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불교에서 경전 다음으로 ‘논(論)’을 쳐준다. 논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공’ 사상을 논한 용수의 ‘중론’, 대승불교의 논리를 설파한 ‘대승기신론’이 있다. 유교가 정치와 일상의 법도로 자리 잡았던 중국과 조선에서는 이 ‘대의명분론’이 위세를 떨쳤다. ‘명분’을 국어사전에 보면 첫째, ‘각각의 이름이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군신, 부자, 부부 등 구별된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을 이른다.’고 했다. 둘째,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라고 했다. 첫째의 뜻은 「논어」 자로 편에 자로가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를 맡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자 ‘명’을 바로 하겠다’, 즉 ‘정명(正名)’이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의 뜻은 첫째의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요즘에도 많이 쓰인다. 첫 번째의 뜻이 예전 유교 시대에만 통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고 오늘날에도 고위 공직자는 물론 경제인, 연예계와 스포츠계의 스타, 소위 공적인 직업인에게 가차 없이 적용되는 말이다. 유교에서 단 하나의 교리를 들자면 ‘명분’이라고 볼 수 있다. 임금은 왕으로서의 직분을 다해야 하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왕에 관한 이야기, 외교와 전쟁 추이, 별자리의 움직임, 기이하고 신령스런 현상, 그리고 자연재해 기록이 거의 전부다. 그 가운데 자연재해 부분은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왕조가 자연재해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학자 신형식 선생의 저서 「삼국사기 종합적 연구」(2011, 경인문화사)에 삼국사기의 천재지변을 자세히 논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천재지변 가운데 농작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연재해를 꼽아보면, 가뭄 108회, 홍수 42회, 대풍 32회, 지진 91회, 병충해 38회, 상해(서리 피해) 37회, 설해(폭설) 26회, 박해(우박피해) 36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숫자는 신라와 고구려의 창건 시기인 BC 57년, 백제 창업 BC 18년부터 통일신라가 멸망하는 935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치면 그리 많은 자연재해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있었던 해에는 어김없이 백성들이 크게 굶주렸을 것임이 틀림없다. 고구려 제9대왕 고국천왕(재위 179-197)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틀어 영명한 왕으로 칭할 만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초로 진대법을 실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서기 1567년에 명종이 죽고 선조가 즉위했다. 2년 뒤인 1569년 허균이 초당 허엽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결혼했다. 그는 서애 유성룡과 서얼 출신인 손곡 이달을 스승으로 삼고 문장과 시를 배웠다. 26세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첫발을 내딛는다. 1618년 그의 나이 50세에 광해군의 지시로 저잣거리에서 역모 혐의로 목이 잘려 처형된다. 허균은 16세기 후반에 태어나서 17세기 초에 죽은 인물이다. 유럽의 르네상스와 상업혁명, 산업혁명은 14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살았던 예술가와 직인, 항해사, 군인 등 광의의 현장 기술자들과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다. 현장 기술자의 실험과 경험 중시가 17세기 대학의 아카데미즘과 결합하면서 과학혁명을 이끌어냈다. 유럽의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논할 때 당시 천시 받았던 사람들의 점진적인 신분 해방과 자유로운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는 신분 속박으로 중하류 층들이 차별 받았던 것이 사회의 역동성을 근원적으로 떨어뜨렸다. 특히 조선이 중국에 비해서 훨씬 심한 신분 차별이 존재했다. 조선 시대에 신분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천시 받던 계층들과 더불어 변화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깨달음’이 왜 중요한가 하면 깨달음이 있어야 행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아무리 머릿속에 많이 쌓아 놓고 있어도 행동과는 그리 상관이 없다. 우리 주변에 머리가 명석하고 좋은 학교 나오고 박사 학위를 받고서도 행동이 영 아닌 사람들을 많이 본다. 지식만 많이 섭취하는 건 오히려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 ‘지식’을 깨달음이란 과정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도그마’에 빠진다. ‘도그마’에 빠지면 자신의 행동은 되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정죄하게 되고 자꾸 꾸짖는 사람으로 변한다. 정치적 도그마와 종교적 도그마, 이념적 도그마는 사회를 편 가르게 하고 민심을 사납게 만들어 결국 폭력적 사회를 조장한다. 그렇다고 ‘깨달음’이라면 다 찬양받을 만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보편적 진리와 바른 도덕윤리의 기초 위에서 깨달음이라야 한다. 간화선에서도 이 점을 매우 강조한다. 불교의 보편적 가르침을 먼저 숙지 한 바탕 위에서 참구를 강조하고 있다. 극단적 종교지도자도 나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면서도 폭력을 서슴지 않는 논리를 펴고 테러를 행하고 있다. 이들은 보편적 진리와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를 보면 전생과 현생, 후생이 하나의 줄거리로 엮어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 부처님의 전생인 전불 시대 가람 터가 7곳이나 있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시지 않은 절들이 없을 정도다. 이것은 불교의 근본 교리인 연기론의 세계에 연유한다. 연기론은 인간 세상은 물론이고 우주만물의 모든 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이며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타자들의 결과를 빚는다는 불교적 진리다. 부처는 보리수 아래서 파천황의 이 연기법을 깨달았다. 이전에 인류가 ‘우연’의 공포 속에 살아왔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통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와 같이 초월적인 유일 절대신이 부여한 진리이자 명령이 아니라 신들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으로서 연기법을 말한 것이다. 특히 브라만의 결정론적 연기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와 평등을 내포한 연기론이었다. 이런 개명된 연기론으로 불교는 세계로 퍼져나갔으나 힌두교는 인도에만 갇혀 있게 된 것 같다. ‘연기법’으로 말미암아 힘없는 백성도, 천민도 마침내 자신의 삶의 고난을 알게 되었고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연기법에 따라 내가 직접 행한 원인 제공이 가장 큰 만큼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문명의 발생 조건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적정한 숫자 이상의 인구가 존재해야 하고, 둘째 문자가 있어야 한다. 인구의 규모가 클수록 교역되는 물품의 시장도 커져 좋긴 하나 그만큼 풍부한 경제적 부를 탈취하기 위한 전란에 휩쓸리게 될 위험도 상승한다. 문자는 지식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고 정보의 정확성을 향상시키고 이에 따라 자연히 체계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을 지니고 있었던 삼국은 불교와 유교를 한문 경전을 통하여 접하게 된다. 불교이전, 민족 고유의 종교와 사상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실로 많은 학자들이 탐색해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거기에 너무 힘을 쏟은 것은 아닌지 생각될 정도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종교는 아직도 연무에 둘러싸인 새벽에 큰 산 그림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국조신 단군과 산신의 신화들, 풍류도, 홍익인간사상 등의 기록이 소략하기 그지없다. 발굴되는 유물로 상상력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요하 주변과 한반도에 걸쳐 오랫동안 정주하였으나 남아있는 기록들이 너무 없다. 천부경은 너무 짧은데다 상징성으로 가득해 자료로 쓰기가 어렵다. 아무튼 추측건대 삼국시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근원적 조건인 불안을 너무 의식하고 있는데 반해 그 불안을 달래주고 미래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종교적 신앙심이 거의 퇴화해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는 한편 개별 인간은 자기만족과 인권의식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가족과 공동체 윤리와 연대감엔 불편해하면서 자기 파멸적 허무주의와 분열의 고통을 겪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정신과 정치·경제·사회의 위기는 여기에 그 원인을 두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도 선진국에 서서히 진입해가면서 선진국들이 고통받고 있는 실패의 경로를 그대로 추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도덕윤리를 숭상해왔고 하늘(하느님)에 대한 신심이 깊은 가운데 자연과 인간, 인간 상호 간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우리가 서구 선진국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철학과 사상의 좋은 점을 되살려 오늘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종교적 믿음과 실천이 왕에서부터 귀족, 화랑, 백성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일치된 시대가 있었다. 신라의 통일 전후 시기와 전성기였다. 학자들은 그 시기를 제23대 법흥왕(514-540)에
한국경제가 1953년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반세기 남짓 기간에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할 수 있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여러 원인을 들고 있겠으나 조선 선비의 ‘이치 탐구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조선 유학의 치열한 이치탐구 정신의 뿌리는 우리 민족의 ‘재세이화’의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세이화’에 대해 여러 모호한 해석들이 있는데, ‘세상을 보살펴 이치로 화하게 한다’는 뜻으 로 보고자 한다. ‘이(理)’는 이치(理致)로도 쓰인다. ‘재(在)’는 있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다’, ‘살피다’의 의미도 있다. 세상과 인간의 이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 전통은 조선 성리학에 와서 더욱 정밀해지고 나아가 퇴계 선생에게 와서 ‘하늘과 하나 되어 지극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정신 및 종교적 경지를 열었다. ‘이치’는 형이상학적 진리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동양은 자연철학이 미발달하여 서양과학을 만나기 전까지 형이상학적 진리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학문 전통을 갖고 있다. 형이상학적 진리는 우주와 자연의 관찰에 의한 가설과 선현들의 깨달음, 합리적 추론과 체험에 의한 깨달음 등을 근간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다. 이것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경이롭고 미스터리한 부분을 들라하면 단연코 ‘단군사화’가 아닌가 한다. ‘한국의 정신문화를 찾아서’ 제1편 에서 홍익인간 정신을 다룬 바가 있는데 다시 살펴보자. 역사는 노년의 학문이라고 한다. 학문의 연륜이 쌓일수록 학문간 경계를 넘어선 통찰력과 세월이 주는 지혜로 빚어낸 글들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디 역사뿐이겠는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꾸준히 학문에 정진한 학자들은 대단한 업적을 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계에선 정년퇴임 후에도 괄목할 만한 논문과 저술을 펴내는 이들은 극히 드문 것 같다. 그런 몇 안 되는 노학자 중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있다. 신용하 교수는 학문적 스케일로 보면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에 버금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인류 4대 문명 외에 한강문화와 대동강문화, 요하문화를 하나로 묶는 ‘고조선문명’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2010년에 펴낸 그의 책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신용하 교수는 작년 5월부터 문화일보에 이전 글을 업데이트 한 ‘고조선문명’에 대해 12회에 걸쳐 글을 썼다. 그의 글 중에서 홍익인간 정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그의 국부론과 사회복지사상은 당대의 모순을 극복해 국부와 민생을 살리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평가받아왔다. 이런 사실이 후대 학자들에 의해 조금씩 언급돼 오던 중 장용기 초당대 박사가 본격적으로 토정의 전생애와 기록물을 검토하고 나아가 그의 사회복지사상을 세계 복지사상의 효시로 알려진 영국의 구빈법 사상과 비교했다. 작년 2월에 출간 된 장용기 박사의 학위 논문 「토정 이지함의 사회복지사상 연구」를 중심으로 토정의 사회복지사상을 살펴보고 장용기 박사와 인터뷰 했다. 토정 이지함(1517-1578) 중종 12년에 태어나 인종과 명종과 선조대를 살았고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에 숨졌다. 그는 당대의 거유(巨儒)인 퇴계와 율곡, 남명과 동시대에 살았다. 이색의 6세손이며 조카 이산해가 영의정을 지낸 사대부 명문집안이었다. 본관은 충청도 한산이며, 생애 대부분을 마포강변에서 흙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 토정이란 호가 널리 알려졌다. 그는 역학과 수학, 천문지리학에도 밝아 후대에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토정은 1517년 충청도 보령군 청라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작년에 모 한국철학 관련한 세미나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역사담당 교사가 연단에서 이제 “리기(理氣)‘논쟁이니 하는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요즘 학생들이 한자도 모르는데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선성리학의 리기론과 사단칠정론을 어떻게 알아 듣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요즘 들어 한국 철학이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푸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원인은 ’조선성리학‘이 학자 들의 논문 속에서나 거론되고 일반인에게 쉽게 전달되지 못하는 탓도 적지 않을 것이란 짐작이다. 조선성리학은 주자학을 기초로 조선에 꽃피운 성리학이다. 주자학은 우주·자연과 인간 세상의 근본 원리를 리와 기로 설명하고 인간 심성에서부터 정치·사회의 통치·운행 원리로까지 확장한 사상체계이다. 주자학은 ‘리’와 ‘기’의 개념만 이해하면 거의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란 우주자 연과 인간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 이치, 원리를 말한다. 또한 ‘리’는 그러한 존재 원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윤리적 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태극’이 있다. ‘태극’은 ‘천지만물
요즘 나라 안팎이 어지럽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돼 있으면서, 또는 외부 활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광화문과 국회 앞에선 시위가 그칠 새가 없다. 제조업 노조에서 건설노동자들까지 파업을 벌이고 있다. 거리와 시장 바닥을 일터로 삼아 새벽부터 늦 은 밤까지, 혹은 24시간 불 켜놓고 일하는 자영업자들이 ‘못 해 먹겠다!’고 난리다. 기업가들은 기업가들대로 숨 막힐 것 같은 규제에 분을 삭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악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실로 내우외환에 처해 있는 지금, 복잡한 정치경제학적 처방보다 우리 역사에서 지혜를 찾아보는 일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때마침 숭실대 철 학과 곽신환 교수가 올해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국철학사상연구소에 '19세기 조선과 정역사상'이란 역작의 논문을 썼다. 그를 연구실 에서 만났다. 정년퇴임하는 교수들 중에 전공 책을 불태운 뒤 전공과 완전히 결별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와는 달리 정년 후에 더욱 공부에 매진하는 교수들도 있다고 하는데 곽신환 교수는 후자인 듯하다. 앞으로 쓸 책 제목 10여개를 써놓고 있으며 곧 ‘율곡’에 관한 신간이 나올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