이 있다. 의료시스템은 시장의 개념에서 영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는 복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이 의료 시스템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의 마인드가 의료복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경기도 오산의 한 요양병원을 방문했을 때, 열 명 남짓 되는 간호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를 진행하는 고참 간호사가 환자들의 증상에 대한 지시사항과 함께 후배 간호사에게 지적사항을 전달했다.
“환자의 용변이나 용변 후 처리를 도와주지 마세요. 환자분들 버릇 나빠진다고 얘기하기는 뭣 하지만 간호사로서의 업무가 있는데 간호사가 그런 일을 도와주다 보면 자기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환자의 용변 처리하느라고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요양병원은 최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은 아니었지만 요양보호사 없이 의사와 간호사들만 근무하는 요양병원이다. 요양병원은 요양원과 달리 요양보호사 채용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환자의 용변처리는 간병인의 일이 되고 간병인 비용은 환자의 부담이 된다. 다시 말해서 간병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정부에서는 연 2조 원이 간병인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간병인은 요양보호사와는 달리 24시간 상근하기 때문에 월 급여도 배 이상 많고 그만큼 환자 부담도 매우 크다. 간병인을 사적으로 두더라도 비용 부담으로 인해 공동 간병인제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시장과 공공복지로 양분된 노인요양
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한다. 그러니까 간호사들이 보통 10명 정도 함께 근무하면서 150여 명의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얘기다. 간호사들이 근무시간 동안에는 1인당 15 명 정도를 돌봐야 하니까 용변이나 목욕 등을 신경 쓰기는 어렵다.
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 채용이 의무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환자 부담인 간병인을 쓸 수밖에 없는데 1인 간병의 경우 그 비용은 무려 300만 원이나 된다. 그래서 대체로 3~4명 공동 간병인제를 활용하고 있다. 간병인 한 사람이 환자 3명을 돌보는 경우에는 30일 기준 각각 99만원씩을 지불해야 하고 환자 5명을 돌보는 경우에는 각각 60만원씩을 지불해야 한다. 간병인 비용은 입원 비용이나 식비, 재활치료 비용과 별도의 부담이며 이제까지 보험처리도 되지 않았다.
보라매요양병원의 경우에 고도환자(중증환자)는 식비를 포함해서 월 64~65만 원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재활치료의 경우에는 복합운동을 다 실시한다면 월 30~40만 원의 비용이 추가될 수 있지만 중증환자가 많아서 하루에 두 건 이상 못하기 때문에 추가비용 부담이 월 30~4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비급여 내용을 환자에게 공지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부당하게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환자들의 자부담이 요양원보다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요양병원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1병실 6명 정도를 기준으로 12인실이 있어 입원 환자 수는 70~80명쯤 된다. 의사 수는 2명, 간호사 수는 간호조무사까지 14명인데 3교대 근무를 한다. 간병인 업체를 통해 간병인을 활용하는데 24시간 상주하고 간병인 한 명이 환자 6명을 돌보고 있다.
중환자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 간병인인데 그 이유는 중환자실은 힘 쓰는 일 많아서라고 전했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는 “환자 목욕은 일주일에 한번, 용변 후 피부세척은 매일 해 준다”고 말했다.
이 요양병원은 공동간병인을 사용하면서 환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입원비에 간병인 비용을 포함해서 정액제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 자부담 금액은 1인당 100만 원으로 정액이 되어 있다. 간병인을 쓰지 않는 경우에는 입원비만 56~57만 원 정도이고 기저귀 값은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데 적으면 3~4만 원, 많으면 5~6만 원 정도 부담이 된다. 이 요양병원의 경우에는 재활치료를 별도로 하지 않아서 필요하면 전문 요양병원에 문의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재활 치료비용은 요양비용과 별도로 가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 환자의 부담은 더 커진다. 어찌됐든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자부담 금액이 50만 원 정도라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요양원의 경우에는 요양원의 사정에 따라서 50만 원보다 적은 비용으로도 환자를 입원시키는 호객행위까지 할 정도이지만 요양병원에서는 환자의 부담이 100~120만 원을 넘고 재활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그 이상 부담이 된다. 결국 요양병원 비용은 병원에 따라, 환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두 가지 사회보험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
따라서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요양병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하는 요양원을 통합하자는 일부의 견해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실시 이전의 논란에서 봤듯이 두 가지 사회보험이 분리된 것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한국요양보호사협회 이경규 상무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 “건강보험료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요양원에서는 요양보호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반면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서 수가가 적용되는 최저 단위가 간호사까지”라고 설명했다.
요양보호사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자격증을 취득했고 근무 여건도 요양보호사 한 명당 환자 2.5명을 배치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았지만 간병인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간병인은 병원의 보조인력이기 때문에 임의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만일 간병인 대신 요양보호사 고용이 의무화된다면 건강보험 수가가 올라가게 될 뿐 아니라 이는 병원의 경영권까지 간섭하게 된다는 얘기다.
근무시간도 요양보호사는 24시간 근무하고 나면 익일은 쉬는 반면, 간병인은 24시간 상주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개인생활 유지는 곤란하다. 따라서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이 함께 근무하면 서로 잘 지내기 어렵다. 물론 급여도 서로 다르다. 요양보호사의 급여는 사회보험에서 지출되므로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인상 요구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양보호사의 월 급여는 120~140만 원 정도인 반면 간병인은 월 300만 원 정도이다. 간병인은 취업이 막막한 50~60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고소득 직종이 되어 왔다. 환자 입장에서는 간병인 비용이 부담이 되고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지만 그동안 간병인으로 생활해왔던 사람들은 간병인을 요양보호사로 대체하는 것도 불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잘못된 사회적 문제들을 하루 아침에 고치기는 어렵다.
건보공단의 흑자와 포괄간호 서비스 도입
그러나 병원들이 청구했지만 아직 지급하지 않은 진료비가 5조 3천억 원이나 되기 때문에 실제 재정 여력은 약 3조 원 정도이며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험료로 작년에 걷은 돈이 약 45조 2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8% 인상됐지만, 지출해야 하는 보험급여는 7% 밖에 늘지 않았다는 게 공단의 해명이다.
그러나 공단의 수입과 지출의 증가 차이인 1% 포인트는 4,500억 원으로 이는 흑자 폭의 고작 12%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공단의 흑자는 필요했던 돈보다 더 많이 걷었거나 아니면 써야 하는 돈을 지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회보험이 복지가 아닌 탐욕을 추구한 결과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공기업들이나 공공공기관들이 그동안 관행상 그래왔듯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흑자 역시 사업상의 흑자라고 우기면서 임직원들의 인센티브나 복리후생을 위해 나눠가진다면 그것은 사회보험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케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내린 결단에 3대 비급여의 일부를 급여로 전환하는 것이 있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3대 비급여인 선택진료, 상급병실, 간병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서 환자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뀐다고 밝혔다. 선택진료비의 경우 우선 올 하반기부터 평균 35%가 인하돼 환자부담이 줄어든다. 2016년까지는 선택진료 의사수가 대폭 축소되고, 2017년에는 선택진료비의 50%를 건강보험이 지원한다. 또한 올 하반기부터 4인 병실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부담이 28~34% 정도 절감되고, 내년부터는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실이 50%에서 70%까지 확대되는 등 일반병실 이용에 불편이 줄어든다.
중증환자나 노인환자에게 필수적인 간병비 부담은 포괄간호 서비스라는 제도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다.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 간호인력이 가족 대신 환자를 돌보는 서비스로, 올해 공공병원 등 33곳에서 먼저 시작되고 중장기적으로 전체병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포괄간호 서비스 이용부담은 건강보험에서 50%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3대 비급여 개선은 전체 질환에 적용되며 선택진료와 상급병실을 운영하는 모든 병원에 적용된다. 3대 비급여 개선에 필요한 재원은 2014년에는 건강보험 추가 인상은 없고, 2015년부터 3년간 매년 1% 인상이 될 때 확보가 가능한 수준으로 예상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 1세대 당 월평균 1,000원씩 추가 부담하는 정도이다.
문제는 노인요양과 관련해서 사회보험이 두 가지로 나뉜다는 점에 있다. 요양원에 적용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요양병원을 포함한 병원에 적용되는 국민건강보험이 그러하다. 따라서 건강보험에서 아무리 흑자가 나더라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두루 그 혜택을 보게 하려면 또 다른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당초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지만 노인의료비용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국민건강보험과 구별하는 방안이 채택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보험, 의료복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정책입안자들이 내린 결정이다.
공공부문의 적자는 국민의 빚이고 공공부문의 탐욕이 빚어낸 흑자는 사업을 잘해서라는 이러한 생각부터 고쳐져야 의료복지도, 노인요양도 제대로 정립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Me
(M이코노미매거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