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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로…김복동 할머니 28일 별세

1940년 일본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1947년 고향으로 돌아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전쟁·분쟁지역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해 활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밤 10시41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2017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중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병원으로 옮긴 지 17일 만이다.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에 속아 ‘위안부’로 연행돼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다가 1945년 해방 2년 후인 1947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김 할머니는 같은 해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알렸고, 다음 해인 1993년 6월에는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의 만행을 온몸으로 증언했다.

 

이후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에서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 전쟁 및 분쟁지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등 인권운동가로서 세계 곳곳을 누볐다.

 

2012년 3월8일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고, 전쟁 및 분쟁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날 김 할머니는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그래서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5년 12월1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여 받았고, 2017년 11월25일에는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 2019년 1월2일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으로부터 ‘바른의인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도 서로가 화합해,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서 남북통일이 돼서 전쟁 없는 나라,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이런 비극이 안 생기도록 전쟁 없는 나라가 돼서 여러분들의 후손들은 마음 놓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소원”이라고 말했던 김 할머니.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과 일본의 사죄를 염원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됐고, 발인은 2월1일, 장지는 천안 망향의 동산이다.

 

한편,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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