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향기에 바로 입가에 침이 고인다. 갓 지어진 밥과 된장국의 냄새를 맡고 ‘맛있겠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향기가 맛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향사’ 하면 우리는 대부분 향수, 향초, 화장품 등의 향기를 만드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향사 중에는 우리가 사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관여해 향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역학과를 다니다 갑자기 향기에 끌려 취하듯 일본으로 넘어간 청년이 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음식에 향기를 만들고 있는 윤민택(34) 씨를 만나봤다.
식품 향료 조향사
‘보기 좋은’ 음식 못지않게 ‘향이 좋은’ 음식도 중요하다. 소비자가 제품을 처음 먹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느낀 향은 그 제품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만큼 음식에 향기는 중요하다. 윤민택 씨는 “향료는 주로 식품에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향료를 Flavor, 화장품과 하우스 홀드(house hold) 제품 등에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향료를 Fragrance라고 부른다”며 “그 중에 Flavor는 가공 식품의 제조 공정과정에 소실된 향기를 채워 주는 등, 식품이 원래 가지고 있는 향기를 추구·재현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라고 전했다. 향수나 화장품에 들어가는 Fragrance에 비해 Flavor는 먹을 수 있는 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약이 크다.
우리나라에는 조향에 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아직까지도 서울에 한군데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조향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프랑스나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윤민택씨는 일본행을 택했다. 윤 씨는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다”면서 “일본 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전 6개월 동안은 일본어를 배우는 데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 향기를 맡으며 향을 익혀 나갔다.”고 말했다. 2년 동안 공부도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을 나와도 조향사가 되려면 10년 정도 걸린다고들 해요. 각종 화학물질성분, 향베이스 등 계속 공부도 해야 하고요. 향 하나하나 알아야 그 향을 조합해서 쓸 수 있어요. 언어도 익숙지 않지, 진짜 조향에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조향사, 아직도 부족해
조향은 식품산업이나 의약산업, 담배산업 등 먹는 것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산업에 연관돼 있다. 흔히 먹는 음료, 아이스크림, 과자, 조리식품, 가공품부터 맨솔향, 카라멜향 등의 담배, 전자담배 액상까지 다 향료가 들어간다. 흔히 가게에 진열돼 있는 갖가지 식품들은 향료회사와 제조업체의 합작품이다.
실제 우리 생활에는 향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직업으로서 전망도 밝다고. 윤민택 씨는 “향료의 수요와 필요성에 비해 아직도 국내에는 일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면서 “아직도 조향사 하면 향수와 화장품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 씨는 현재는 주로 과자의 향료를 만든다. 윤 씨는 “껌의 향을 만들고 음료수에 들어갈 향료를 주로 만든다”면서 “직접 만든 제품이 편의점 등에 진열돼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회사 일에 바쁜 와중에도 그는 꾸준히 향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회사의 배려로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 자격도 땄다. 아로마테라피 향기요법이란 식물의 향과 약효를 이용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켜 인체의 항상성(homeostasis) 유지를 목표로 하는 자연요법(natural therapy)을 말한다. 윤 씨는 “그쪽 분야에 크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향에 대해 계속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격까지 따게 됐다”고 전했다. 주로 조향사들은 화학공학이나 식품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직업으로 선택을 한다. 관련 전공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 현재는 ‘국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향료, 인체에 무해해
식품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합성향료에 대해 안전성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윤민택 씨는 ‘합성’ 혹은 ‘화학적 생성물’이라고 하는 말의 뉘앙스 때문에 오는 걱정이라고 전했다. 윤 씨는 “합성향료는 화학적 구조의 면으로부터 보면 대부분이 천연향료물질이나 식품성분과 동일하다”면서 “바닐라콩의 성분으로서의 바닐린과 목재의 리그닌(lignin)을 원료로 합성된 바닐린도 물질로서 전혀 차이가 없고, 다양한 과일에 포함되어 있는 에스터(Ester)류도, 유제품에 포함되어 있는 락톤도 이와 같다”고 예를 들었다. 이어 “웰빙시대라고 해서 무조건 천연향을 쓰면 좋은 것으로만 아는데 오히려 천연향이 성분상 몸에 안 좋은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조향사라는 직업에 만족해하는 윤민택 씨에게 애로사항은 없을까. 윤 씨는 “아무래도 계속 코를 사용해 일을 하다 보니 쉽게 피로해지고 머리도 아프고 한다”며 “일하는 중간 중간에 옥상에 올라가 충분히 코를 안정화 시키고 집에 가서는 향초를 피워 코를 안정시킨다”고 전했다. 또 향기를 맡고 비교해야 하다 보니 향수를 사용할 수 없고, 로션이나 스킨도 무향, 무취로 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 윤 씨는 “향을 맡을 때 다른 향이 섞여버리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향기를 수출하는 날까지
그럼에도 윤민택 씨는 평생 이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게 말한다. 아직 한국은 교육기관도 없고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향 기술력도 떨어져 아직 해외베이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향사를 꿈꾸는 학생들도 교육기관이 없고 관련 정보도 부족하니 관심을 보이다가도 결국 관심을 접는 게 다반사라고 전했다. 윤 씨는 “물론 향기에 민감하고 코가 특별한 사람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향기에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직업이 조향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업이 이어져 가려면 결국 교육기관이 갖춰져야 하고 인재 양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향전문 교육기관을 만들어서 후배를 양성하는 게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향료업도 커지고 나아가 해외베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향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역수출하는 날을 꿈꿔요.”
MeCONOMY Magazine Ma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