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전문직 비자(H-1B)의 수수료를 100배 인상한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1년 갱신 때마다 내는 비자 수수료가 한화로 자그마치 1억 4000만 원에 달하고 최대 6년까지만 비자 연장이 적용된다고 한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은 세계 인재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끌어모은 데 있다고 하는데, 미국 기업의 경쟁력에 빨간불이 커졌다는 우려가 현실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비자는 과학기술 및 공학과 수학 분야의 인재들에게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파격적인 조치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힌 바와 같이 전문직 비자가 오랫동안 미국 출 신 인재와 노동자들을 대체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에 대해 충분히 공감은 간다. 유럽과 미국 경제사를 돌이켜 보면, 기업경영자들은 자국 인재와 노동자들보다 통제하기 용이하고 고분고분한 외국인 출신 기술자와 노동자들을 선호해 왔다는 의혹을 받아왔고 상당 부분 진실인 듯하다.
물론 기업경영자들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외국 인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한 것은 아니다. 노사 간에 격렬한 대립과 갈등으로 완전히 갈라서고 나자 기업경영자들이 서서히 외국 인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들 이는 수순을 밟았다. 한편으로는 기업경영자들은 자국의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하거나 분사하는 방식을 병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로로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은 CEO부터 말단 기술 어시스턴트까지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근래 한국인 출신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긴 했으나 1% 수준으로 미미하고 간부급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인력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중국과 인도의 고급인재와 기술자들, 저임 노동자의 경우 멕시코의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지적해왔 다. 또한 월마트와 아마존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국산 초저가 상품들을 무차별적으로 들여오는 바람에 미국의 중소기업들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그로 인해 미국 노동자들의 고용률과 임금인상률을 떨어뜨리게 했다는 비판을 해왔다.
근래 한국의 대형유통업체들이 중국 유통사와 협력하여 중국산 제품을 마구 수입하는 것은 미국의 사례에서 그 교훈을 찾아 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적당해야지 지나치면 역효과가 나고 결국 자국의 경 제공동체를 자해하고 커다란 역풍을 맞게 된다. 이번 전문직 비자 수수료 인상은 확실히 인도와 중국을 표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가 미국 자신에게 반드시 불리할 것이라는 비판에만 솔깃하는 판단은 성급해 보인다. 또 하나 중요한 배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중국인과 인도인 기술자들이 과도한 비중으로 있으면서 순환적으로 자기 나라로 돌아 가는 현재의 구조는 미국의 안보에 위 협이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어쩌면 노골적으로 드러 내지는 않았지만, 전문직 비자의 파격 인상의 실제적인 배경이 안보상 이유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인도와 중국 인재가 자국으로 돌아가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풍부한 인재 가 있는데 몇 사람들 더 보탠다고 확실히 더 플러스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혁신은 인재도 중요하지만 인재들을 활용하는 노하우와 환경이 갖춰지 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와 그들 기업들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이번 조치를 기회 삼아 유럽과 중국, 일본, 한국 등이 인재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고급 인재들을 활용하는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한국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하고 외국의 고급 인재들이 한국에서 그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 주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처럼 높은 연봉을 줄 형편은 안 되지만 안정적인 치안 과정 많은 K-문화만으로도 충분히 유인할 수 있다고 본다.

◇美, 전문직 비자 조치... 한국 인재 유출 억제하는 효과로
트럼프 정부가 들어와서 정부 예산 군살 빼기의 일환으로 2025~26년 연방정부의 R&D 지원을 22% 삭감할 방침이다. 감축액은 4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테크 조사 기관인 ITIF(The Information Technology & Innovation Foundation)에 따르면 이 정도의 지원 감축이 10년간 지속 된다면 미국 GDP를 7000억 달러 감소시키는 등 미국 경제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것으로 전망했다.
ITIF는 연방 R&D 지원의 70%가 대학 연구실로 배정된다며 미국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분야의 인력 육성을 크게 약화 될 것을 우려했다. ITIF는 특히 중국의 R&D 지원율은 지금도 미국보다 높은 기조인데, 미국의 추가 삭감 조치는 미-중 간 STEM 분야의 격차를 좁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조치는 한국 인재들의 미국으로의 유출을 상당 부분 억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이번 전문직 비자 조치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현지 파견 인력들의 비자 완화 추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지만 미국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제도를 바꾸는 나라이다. 전문직 비자 수수료 인상과 한국인 파견직원의 미국 체류 비자 문제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강조하건대 전문직 비자 조치는 인도와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본다. 그러므로 지레 예단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과 협상해서 호주 수준의 비자 쿼터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인력들이 미국에 가서 일하면 ‘미국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로 손해는 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 기술자들이 미국 가서 눌러 앉거나 미국에서 기술을 훔칠 일도 없다.
한국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 해 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등의 논리로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투자와 기술자들의 일시적 체류는 미국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외국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한국 사정을 잘 안다는 지한파 전문가라고 해도 한국의 일부만 좀 알 뿐이라고 본다. 이것은 우리가 미국을 잘 모르는 것과 같다. 서로 상대국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것은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떻게 잘 설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에 크게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지식은 ‘현금 인출기’, ‘주한미군’ 정도일 것이다. 저울추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이상, 우리가 미국 측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이 현재 미국 곳곳에서 공장을 짓고 있는데, 조지아 구금 사태로 자존심 세우지 말고 공장을 한시바삐 완공하고 가동시켜야 한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큰 나라 이기 때문에 연방과 주정부, 각 단위별 상하원, 노조, 시민 단체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도 요즘 들어 국회와 사법부가 삐걱거리는데 미국은 오죽하겠는가. 미국과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위한 수업료라고 생 각하고 너그럽고 담대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이 자초한 미국 위기,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이용하자’는 키신저의 아이디어가 닉슨 대통령에 의해 채택됐다. 당시 키신저 국무장 관의 정책은 군사지정학적으로는 명석한 아이디어였지만 장기적인 안보와 경제 이익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고 오늘날 미국의 처참한 제조업 현실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은 우선 먹기 좋은 곶감을 빼먹는다고, 기술과 자본을 중국에 다 넘겨주면서 물건까지 어마어마하게 사줬다.
중국 인재들을 불러들여 기술도 가르쳐줬다. 잠자는 호랑이를 오랜 기간에 걸쳐 착실히, 과학적으로, 전방위적 으로 키워준 셈이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이들 나라들이 군사력을 키워서 미국에 도전할 일은 없다. 오마바 대통령 때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대처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 국력의 회복은 제조업... 한국의 필요성 아직 느끼지 못한 듯
미국의 기업가들과 전문가들은 조선과 반도체, 원전,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일론 머스크와 빌게이츠, 샘 올트먼, 젠슨 황 등 미국 테크기업의 지도자들이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기업들은 꼭 필요한 말만 한다. 그들은 말만 번지르 르한 정치인과 외교가들과는 다른 실용적 사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지아 현대차 사태에 서 보듯이 일반 미국 여론, 미국 지역 언론들, 다수의 정치인들은 아직 한국과의 협력이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역 사회는 한국인 기술자, 수백 명이 몰려와 일하 고 있는 모습을 보자, 이거 우리 일자리를 또 빼앗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던 여론이 지역 언론과 지역 의원들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오면서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 미국인들은 불법 유무를 떠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노동자들에게 1980년대 이후 몰아닥친 글로벌 라이제이션은 끔찍한 ‘재 앙’이었다는 인식은 매우 강하고 뿌리가 깊다. 이 점을 이해하고 한국 직원들이 미국에 가서 그들을 돕는다고 할지라도 미국인들의 감정 동선을 잘 살피고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필자는 작년에 한국 배터리 공장이 건설 중인 미시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조용한 미시간주 시골에 갑자기 한국인들이 나타나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하면 지역 민심이 처음에 환영하는 듯해도 한국인의 약 점을 찾기 마련이다. 세상의 인심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도 도시 사람들이 귀농자로 시골에 막상 내려가면 거기 동네 민심과 부딪치고 그걸 못 이겨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도 하지 않은가. 우리는 트럼프가 한국을 환영한다는 말과 불법 이민을 철 저히 단속하라는 말을 모순되는 것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이 이민자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랜 피해의식과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지식과 정보 부족을 감안해서 대미 협상에 임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꼭 필요하다. 미국이란 시장을 방기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첨단기술을 가지고 생산한다고 한들 팔지 못하면 한국 공장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 기업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정부는 예산으로 오래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은 몇 달을 버티기도 힘들다. 더욱이 한국의 강점인 제조업이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 및 안보를 위해서 중국의 제조업 진출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 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조선 산업 협력 프로그램처럼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원전 등 우리와의 협력 투자 분야에서 미국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미국 노동자들 의 국내 초청 연수 프로그램도 포함해, 우리나라가 결코 미국 일자리를 빼앗으려고만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미국 제조업이 왜 이 지경이 됐는가, 우리나라는 미국의 사례를 복기할수록 공부가 된다. 미국 기업들의 장점은 해고가 자유롭다는 것인데, 이것이 미국 기업들이 기술을 내 재화하지 못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기업의 기술 내재화 는 한국과 일본처럼 장기적인 안정 고용이 있고 자신의 기업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미국 경영학은 효율만 강조하다가 미국 기업들을 망친 셈이다. 차제에 미국식 경영학은 진지하게 검토하고 구조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기업의 경쟁력과 기술 내재화는 미국식 경영과 일본식 경영의 중간 어디 쯤에 있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 업들의 장점을 배우고 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의 장점을 서로 배울 필요가 있으며 이번 한미 경제협력은 이런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