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이 조금 낯설다. TV를 켜도 신문 기사나 휴대폰 뉴스를 봐도 정치 뉴스는 건너뛴다. 분노도 없고 기대도 없기 때문인데 관심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 결과를 보면서 문득 그 압도적 숫자는 정당정치의 성취가 아니라, 더 이상 질문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신호처럼 읽히는 것이었다. 동시에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낙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의 표가 사표가 되어 그들의 정치적 의사는 기록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절대 다수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선거가 과연 민주적일 수 있을까? 다수의 승리가 곧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패배한 선택들이 제도 안에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구조라면, 선거란 참여를 독려하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무력감을 학습시키는 과정이 되지 않는가 이런 회의가 들었다. 이대로 가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정치의 토대였던 ‘정당’ 시스템이 머지 않아 무너지고 말겠다는 예감도 스친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정당보다 더 나은 제도가 있다는 확신은 없다. 정당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이기 때
마음의 작동법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한 때 우리는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뇌 지도를 펼쳐 들었다. 이 생각은 전두엽, 저 감정은 편도체, 기억은 해마라는 식이었다. 뇌의 각 영역이 고유한 기능을 맡고 있다는 모듈식 설명은 명쾌했고 교육과 치료, 자기 계발 담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다. 필자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없이 뇌의 특정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하는 장면을 봤다. 아무튼 뇌 기능론은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는 실제 인간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삶은 늘 예외로 가득했고 사람은 언제나 정의를 벗어났으니까. 현대신경과학은 이제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마음은 고정된 부품의 합체가 아니라, 하늘을 가르며 소용돌이치는 찌르레기 떼에 가깝다. 수천 수만 마리의 새가 한 덩어 리처럼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중앙 통제탑도, 단일한지 휘관도 없다. 순간순간 형성되는 패턴이 있을 뿐이다. 뇌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영역 하나가 감정이나 생각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뇌 전반에 걸쳐 분포된 신경 세포 집합체들이 상황에 따라 연결되고 해체되며 하나의 패턴을 만 든다. 마음은 머물지 않는 흐름이고 부위가 아니라 관계다.
강대국 정치가 익숙한 양상으로 돌아왔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지역, 무역로, 정치적 동맹에 대한 특권적 주장을 다시금 내세우고 있으며, 종종 냉전 이후 시대를 규정해야 했던 법적 제약을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강요된 위계질서에 의해 형성된 국가들, 이를테면 인도, 브라질과 같은 국가들은 다양한 수준의 점령, 지배, 또는 외부의 제약을 경험해 왔다. 이들 국가는 통치 방식, 안보 문제, 개발 전략에서 깊은 분열을 겪고 있지만, 지배와 저항이라는 공통된 역사를 통해 다져진 정치적 문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 문법은 힘들게 쟁취한 자산이며,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이들은 필사적으로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대륙을 넘나들며 동맹을 맺기보다는 양다리를 걸치고, 확고한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상황을 살피고, 굴복하기보다는 거래적인 방식으로 협상하려 할 것이다. 또한, 무역을 다변화하고, 자금 흐름을 바꾸고, 대안적인 파트너를 발굴하며, 선택의 폭을 넓히고 그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리라. 이들에게는 공급망, 결제 시스템, 에너지 흐름, 데이터 네트워크, 식량 시장 등 모든 요소가 압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세계 질서는 아마도 안
트럼프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고 새로운 국정 운영 구상을 발표한 후, 세계는 더 이상 ‘일시적 충격’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제 질서를 떠받치던 규칙과 관행, 금기와 합의가 하나둘씩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안보 동맹은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며 신정(神政)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을 발사하며 냉전 이후 암묵적으로 지켜진 선을 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관통하는 인식은 분명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세상은 끝나고 있으며,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국제정치·경제 분야의 전문가 다섯 명에게 “다가오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를 물은 뒤 이들의 답변을 종합해 혼돈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둥을 세웠다. 여기에 필자의 의견을 덧붙여 탈질서의 세계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 에너지가 다시 세계 질서의 중심이 되었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목한 첫 번째 키워드는 ‘에너지’다. 이는 새로운 화두라기보다는 가장 오래된 문제로 귀환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9일자 뉴욕타임스는 〈걱정을 멈추고, 산업형 음식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을 쓴 이들은 곧 출간될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라: 산업화로 만든 식품이 좋은 이유와 더 나은 식품을 만드는 방법》의 저자인 두트키에비츠 박사와 로젠버그 박사다. 이들은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은, 정크푸드든 채소든 가리지 않고 산업화한 시스템의 일부”라면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시스템의 규모, 신뢰성, 안전 기준, 그리고 풍부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에덴동산 같은 이상적인 음식을 쫓는 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들 역시 “패스트푸드점과 형형색색의 정크푸드 상자로 가득 찬 식료품점 진열대가 지배하는 식생활은 심장병, 비만, 당뇨병의 만연을 초래하는 등 미국 가정의 약 14%를 식량 불안정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를테면 식물성 고기 대체 식품처럼 영양가 높은 자연식품을 영양가가 더 높은 가공식품 및 조리식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식품 푸드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신문 광고만 봐도 ‘푸드테크로 여는 미래 먹거리, 강원특별자치도, K-연어 산업의 새 시대 완성’에서부터
20년 전의 청소년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었다. 당시를 떠올리면, 10대 시절 부모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대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간섭처럼 느껴졌고, 잔소리로 들렸으며, 무엇보다 ‘나만의 세계’를 침범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아과 의사들과 공중보건 연구자들의 최근 연구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가족 간의 유대가 성인이 된 이후 더 나은 삶의 질적 수준과 정신적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주 「JAMA Pediatrics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시절에 부모와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인이 되었을 때 높은 사회적 유대감을 가질 확률이 23.4%포인트 더 높았다. 특히 성인의 사회적 행복의 측정에 사용한 '6가지의 모든 지표-예를 들어 소득, 건강, 심리 검사, 삶의 만족도 등) 에서 일관되게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 연구 결과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로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면 접촉이 급격히 줄어든 사회다. 가족끼리 밥을 함께 먹는 시간은 줄었고, 대화는 메시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올 하반기부터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뢰(Le Cordon Bleu)’처럼 한식 교육의 세계적인 기준이 되는 ‘수라 학교’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거주 외국인 조리사, 조리 전공자, 그리고 대중적이고 실무적인 외식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식을 글로벌 미식의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보다 민간 교육기관을 공모·선정하여 각 기관의 특색을 살린 전문 교육을 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신청 방법과 상세 모집 공고는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나 한식진흥원을 통해 공지될 예정이다. 해외에서건 국내에서건 한식의 이름으로 팔리는 음식이 제각각이고, 그중 상당수가 ‘한식 풍’에 그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한식은 ‘손맛·칼맛·불맛’이라는 아날로그적 설명이 격에 맞는 것처럼 여겨 왔다. 이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하지만 계량화되지 않은 감각의 언어로는 국경을 넘는 순간 표준이 되기 어렵다. 해외에서 한식을 배우는 이들에게 “대충 이 정도” “불 조절은 느낌으로”라는 설명은 재현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각자의 해석이 덧붙여지고, 한식은 빠르게 변주되며 원형과 멀어진다. 세계화의 걸림돌은 바로
국내외 경제의 경고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경제 지표를 봐도 뭔가 답답함과 혼란이 뒤섞여 드는 기분이다. 기업과 소비자, 투자자와 노동자들이 과거의 경제적 어려움에 어떻게 반응해 왔는지를 보여주던 익숙한 지표들이 더 이상 믿을 만하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경제 데이터는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정작 그것을 해석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는 한 번도 정상 궤도로 돌아온 적이 없다. 여기에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시 밀어붙이고 있는 보호무역과 지정학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은 불확실성을 한층 키웠다. 글로벌 공급망은 정치의 인질이 되었고, 통화·무역·안보가 뒤엉킨 세계에서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식 시장은 환호한다. 코스피는 5000을 넘었고,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000조 원에 이른다.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는 호황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하다. 하지만 거리로 나가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공실을 알리는 임대 간판이 즐비하고, 자영업자는 한숨을 쉰다. 물가는 이미 체감상 ‘천문학적’ 수준에 도달했다. 장바구니와 월세, 공과금이 삶을 압박한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의 토양 과학자 「페드로 A. 산체스」 박사가 85세로 서거했다는 부고 기사를 읽었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척박한 땅심을 살려 식량 증산에 이바지한 그는,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옥수수와 같은 작물을 수확한 후 '세스바니아(Sesbania)'나 '테프로시아(Tephrosia)' 같은 콩과 식물 나무들을 심어 1~2년간 나무들이 뿌리에 질소를 포집해 식물이 먹을 수 있는 형태인 암모늄 등으로 바꾸어 가득 저장하게 하고, 떨어진 잎이 천연 퇴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다. 그런 뒤 나무를 베어내 잎과 잔가지를 흙에 묻고 그 자리에 다시 작물을 심게 했다. 그 결과 비료를 전혀 주지 않았어도 토양의 질소 함량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옥수수 수확량이 2~4배로 증가했다. 비료를 쓰지 않는 이 농법은 '녹색 혁명'의 아프리카 버전으로 평가받아 농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이 그에게 주어지기도 했다. 고 산체스 박사가 꿈꿨던 토양은 미생물이 살아 숨 쉬고 탄소를 머금으며 스스로 생명을 길러내는 '살아있는 유기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는 비닐하우스라는 거대한 플라스틱 돔 안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이라는 링
인공지능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종종 신대륙 발견의 대항해 시대에 비유된다. 지도에도 없던 대륙,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땅. 그곳에 금이 흐르고 향신료가 쌓여 있다는 소문이 돌자 모험가들은 앞다퉈 항해에 나섰다. 그들은 바다를 건너 돌아와 보고서를 올렸고, 보고서는 다시 투자금을 끌어왔다. 위험은 컸지만, 약속된 미래는 더 커 보였다. 페르난도 세르반테스의 신대륙 정복사를 담은 《정복자들》이란 책을 보면 1500년대 초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지만, 그 발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콜럼버스가 도달한 "인도"는 자급자족적인 군도일 수도 있고, 인도와 중국으로 향하는 약속된 관문일 수도 있으며,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대륙일 수도 있고, 신화와 초자연적인 힘의 영역일 수도 있었다. 더 멀리 나아가는 탐험가들은 원시 부족이나 중국 함대, 용과 개 머리를 한 인간(문명 세계의 끝, 즉 인도나 아프리카 깊숙한 곳에 사는 존재),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동방의 신비로운 기독교 왕국을 다스리는 사제 왕), 혹은 잃어버린 아틀란티스(9,000년 전 대서양에 존재했던 거대하고 강력한 섬나라. 아틀란티스 사람들이 탐욕과 오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삼겹살은 늘 양면의 평가를 받아왔다. 한쪽에서는 “국민 메뉴”라 부르며 회식과 일상의 위로를 상징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주범으로 지목돼 건강의 적으로 낙인찍혀 왔다. 특히 심혈관 질환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삼겹살은 ‘맛은 있지만 위험한 음식’이라는 모순된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인식이 굳어져 있던 가운데, 최근 영국 BBC 산하의 디지털 매체 「BBC Future」가 소개한 돼지고기 지방, 이른바 라드(lard)에 대한 평가는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BBC Future」는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식품을 분석한 영양 평가에서 돼지고기 지방이 비타민 B군과 비타민 D, 단일불포화지방산을 고루 갖추고 있어서 조사 대상 식품 가운데 8위라는 점을 조명했다. 이는 삼겹살을 마음껏 먹어도 좋다는 권유가 아니라, 우리가 막연히 나쁘다고 여겨온 음식에 대한 인식을 과학적 분석 앞에서 새롭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실제로 삼겹살 기름이 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문제는 심혈관계 질환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누구나 과도한 섭취를 금하고 적정
"들깨씨처럼 뿌려진 카페, 그러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2월 2일) 뉴욕타임스는 “한국엔 커피숍의 문제가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우리나라 인구가 5100만명인데 8만개의 카페가 있으며, 서울에만 1만개 이상으로 커피 문화가 강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조차 서울의 번화한 강남 지역에 비할 바 못 된다고 했다. 한국지방정보연구원이 공개한 커피점 분포도를 보면, 서울 전역에 들깨씨를 뿌려놓은 듯 카페가 점점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골목마다 같은 간판이 겹치고, 거리마다 몇 미터 상간으로 비슷한 카페가 들어섰다. 이들 카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지난해, 60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닫은 카페가 새로 문을 연 카페보다 많았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카페 붐이 일어난 것은 치열한 취업 시장의 대안을 찾는 심리와 트렌디한 음료, 디저트,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 때문이라고 카페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거기에다 새로운 것이 인기를 끌면 순식간에 관련 사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모방 문화까지 가세해 해당 시장은 금세 포화 상태에 이른다. 기사에 따르면 아파트에서, 종종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사람들
UN이 추진하고 있는 전 세계 바다의 60%인 공해(公海)와 심해저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공해(公海) 생물 다양성 협정”이 발표되기 시작됐다. 일명 BBNJ((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이라고 부르는 이 협정을 비준한 한국 등 81개국은 앞으로 협정이 규정한 해양 보호와 개발 수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 협정은 공해의 해양 생태계 훼손이 국제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해양 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국제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UN에 의해 마련됐다. 2004년 UN이 총회에서 협정 추진을 결의한 이래 20년 만인 2023년 협정문이 공식 채택됐고 지난해 9월 모로코가 국제법 요건인 60번째 비준국이 되고 나서 4개월 간의 유예기간이 끝나 다음 주 유엔 총회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조약은 서명만으로는 효력이 없고 각국 의회의 비준을 마쳐야 법적 구속력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2023년 10월 협정문에 서명한 뒤 지난해 3월 동아시아 국가 중 처음이자 전 세계 21번째로 비준했다. 중국과 일본도 지난해 12월에 비준하는 등 현재까지 전 세계 81개국이 협정에
“빠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 대화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필수입니다. 대화의 정신으로 하나가 됩시다(In a fast-paced, competitive world, dialogue isn’t optional: it’s a necessity, Join us in the Spirit of Dialogue)” 스위스의 눈 덮인 봉우리로 둘러싸인 계곡 아래 높은 첨탑이 있는 교회가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다보스에서 202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막이 올랐다. 전 세계 정상과 기업가, 학자, 시민사회 지도자 등 3천여 명이 모여 19일부터 오는 23일까지 격론을 벌인다. 매년 이곳에 모이는 세계의 권력과 자본, 기술의 중심에 선 사람들로 다보스의 겨울은 그들만의 잔치 같아서 일반인들의 시선은 늘 차갑지만, 올해 역시 회의의 주요 주제인 “대화 정신” 아래 제시된 5대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지구 환경의 한계 내에서 어떻게 번영을 구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회의는 크게 세 곳에서 진행된다. 컨벤션 센터, 2024년에 처음 선보인 약 6만5천 평방피트 규모의 임시 목조 샬레 인 쿠르파크 빌리지 (매년 조립 및 해체됨), 그리고 지역 하키팀의 홈구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또 회의, 모임 등에 참석하지만 정작 마음을 기댈 사람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친구 사귈 나이가 지난 건가?” 스스로 다독여 보지만, 고립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 속에 있는 데도 "외롭다"는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수도권에 사는 대학 친구와 가끔 전화를 주고받는다. 통화 끝에 늘 “살아 있을 때 자주 보자”는 말이 오간다. 말은 참 그럴듯하나 막상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내 고립감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추억은 반갑지만, 지금의 삶을 나눌 이야기는 점점 줄어든다. 서로가 변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위로보다 허전함이 남을 때도 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동호회나 각종 모임이나 세미나에 나가 보기도 한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가지만 대부분의 모임은 그냥 모임으로 끝난다. 명함을 교환하고 안부를 나누지만, 그다음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쉽지 않네”라는 실망감만 남는다. 필자가 이런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한창 활동할 때 한 세미나에 참석하며 명함을 쇼핑백에 잔뜩 넣고, 쉬는 시간마다 사람들에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