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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공한 사람들이 죽어도 지키는 3가지 원칙

노력하기 싫은 데 성공은 하고 싶다고?

 

[윤영무 논설주간] '노력하기 싫은 데 성공은 하고 싶다'는 책은 저자 이시한 씨가 자신의 유튜브 시청자와 강의를 들은 300명에게 물은 뒤,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선정한 제목이라고 했다.

 

처음엔 나도 ‘이건 도둑놈 심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바꿨다. 젊은이들이 금수저가 아닌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기 힘든 세상이니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하는 동정심이 생긴데다 요즘 젊은이가 내가 젊었을 때 경제성장으로 취업 걱정하지 않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측은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정교하지 못한 사회시스템, 공정하지 않은 평가 알고리즘, 채용, 입시, 결혼, 주택마련 등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니 말이다.

 

능력보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두는 것이 성공의 높은 확률에 좀 더 가깝다. 국민교육헌장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啓發)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정신을 기르자'고 했지만, 1등에서부터 100등까지 순위를 매기고, 개인이 가진 소질에 따라 100명 모두가 1등이 되게 하는 노력이 크게 부족했다.

 

그렇다면, 오이씨만큼이라도 내가 도울 길이 없을까? 하여 요즘 외식 프랜차이즈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세계적인 외식 브랜드 창업자들이 ‘죽어도 지키는 원칙’을 캘 수 있다면 ‘노력 하기 싫은데 성공은 하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였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 미국의 시장분석기관 Statistas는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회사의 브랜드가치를 평가해 다음과 같은 순위를 구글에 실었다.

 

1위 맥도널드 (McDonald’s) 1260억 44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77조 원)

2위 스타벅스 (Starbucks): 445억 300만 달러

3위 서브웨이 (Subway): 187억 6600만 달러

4위 케이에프씨 (KFC): 151억 3100만 달러

5위 도미노 (Domino’s Pizza): 74억 4600만 달러

6위 피자헛 (Pizza Hut): 73억 7200만 달러

7위 팀홀튼스 (Tim Hortons): 69억 400만 달러

8위 버거킹 (Burger King): 65억 5500만 달러

9위 타코벨 (Taco Bell): 52억 1300만 달러

10위 치폴레 (Chipotle): 42억 2200만 달러

 

어떤 평가 기준이 적용됐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브랜드 가치 순위 1위인 맥도널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키워 낸 레이 크록(Ray Kroc, 1901~1984)부터 만나보자.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상상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나 되어 너무 오래전 사람을 불러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맥도날드가 세계 최고 브랜드가치를 가진 회사이니 그 창업주를 돌아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는 1901년, 그러니까 서울이 광무개혁으로 근대적 도시로 바뀌어 갈 무렵에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시카고(Chicago)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20대 시절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30~40대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 강점기를 보낸 연배(年輩)에 해당한다.

 

구글 등 그를 소개한 자료에 의하면 그는 학생시절 토론을 좋아해 남의 이목을 끌고 설득하는 걸 좋아했다. 책을 읽기보다는 매사를 상상하면서 그 상상을 계획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이를테면 레몬향이 나는 레몬에이드 음료를 파는 가판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상상을 하면 곧바로 실천하는 스타일이었다. 기회만 생기면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든 했다.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봄학기가 끝날 무렵, 미국은 제 1차 대전에 참전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집마다 찾아다니며 커피콩과 싸구려 장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그는 학교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중퇴해 버렸다. 그에겐 전쟁이 학교보다 중요했으므로 부모가 반대했지만 나이를 속이고 15살의 나이에 적십사 구급차 운전병으로 입대했다.

 

그가 배속된 부대의 훈련장인 코네티컷주에 집결했을 때 그와 같이 나이를 속이고 들어온 괴짜가 한 사람 있었는데 막사 안에서 그림만 그리던 바로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였다. 1922년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결혼하겠다고 알리자 그의 부모는 “사환이나 호텔 벨보이 같은 일 말고, 탄탄한 직장부터 잡으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며칠 뒤 그는 '릴리'라는 브랜드의 종이컵 파는 일을 시작했다. 주급(週給) 35달러였다.

 

“종이컵에 왜 마음이 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종이컵이 혁신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종이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미국이 가야 할 길의 일부임을 감지했습니다”

 

이후 그는 17년간 종이컵을 판매해 왔는데 회사의 영업 부문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을 때였다. 우연히 6개의 회전 축이 달린 멀티 믹서기, 밀크셰이크 제조기를 보고 '저건 새로운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미래가 보장된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기가 쉬운 일인가.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 아내 에셀이 나서 말렸다.

 

“당신의 미래를 지금 위험한 도박에 거는 겁니다. 당신도 이제 35살이 잖아요. 지금 와서 20살처럼 다시 시작하겠다고요? 멀티믹서가 좋아 보이지만 한때 유행으로 끝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남편의 사업을 말리는 건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은가 보다. 그렇다고 멀티 믹서기에 꽂힌 그가 아내의 말을 순순히 들을 리는 없었다. 다행히 사업은 순조로웠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는 직설적 접근법으로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변죽을 울리지 않고 필요한 내용을 설명한 다음 구매를 제안하면 고객들은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제품 소개와 고객 설득을 잘해 놓고도 말을 멈춰야 할 결정적인 순간을 깨닫지 못해 판매에 실패하는 사람을 저는 너무 많이 봅니다.”

 

그런데 멀티 믹서기 주문 전화 가운데는 ‘캘리포니아 센버더디너에서 맥도날드 형제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믹서기와 똑같은 종류를 사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주문을 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든 그는 직접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한다는 햄버거 가게, '맥도날드 바비큐' 매장에 가보기로 했다.

 

1954년의 일이었다. 가서 보니 자신이 영업사원으로 수많은 음식점을 가봤지만 햄버거 등 9가지 메뉴를 이토록 빠르게 15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곳 보다 깨끗하다는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파리 한 마리 없더군요. 흰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식당 안팎을 깔끔하고 청결하게 유지했거든요. 위생 관리가 허술한 식당에 질색인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가 방문했던 '맥도날드 비비큐' 매장은 원래 동부 뉴 햄프셔 출신인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고 있었다. 두 형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붐이었던 극장 사업을 하기 위해 1933년 캘리포니아로 와서 4년간 극장 사업을 했으나 실패했고, 극장 사업보다 극장 앞 핫도그 가게의 장사가 낫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핫도그 집을 차린 형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에 사람이 몰려와 노동자들도 늘어나는 현상을 보고, 노동자를 상대로 햄버거 등을 파는 '맥도날드 바비큐'란 식당을 연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이브-인 형태였다. 27가지 메뉴를 취급했는데 햄버거는 곁다리 메뉴였고, 바비큐가 주력이었다. 얼마간 돈벌이가 쏠쏠했던 식당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주차장에 차가 꽉꽉 차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이 오르지 않는 정체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맥도날드 형제는 곧 드라이브인 식당의 한계를 직시하고, 1948년 문을 닫고 식당 운영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서 문을 다시 열었다.

 

손님이 직접 햄버거를 주문하게 하고, 조리원 1명은 패티만 굽고 다른 1명은 빵을 굽는 식으로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햄버거 주문에서 받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 여기에 접시나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고 종이 포장으로 충분한 핑거 푸드를 냄으로써 비품 가격과 품을 줄였다.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창의적인 식당으로 탈바꿈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인근 공원의 테니스코트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가장 효율적인 주방 동선과 기구를 배치하고 직원들을 보내 동선을 몸에 익히도록 지시했다. 레이 크룩은 이를 보고 마치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이 축소된 듯한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미래상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가 멀티 믹서기를 팔면서 수많은 매장을 다녀보았지만, 이 식당처럼 가능성을 지닌 곳은 없었습니다. 매장을 몇 개 더 여는 건 어떻겠습니 까?”

 

그러자 형제 한 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가게만 운영하면 그만이지,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더 많은 가게가 생기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을 즐기고 있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대신해 매장을 열려고 하겠습니까?” 라면서 그에게서 눈을 떼었다.

 

그러자 레이 크룩이 불쑥 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하면 되잖아요”

 

맥도날드 형제는 당시 본사 직영점 외에 10여 곳에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긴 했지만, 이익이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업 확장에 별로 뜻이 없었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맥도날드 형제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열정과 집념 앞에 굴복하고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크룩이 서류 가방에 계약서를 넣고 시카고행 비행기에 오른 해는 1954년, 그의 나이 52살, 당시에는 은퇴를 준비해야 할 연령대였다. 특히 당뇨병과 관절염을 앓고 있던 그는 오랜 투병으로 갑상선 대부분과 담낭(膽囊)을 잃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뒤로 젖혀진 비행기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 인생의 절정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

 

 

그리하여 1955년 4월 15일, 그는 마침내 시카고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1호점을 열고 대망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기업이 시작됨을 예고했다.

 

연결해서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에게 드리는 「레이 크룩」의 철학』 (m-economynews.com)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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