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맘때쯤 고향에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낫 들고 들과 산기슭을 헤집고 다녔다. 언덕배기 쑥대며 잡풀들, 싸리나무며 잡목들까지 죄다 베어 지게로 지고 한곳에 모아 마을 두엄을 조성했고, 집마다 개인 두엄자리를 따로 만들었다.
우리 집 두엄은 돼지우리 옆 채전(菜田) 끝머리에 있었다. 온갖 풀을 베어다 쌓고, 닭똥이나 아이의 응아도 집어넣었다. 부엌 아궁이 속 재를 헛간에 모아두었으며 오줌통에 오줌도 받아 썩혔다. 이렇게 숙성한 거름과 퇴비는 흙들이 먹는 식사였다. 수확이 끝나면 흙에 듬뿍 먹였다. 두엄을 만드는 한 버릴 게 없었다. 사람에게서 농작물로, 가축으로 다시 가축에서 사람으로, 농작물로 순환됐다.
생산성 위주의 농업과 축산업이 공존하는 요즘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지만, 완전히 숙성한 두엄으로 키운 맛 있는 푸성귀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 소리를 하면, “요새 그렇게 농사짓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고 “너 혼자 시골 가서 살면서 직접 길러 먹으라”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 말 또한, 틀린 게 아니지만 요즘 밥상에 올라오는 상추 등의 푸성귀를 먹다 보면, 내 입맛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아무래도 흙 속의 토양 유기물이 비료와 농약의 사용으로 줄어든 탓이었으리라.
토양 유기물은 퇴비, 녹비 작물, 볏짚을 비롯한 각종 유기물로 만들어지는데 그중에 제일 좋은 것은 예전의 두엄과 같은 완숙된 퇴비다. 완숙퇴비는 퇴비 원료 속의 단백질과 당분을 비롯한 각종 양분과 유해물 그리고 유기물의 구성 물질들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흙에 들어갔을 때 흙과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안정된 상태이다.
퇴비의 원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목질류(木質類)로 만든 완숙퇴비의 경우 5년 이상 흙 속에 존재하며, 흙보다 20배 이상의 양분과 6~10배의 수분을 보유해 땅심을 높여주고 작물이 잘 자라게 해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식물 고유의 영양분을 듬뿍 담게 해주는 것이다.
최근의 농산물 분석자료를 인용해 각종 농산물의 양분이 우리 세대 할아버지 때의 것에 비해 20%에 불과하고 미국 사과의 경우, 철분 함량이 100년 전보다 40분의 1로 줄어드는 등 농작물의 부족한 각종 미네랄이 노화와 성인병 원인이 된다는 연구 자료가 있다고 밝힌 석씨는, “물과 공기를 통해 흡수가 가능한 탄소, 수소, 산소 외에 규소와 니켈 등의 비료 성분 18종을 공급하는 수경재배와 완숙퇴비 속에 들어있는 60~80종의 미네랄을 먹고 자란 농작물의 차이가 엄연한데도 수경재배는 청정채소라 더 맛있고 몸에 좋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어이가 없어 했다.
참고로 수경재배는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지구상의 천연 고체 원소 92종 가운에 우리 인체에서 발견되는 원소는 82종,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몸속에 있는 미네랄 등의 무기물은 배설이나 자연 소모로 줄어들어, 몸이 노화하고 병을 앓게 된다. 이를 보충하려면 오로지 농작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를테면, 비타민은 식물과 동물이 합성하니까, 사람은 이것을 먹으면 되는데 미네랄은 인간이나 식물과 동물이 합성할 수 없어서 오직 흙 속에 있는 걸 농작물이 먹으면 사람은 이 농작물을 먹어야 몸에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흙과 인체가 따로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 같은 하나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흙이 살아있으면 농사는 저절로 되고, 농작물은 모두 약이 된다. 약과 음식이 본래 하나였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도 흙 속에 유기물이 넉넉하고 미생물이 활발하게 살아서 본래의 영양소를 가진 건강한 농작물로 자라줄 때 가능한 소리다.
병든 흙에서 나는 농산물이 어찌 몸에 좋을 수 있으랴. 흙이 건강해야 우리 삶도 건강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안전한 농산물 생산을 위해 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식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