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통계청이 교육부와 공동으로 실시한 ‘2024년 초중고사교육비조사’ 결과가 공표되어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2024년 한 해에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이 29.2조 원으로 막대하다. 이는 교육부가 유아교육에서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등 공교육에 사용한 한 해 예산이 95.6조 원이니 사교육에 지출한 돈이 그 3분의 1이나 되는 셈이다.
2024년 우리나라 GDP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기도 하다. 다만 사교육비 조사가 표본 학부모(전국 초중고 약 3,000개 학교의 학생 약 74,000명)의 자발적인 응답에 의존하는 점, 공교육과 사교육의 스푸마토 영역과 같은 방과후학교 등은 사교육비 조사에 포함되지 않는 점, 고액이 소요되는 어학 연수비는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학교 외 교육비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대해 언론에서는 2007년 조사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느니, 정부가 잇달아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았으나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교육 망국론’ 등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일간지조차도 사교육 현상을 “경쟁적 사회 분위기,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 누더기가 된 입시제도 등이 결합해 나타난 고차방정식”으로 정의하고 정교한 분석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어느 평론가는 사교육의 원인을 대학 서열과 학과 서열, 이들 서열이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진단하면서 공교육 자체로 인한 사교육의 비중도 만만치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이 다 옳지만 사회 경제적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교육 비만은 아닐 텐데 사교육을 모든 문제의 근원처럼 접근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전국의 6세 미만 취학 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2024년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조사 결과를 인용하자면 6세 미만 영유아의 절반 가까이가 사교육에 참가하고 1인당 사교육비로 월평균 33만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조사 대상 기간이 유치원의 방학이끼어 있는 시기이고 시험 조사이므로 영유아 모두의 일반적인 사교육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사교육에 노출되고 이제는 사교육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코스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4세 고시’는 유치원 입학을 앞둔 4세 아이들이 유아 영어학원이나영어유치원 입학 테스트이며,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수학 학원에 들어갈 자격을 가리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 ‘7세 고시’라고 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편한 동거
서구 국가에서 민중 대상 공교육과 의무교육이 국가의 보편적 제도가 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그 이전에는 지배계급의 자제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실시하거나 체제 유지가 교육의 목적이었다. 가령 민중 대상의 교육이 실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교육(종파성)이었으며,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아동 중심의 보편적인 교육은 아니었다.
우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누구나 받는 학교 교육은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 국가에서 사회 제도로 도입되어 발전하였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보통교육의 보편화가 이루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대다수 국가가 독립국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헌법과 교육 법제에 모든 국민이 성별,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등으로 차별을 받지 않고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명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 입법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1948년 제정된 헌법 제16조에서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명기하였다(1987년에 전면 개정된 현행 헌법 제3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지며,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현대 교육제도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원리로 하여 국민의 학습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최종 목표로 조직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교육 인권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1966년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989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 국제조약에서도 확인하고 당사국에 이를 보장·실현할 책무를 부여하는 등 만인의 권리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이 중심이 되는 공교육의 원점은 무엇일까?
우선 학교 교육의 설계자들이 중요시하였던 철학은 가계의 경제력에 의한 교육 기회를 통제하고 지역의 아동이 차별 없이 균등하게 교육받도록 개인의 학교 교육에 지출하는 비용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주민의 세금으로 학교를 설치·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도 설계 당시 학교 교육은 아동의 인격 완성과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러한 이념과 목적하에서 평등한 교육인권의 보장과 공공성이 기반한 학교 교육은 균등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즉, 학생 요구에 맞춰 개별지도에 특화하는 사교육과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녀를 가진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교육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녀의 교육적 요구가 공교육으로 인해 충족되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재성을 가진 아이, 세계적인 예술가·운동선수 등을 공교육의 카테고리 안에서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착시현상과 같다. 최근 발전을 거듭하는 생성형 AI(인공지능)가 학교 교육을 보완해 개별 최적화된 학습을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지위 경쟁이 더 격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사교육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갈라파고스화 되어가는 사회
영국에서 제1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45년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잘 사는 국민과 가난한 국민을 서로 공감도 없고 혹성에서 사는 것처럼 습성도 사고도 식사도 다른 두 개의 국민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영국이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의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상을 비난하며 상류계급이 솔선하여 사회계량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경제에 정치가 개입하여 두 개의 국민 상황을 완화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경제 격차, 사회격차, 교육격차가현실화되어 가는 우리나라의 정치계에 던지는 메시지와도 같다.
유아교육에 누리 과정 예산이 지원되고 의무교육인 초·중 학교는 무상이며, 고등학교도 2019년부터 무상교육이 시 작되었다. 고등교육도 소득 연계로 많은 학생이 무상교육 또는 학비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국가 재정을 교 육에 쏟아붓는 데도 아이러니하게 사교육비는 늘고 교육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무상교육 등 공교육의 무상화로 학 교 교육 지출은 줄었지만 가계의 가처분 소득 차이로 사교 육비가 오히려 증가하여 결과적으로는 교육비 전체가 증 가하는 이른바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각 가정이 소유하는 자본의 규모는 다를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조 사에서 확연히 나타나듯이 최상위 소득 가정과 최하위 소 득 가정 간에는 교육비 소비지출에 1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정부의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나타나듯 이 소득이 높은 가정이 자녀 교육을 위해 소득이 낮은 가 정보다 사교육비를 훨씬 더 지출한다는 것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아래 그림이 말해주듯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는 월 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보다 사교육비를 세 배 이상 지출하고 있다. 단순하게 잘 사는 가정은 못사는 가정보다 세 배의 교육 기회와 세 배가 좋은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안정된 직장인과 유복한 가정에서는 임 신하면 태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음식과 충분한 의 료 혜택, 태교에 도움이 되는 음악 등 문화생활을 할 수 있 다. 하지만 근로가 안정되지 않고 생활이 위태로운 가정은 맞벌이 하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으므로 문화생활 은 언감생심이다. 자녀를 출산하면 좋은 가정에서는 주변 친인척의 축복을 받으며 다양한 육아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하루하루의 육아를 걱 정해야 한다. 그야말로 교육격차는 엄마 뱃속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학부모가 사교육을 선택하는 것은 공교육 자체에 큰 결함 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녀가 장래 사회적 지위 경쟁에 유리 하도록 경제적 자본의 확대로 생긴 가처분 소득 등을 교육 비로 기꺼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부모라면 자기 자 신의 취미생활이나 여가 활동에 돈을 쓰기보다는 자녀의 미래 투자에 더 우선적 가치를 둔다는 것이 일반 상식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사교육비 문제, 더 나아가 교육격차 문제는 사회경 제적 요인, 지역적 요인, 게다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투 자하고자 하는 부모의 심리적 요인까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길어진 교육 레이스에다 경제 격차가 확대되면서 교 육격차가 엄마 뱃속부터 시작되는 현실에서 정확한 원인 에 대한 처방전을 정치와 사회에 제시하는 것이 같은 영토 에 살면서 소득별·지역별로 갈라파고스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기초교육학을 전공하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는 학교법인 태재학원 법인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족교육(2017년), 교육의 대화 (2017년), 교육의 폴리틱스·이코노믹스(2022 년,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학교제도:미국·영국·일본(2023년, 문화체 육관광부 2024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경계선 의 교육(2024년, 대한민국학술원 2024년 우수 학술도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