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은 무장투쟁 노선과 외교 선전 노선의 두 방향으로 이뤄졌다. 이 두 노선은 상호 보완하면서 그 역할을 다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게 된 영향과 효과를 어느 노선의 기여도가 더 컸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한다면 외교 선전 노선에 대한 그간의 역사적 평가와 서술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진 점이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무장투쟁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거와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극적인 요소가 풍부한 반면, 외교 및 선전 노선은 명백한 셩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장기적으로 진행됐던 원인도 있을 것이다. 한국독립을 향한 외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전개 상해 임시정부는 1920년 5월 시정방침에서 외교 선전 활동의 목표를 밝히고 있다. 즉 일본의 침략주의가 세계평화의 화근이 되고 한국의 독립이 세계평화에 필요하다는 점, 일본과 맺어진 을사늑약 등 조약의 부당성과 1919년 3.1운동 시기에 행해진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를 각국에 알리며, 한민족이 독립국민으로서 자격이 충분함을 실증 자료로써 선전한다는 목표였다. 당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열강들은 조만간 일본이 세계평화의 화근이 될 거
조선은 근본적으로 왕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전제왕권체제이다. 조선은 일본과 서구열강의 체제를 받아들여서 부국강병의 길을 내디뎌야 했지만, 군주가 권력을 백성들과 공유한다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마도 조선왕조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미국식 공치제는커녕 영국식 입헌군주제까지도 갔을까에 대해 의심스럽다. 입헌군주제도 한참 뒤에나 이뤄졌을 것 같다. 개화파 대신들은 감히 군민 공치지는 감히 입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워 했고, 고종은 권력을 공유한다는 관념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종은 대신들과도 국론을 의논할 상대였지,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고 공동책임을 진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과 갑오개혁(왕 현종 저)」에 따르면 초대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은 전제 군주제를 기반으로 행정과 입법, 사법제도의 삼권분립이 가능하나, 의회제 도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개화파 고위 관료였던 김윤식도 민주정보다 군민공치가 더 낫다고 하면서도 기존의 군주제 아래서도 군주의 결단만 있으면 군민공치제와 유사한 정치 운영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했다. 김윤식은 ‘체제’와 ‘정치 운영’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기독교가 이 땅에 미친 영향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은 기독교가 전해 내려오기 전에 모두 유교와 불교, 도교, 무속(샤머니즘)을 공통으로 갖고 있었는데, 나라마다 그것들의 혼합된 모습이나 특징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세 나라는 유일신의 종교 전통을 가진 적이 없으므로 심성이 불안하다. 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세 나라 중 그래도 불교와 무속 신앙에 의지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가장 안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불교와 무속 신앙은 염세적이고 운명적인 성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조선은 성리학이 정치와 사회 전반을 지배했고, 양반 지식인들은 불교와 무속에 대해 무시하거나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일반 백성들은 불교와 무속에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들어왔다. 기독교는 죽음 이후 천국을 약속하는 구원과 삶이 끝나고 그 이후에도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그것을 기록한 성경이 증명해주고 있다는 믿음이다. 인류를 위한 예수의 구원 사상은 자연스럽게 인종과 혈연과 국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평등, 자유의 가치를 아울러 탄생하게 했다. 이와 같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35) 기독교와의 만남, 새로운 열림 한국인은 환인, 환웅, 단군의 자손이라고 해서 천손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단군 기록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곰과 호랑이의 토템 신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고조선과 고구려 지역 유적 발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단군은 환웅 신과 인간의 결혼에 의해서 탄생해서 고조선을 통치하는 세속의 왕이 된다. 신의 아들이 인간 세상의 왕이 되면 종교화되지는 못한다. 고조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정신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홍익인간 정신을 정치와 사회, 개인 영역에까지 확장하고 체계화한 사상가는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고조선 시기에 그런 종교사상가가 있었는지 모르나, 독자적인 문자 문명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와 사상, 학문으로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문자는 필요에 의해 생기고 그런 문자를 기반한 문명도 번듯한 생산력, 활발한 경제 및 무역 활동, 적정한 규모 이상의 인구 포용, 대도시의 형성, 이것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관료 체제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강화하기 위해 문자의 필
안 의사는 1908년 6월 망명지 블라디보스톡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두만강 건너 국내로 들어온다. 함경북도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중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대들은 모두 일본국 신민들이다. 왜 천황의 뜻을 받들지 않고, 러일전쟁을 시작할 때 동양 평화와 대한 독립을 보장한다 해놓고는, 오늘에 와서 이렇게 (조 선을) 침략하니 이것이 역적 강도짓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했더니, 그들이 눈물 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우리들의 본심이 아니요,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사람의 정리인데, 우리들이 만리 바깥 싸움터에서 주인없는 원혼이 되게 되었으니 어찌 통분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이토 히로 부미의 죄입니다. 천황의 뜻을 받들지 않고 제 마음대로 권세를 주물러서, 귀중한 생명을 무수히 죽이고 저는 편안히 누워 복을 누리고 있으므로 우리들이 분개한 마음이 있건만, 어찌할 수 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훗날 역사적 판단이 어찌 없겠습니까. 우리들은 농사짓고 장사하던 백성일 뿐입니다. 이같이 나라에 폐단이 생기고 백성들이 고달픈데, 평화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일본이 편안하기
21세기에 접어든지도 어언 23년이 다 차서 해를 넘길 무렵이지만 동아시아의 파고는 드높고 유럽과 중동 양족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는 미-중 대결을 넘어서 진영별로 더 욱 첨예하게 갈라지는 형국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런 때에 사형을 언도 받고 죽기까지 ‘독립’, ‘평화’를 외친 안중근 의사의 꿈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과 무장 투쟁만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동양평화안을 제시한 선각자였다. 이런 위대한 선각자가 있었기에 오늘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그의 자를 딴 「안응칠 역사」란 이름의 자서전을 집필했다. 이 자서전에 그의 살신성인의 우국 독립정신과 평화 정신이 잘 담겨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 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안 의사는 14세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한 나머지 드러누워 반 년 지나서야 회복됐다고 한다. 안 의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오랫동안 앓았다. 안 의사의 깊은 정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6세에 이르렀을 때다. 동학군이 큰 무리를 지어 인근 마을들을 노략질하자 안 의사 아버지는 마을 사람 70명을 모아 대적했다. 안 의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세계 각국이 차츰 적응함에 따라 경제 회복이 기대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예상치보다 더디고 경제권역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위기에서 탈출 조짐을 보이고 빅테크들이 AI서비스를 선도하는 추세에 힘입어 햇살이 비치고 있다. 반면에 중국 경제는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유럽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여파 탓에 ‘느림보’ 스텝을 밟고 있다. 오랜만에 일본 경제가 중국 리스크에 숨고르기에 들어간 글로벌 큰손들의 관심을 받아 기대감을 높인다.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라는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복합적인 경제 기상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대기업들은 엄청난 재고 부담에 시달리며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곳은 자영업을 비롯한 소기업들이다. 치솟고 있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원가에 그대로 반영된 상태에서 소비 수요는 느린 걸음을 보이는 탓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21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이 상승으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자영업자들의 누적된 잠재 부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일본의 5대 종합상사들에 대한 투자를 늘려 나가고 있다. 미쓰이 물산, 미쓰비시 상사, 마루베니, 이토추 상사, 스미토 모 상사 등이 그들이다. 5개 종합상사 지분의 8.5%를 넘는 돈을 투자했다. 워런 버핏 회장이 추가 투자 사실을 공개하자 일본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2020년에 처음 주식을 산 버핏 회장은 올해 투자에 앞서 5개 종합상사의 CEO들을 차례로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버핏 회장은 가치 투자로 유명한 만큼 이들 일본 종합상사들의 성장 가능성과 경영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버핏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일본 종합상사의 지분은 미국을 제외한 것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 사람의 글로벌 큰손인 미국 헤지펀드 시터델(Citadel LLC)도 일본 기업들의 가능성을 높고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시티델의 창업자 겸 공동최고투자 책임자 켄 그리핀 회장은 니혼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리만 사태로 철수했던 도쿄 사무실을 15년 만에 다시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그리핀 회장은 일본 기업들이 주주 이익과 해외에서의 이익 성장을 중시하는 데에 주목하고 투자 기회를 확대할 의
대화형 AI서비스인 ‘챗GPT’ 광풍이 일고 있다. 출시 두 달 만에 1억 명이 접속했고, 곧 2억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모습은 1990년대 초 인터넷 검색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최초로 대화형 AI서비스를 선보인 오픈AI와 MS, 구글에 이어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도 챗GPT와 유사한 방식의 AI 언어 모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챗GPT를 사용해보고 감탄한 이점은 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답을 찾았던 것을 순식간에 해낼 수 있다는 점, 시험 문제 풀이, 논문과 문서 작성, 외국어 번역 등을 한다는 것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이 과연 현재의 검색보다 나은 걸까. 우리가 어떤 주제를 검색하는 수고를 하는데 있어 불편함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도 많다. 이런 과정이 다 생략되고 챗GPT가 주는 검색 결과만을 의존할 때 그만큼 사고가 제한되고 종속될 우려가 있다. 또 논문과 어떤 문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 만들기가 아니다. 그간 힘들여 수집한 자료와 경험, 노하우를 정리하고 의미 있는 콘셉트를 세워서 주장을 펴고 솔루션을 제시할진대, 그런 작업을 챗GPT에 맡겨버린다면 그런 작업을
2023년 새해가 밝자마자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래 이번처럼 한꺼번에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직원들의 해고를 실시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확산과 정착이 이끌어왔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대량해고 사태의 의미와 영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까지 발표된 것을 종합해보면 구글이 12,000명, 마이크로소프트가 10,000명, 아마존이 18,000명, 트위터 3,700명, 테슬라 6,000명 등 테크 기업들의 해고자는 7만여 명에 이른다. 빅테크 중의 빅테크인 구글의 해고는 의심심장하다. 구글의 해고자는 전체 직원의 6%에 이르러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번에 AI 부서의 직원들도 해고 대상에 포함된 것은 구글의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읽을 수 있다. 순다 피차이 구글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국 내 해고 조치는 즉각 실행하지만 해외 직원들은 현지의 법과 관행에 따라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호황을 누리자 인재영입에 열 올렸던 구글이 갑자기 해고 조치를 내린 것은 경영자의
요즘 유럽과 아시아의 자유진영 국가들이 미국을 향해 근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일어나는 총기 사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으키는 파장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이 패배한 2년 전 대통령 선거를 여전히 조작선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추종자들이 만들어내는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편승해 미국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도 가짜뉴스를 생산해내고 있다. 중간선거 직전까지 공화당의 레드 바람이 불 것만 같았다. 막상 개표해보니 달랐다. 민주주의는 역시 선거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혁신과 개혁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음을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볼 수 있었다. 트럼프 바람이 정치판을 바꿀 거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언론도 하나의 소스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언론 보도가 기존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도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반대 층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도 한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 하원의석의 과반수는 공화당에 내줬지만 격차가 크지 않고 상원은 민주당이 지켜냈다. 바이든 정부가 남은 임기 2년간 여전히 험난한 국정운영이 예상되지만, 당초 우려했던 급격한 변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고, 일본과도 이전 정부와는 달리 원활한 관계로 회복시키려는 모습이 국민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와 미-중 관계경색 등으로 인해 한국 수출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 이런 위기 국면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23일 제1차 수출젼략회의를 열었다. 당초 회의 예상 시간을 훌쩍 넘기며 2시간 동안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기업과 무역 단체, 코트라와 수출입은행 등 관계자 4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 5위 수출대국으로 우뚝 서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옛날 박정희 대통령처럼 직접 수출을 챙기겠다고 한 말이 인상 깊다. 윤 대통령은 그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전기자동차와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와 화상 면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머스크 최고경영자에게 아시아에 건설할 신규 전기차 생산 공장을 한국에 세워달라고 요청했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이에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현재 테슬라 자동차는 중국에서 현지 자동차 판매세에 밀려 수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테슬라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시장이 좁은 한국에 공장을 건설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