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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M-R&D] 저속력의 교육 제도

M이코노미 독자에게 제공하는 독서(Reading)와 토론(Debating) 공간입니다.

【M이코노미 김다훈 기자】우선 용어 설명이 필요하겠다. 미래학자 토플러 부부는 『부의 미래』(2006년)에서 ‘어느 국가가 경제 발전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주요한 제도가 속도에 뒤처지도록 방치하면 부를 생산하는 능력이 결국 저하’하게 되는 것을 ‘속도일치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회제도의 변화 속도를 도로 위를 달리는 아홉 대의 자동차에 비유하였다.

간략히 소개하면 시속 100km인 기업, 90km인 사회단체, 60km인 미국의 가족제도, 30km인 노동조합, 25km인 정부 관료기구와 규제 기관, 10km인 미국의 교육제도, 5km인 국제기구, 3km인 정치구조, 1km인 법률 순이다. 그는 10km인 미국의 교육제도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교육 제도는 대량생산용으로 설계되어 공장처럼 운영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노동조합과 교원의 표에 의존하는 정치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며, 20세기 초의 경제를 완전히 반영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 국가의 교육 제도가 미국보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민간 부문에서 기업이 새로운 형태의 경쟁, 새롭게 변해가는 경쟁은 변화를 재촉하는 요인이 되지만 공교육 제도는 보호된 독점체이다. (중략) 시속 10km로 움직이는 교육 제도가 그보다 10배의 속도로 변화하는 기업에서의 일을 잘 처리하도록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을까?


토플러가 말한 것은 분명 미국 사회의 모습이지 한국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현 실태를 지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변화의 속도에 가장 민첩하지 못한 법률과 정치구조, 관료기구가 속도전이 필요한 기업과 사회단체가 달리는 도로의 장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과속하기 위해 법률과 정치구조, 관료기구라는 가속 페달을 몇개 더 달고 질주하는 기업문화는 최근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교육 제도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

 

토플러는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관료기구의 자동차조차 백미러에는 더 늦은 자동차의 모습이 비춰진다. 타이어는 펑크가 나고 라지에터에서는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뒤에서 오는 자동차에 방해가 된다. 특별한 역할을 하지도 않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 4천만 달러의 경비가 들어간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믿기 어렵겠지만 매년 그 정도의 경비가 들어가고 있다. 이 차에 타고 있는 것은 미국의 공교육 제도이다.


관료를 포함한 교육행정, 전문가 조직인 학교 등 교육체제가 시대의 변화와 정신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교육 제도는 ‘속도일치의 법칙’에 맞지 않는 것이다. 

 

교육은 정신적, 문화적 활동이다. 교육이 개개인의 인격을 완성하는 활동이면서도 사회와 국가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서만이 개인의 성취와 국가의 장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영국에서 갈수록 늘어가는 홈스쿨링으로 개인이 성취를 할 수 없고 국가의 장래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중지능 이론을 개발한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가드너(HowardGardner)가 『교육받지 않은 마음』(The Unschooled Mind)에서 지적하였듯이 미국은 정식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나라이므로 학교 교육이 인생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보편적인 사회에서 잘 교육시키는 일과 잘 교육을 받는 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책무이다. 학교 교육이 국가제도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어도 비판적이지 않으며, 일정 기간 취학의무를 부과하여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벌을 주어도 당연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 문제의 제공자는 정치일 수도 있고 관료사회의 결집체인 정부일 수도 있다. 지방교육행정일수도 있고 교육 현장일 수도 있다. 누구든지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때로는 학부모일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교육 또는 교육정책에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전문가 집단일 수도 있다.


토플러의 지적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저서『미래의 충격』(1970년)에서도 ‘지금의 교육 제도가 불변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생각’이라고 하였고, 『미래의 충격』출간 40주년인 2010년에 미래를 예측한 보고서 ‘다음 40년에 일어날 40가지’(40 For the Next 40)에서는 정부와 산업의 리더는 가속의 혁명적 변화에 대비하여 정치와 사회를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지난해부터는 유럽에서 확산된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키워드가 되어있는데, 앞서 토플러의 말들이 우리나라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주장의 정당성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번지고 있는 유럽발 제4차 산업혁명도 우리나라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하여 마치 위기에 던져졌다고 오해할 정도로 범용되고 있고 많은 전문가들이 다가올 미래의 모습에 대해 상상과 같은 약속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 이름 모를 액체를 마시고 신체가 동물로 변하고 커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앨리스마냥 어떤 것이 맞는 말인지 혼돈할 정도로 철학과 증거가 불분명한 언어들이 우리 시대의 시공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생활의 변화에 대해 희망보다는 위기에 포커스가 있다. 과거 미래를 예측했던 토플러도 미래의 희망을 위기의 극복에서 찾고자 하였으므로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인식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두고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 하고 부의 흐름을 제3의 부의 물결이라고 하였는데(토플러가 말한 ‘부’란 필요와 욕망을 충족하는 모든 것이다) 그간 우리가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던 것도 토플러의 용어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제4차라는 말을 전제에 두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되는 사회가 되어있지만,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위기라고 불안해할 것도 아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벌린(Isaiah Berlin)이 20세기 인류사 형성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두 요인을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이데올로기의 대폭풍'이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기술의 고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든 대처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위기가 섞인 희망 속에서 서서히 관심이 엷어져가는 제1차, 제2차 산업에 대한 대처법이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의식주는 대부분 제1차 산업이나 제2차 산업이 제공한다. 제3차산업은 인간을 편리하게 할 뿐이고, 때에 따라서는 인간의 위기를 자초하는 패러독스도 들어있다. 그래서 필자는 제6차산업혁명이라는 말에 더 관심이 많다.

 

일본의 농업경제학자인 이마무라 나라오미(今村奈良臣)는 농업(1차) + 식품가공업(2차) + 판매, 레스토랑(3차)을 합한 공급연쇄 관리(supplychain)를 제6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하였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도 제3차 산업혁명에 연속한 개념일 뿐이다. 단순한 반복 작업의 영역보다 창조적인 두뇌작업의 영역이 많아진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4차만이 아니라 1차와 2차, 3차산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대비와 전략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중간 중간에 장벽을 쌓아놓은 보수와 진보의 경계, 국가정책을 책임지는 정치인들의 미래관, 관료주의의 한계 등 물질적인 측면보다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야 청년실업, 저출산, 유아와 노인의 빈곤, 교육과 산업의 불일치 등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아닌 갈등의 시대에서의 전환과 좋은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정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정점에는 교육이 있다.


최근 학제개편과 교육부 폐지 등 관료주의에 대한 반감이 정치 이슈화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과반수의 국가가 독립을 쟁취하였는데 대부분의 국가는 근대 서구사회에서 발전한 공교육 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는 지금까지 70년간 산업사회(제2차 산업)의 제도를 그대로 쓰고 있다. 정치권에서 학제개편을 주장하는 것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개혁의 지향성은 있지만 개혁철학은 찾기 어렵고 개혁 목표는 있지만 개혁으로 생길 문제에 대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을 받을 권리의 주체인 우리국민은 어떤 생각은 하고 있는지, 선거에서 승리만 하면 국민의 생각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인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학제개편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왜 바꾸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 제시 등 신중함은 발견할 수 없다.


교육부 폐지론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 5천만 명은 모두 교육평론가라 할 정도로 교육은 가장 큰 관심 대상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출세하려면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들을 집안에서 지역사회에서 많이 들었다. 교육은 출세를 위한 필수적인 코스라는 인식을 교육이 인간의 완성이니 하는 이념적인 가치보다 더 우선시하였다. 


과거 역사에서도 교육이 특수 계층을 위한 특별한 활동이자 사회이동의 수단이 되었으므로 한 가정이 가지는 교육에 대한 인식을 제도의 이념과 다르다고 비난할 일은 못 된다. 그간 정부 차원에서 법도 만들고 행정제재를 만들어 처벌과 단속을 하였는데도 사교육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도 가정의 교육에 대한 기본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며, 지방교육행정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는 각 가정이 가지는 교육에 대한 가치가 학교 교육에서, 사회이동에서 차등이 생기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적, 수시로 국민의 의견을 묻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과잉된 부분은 조정하는 ‘전국적’, ‘광역적’ 시점의 사무와 국가의 교육지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정밀한 통계
를 제공하는 것이 일차적 사명이다. 교육의 안정성이라는 이념에는 이러한 가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중앙행정기관이 국민의 의견을 묻어본 적은 많지 않다. 국민이 참가할 수 있는 자기 의사의 표현은 투표밖에 없다. 민주주의란 국민을 투표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운영하는 자금의 주인으로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존중되어야 하며, 정부 운영에 관한 정보의 알권리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교육부 폐지론도 그간 관료 조직 스스로가 행정의 시선을 국민이 아니라 권력에 두었기 때문에 생긴 반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헌법상 교육을 받을 권리 주체인 국민을 위한 행정이 바로 법률에 의한 행정이며, 교육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념인 공공성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김상규(2017). 『교육의 대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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