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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탄소중립실천, 우리가 잘못하는 자전거정책 10가지 (제3편)

자전거 타는 미래 인류, 호모-사이클로쿠스(Homo-Cyclocus)

『제3편』 영종도가 국제도시라뇨? 자전거 길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당신이 요령껏 알아서 찾아가쇼!

 

지난 일요일 폭염 경보가 발령된 최악의 날씨에 저는 취재차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죽다 살았습니다. 사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계획은 오전 11시 서울 마곡나루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내려 영종도 해안 자전거 길을 따라 을왕리 해변까지 갔다 올 작정이었습니다. 원래는 이곳 지리를 잘 아는 분이 저와 동행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집안 일이 생겨 못 오는 바람에 졸지에 나 홀로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면 어떻습니까? 영종도의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다고 들은 터라, 혼자서도 괜찮을 줄 알았지요. 제가 영종도에 간다고 하니, 주변 분들은 최근 공항철도가 일반 자전거(접이식 제외)를 휴대하지 못하도록 했고 주말에 이용하려면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고 일러줄 뿐 그곳 자전거 도로 상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자전거 도로 상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일 수도 있습니다만, 명색이 세계에서 4번째라는 인천공항을 가진 영종국제도시의 자전거 도로가 이토록 불편하고 형편없을지 저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영종 해안 자전거도로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다 보니 눈앞에 자전거도로가 보이더군요. “옳거니, 저기야,” 했지요. 그런데 조금 가다가 색이 바랜 「인천공항 자전거도로 이용 안전수칙」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렇지만 사고 나면 책임지지 않겠다는 안전수칙이어서 찜찜하고 불길했습니다.

 

역시, 안내판 어디를 봐도 제가 접속해야 하는 영종 해안 자전거도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곳과 연결되는 길이나 표시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안내판은 그런 건 알바 아니라는 듯 거만했습니다. “당신이 요령껏 알아서 찾아가쇼!”



요령부득이었던 저는 인천공항 자전거도로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가다 보면 영종해안자전거도로로 연결되는 길 표시판 정도야 있을 줄 믿었지요. 하지만 인천공항 자전거도로는 허리가 끊어진 곳이 3군데였고, 표지판은 전무했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 다른 길을 찾아서 갔는데 가다보면 다시 끊겼고, 돌아와 보면 제자리였습니다. 길 잃은 사슴처럼 황당했던 저는 길가에 주차된 차량의 창을 황급히 두드리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길을 잃고 멍청했던 내게 친절했던 사람들

 

“을왕리 해수욕장을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나요?” 안전모에 썬 글라스를 쓴 내가 물으면 모든 운전자들은 “핸드폰으로 찾아보시지....”라며 의아했지요. 그러다가 제가 “그게 아니고요, 제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서...” 라고 하면 다들 친절하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방향을 잡아줬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자전거도로가 끊어졌는데...



참다못한 저는 아날로그 지도를 구하려고 근처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이마가 벗겨져 머리가 거의 없는 한 남자 직원이 접수대 쪽으로 가더니 서류장의 문을 열어 「지금 여기 인천 관광 가이드북」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그는 자기 핸드폰을 열어서 제게 길을 안내했습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큰 도로로 500미터쯤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에서 좌측으로 한참을 가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친절한 그는 장용상, Nico Jang이란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용상 씨, 저렇게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저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가요?”

“.....(전용은 아니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가는 방법은 저 길밖에 없어요.”

 

제가 멍청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는 호텔 문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와 손으로 도로를 가리키며 다시 설명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불쑥 자전거는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도로에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이런 젠장, 어째서 지금 그런 생각이 났을까? 저는 그가 일러준 대로 큰 도로 갓길을 따라 총알처럼 달리는 자동차를 보내며 삼거리에 이르렀고, 좌회전해서 다시 큰 도로가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불길 같은 열기가 솟아 숨을 콱콱 막았습니다.

 

자전거도로 하나 연결하지 못하는 국제도시

 

드디어 내 눈앞에 을왕리를 가리키는 도로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도로 건너편은 해안인 듯 했습니다. 저는 다 왔다는 생각에 도로의 자동차를 요리조리 무단 횡단으로 피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사람처럼 영종도 해안 자전거도로에 발을 디뎠습니다. “아~ 살았다.” 자전거도로는 해안을 따라 쭉 뻗은 2차선 꼬마 고속도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1시간이 넘게 길을 헤매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상태였지요. 폭염이 심해서 을왕리까지 갔다 오면 객사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을왕리 반대 방향의 해안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다 공항철도역으로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멍청한 생각이었지요. 자전거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영종 시내를 빠져 나올 때 고생 고생했으면서도 시내로 들어갈 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으니까 말이죠. 더위에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습니다. 해안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니 왼쪽으로 영종 시내가 보였습니다만 가도 가도 진입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다보면 있겠지....막연한 희망의 한 가닥을 잡고 해안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눈앞 멀리 ‘여기는 영종국제도시입니다’ 라는 대형 입간판이 보였습니다.



그걸 보니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뭐라고? 국제도시라고? 자전거도로 하나 관리하지 못하면서 개뿔, 폭염에 길을 못 찾고 헤매다 보니 저는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나 봅니다. 그렇지 않나요? 국제도시라고 하면 항공기, 자동차, 자전거와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온전한 교통망(complete street)을 갖추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 아닌가요.



외형은 그럴싸 하지만 내부적으로 디테일이 부족한 도시들

 

30만개가 넘는 부품을 전기선으로 빈틈없이 연결한 엔진을 귀걸이처럼 달고 360톤 무게의 비행기가 제 머리 위로 1분에 한 대 꼴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무게를 공중에 띄우는 대단한 기술을 가졌으니 영종국제도시가 보기에 자전거 따위는 굼벵이처럼 우습게 보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리 큰일도 작은 일부터 시작되는 법이잖습니까? 자전거도로도 항공로 못지않게 제대로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하튼 저는 자전거도로에서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마주 오는 자전거 라이더들을 세워 양해를 구하고 방향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조금만 더 가보면 된다고 했지만 저는 그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어느 중년 남성의 도움으로 방향을 잡고,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일반도로와 지하도를 따라갔는데 갑자기 허허벌판에 거대한 뱀이 피를 흘리며 지난 것 같은 자전거도로가 나타나는 거였습니다. ‘됐다~’ 싶어 그 길을 따라 한참 갔습니다만 길은 중간에 끊어져 버렸지요.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일반도로로 접속할 때까지 저는 정말이지 머리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오는 2025년 12월, 영종도에 제3연륙교가 완공이 되면 영종도와 주변섬을 연결하는 300리 자전거 이음길이 생긴다. 하지만 영종도의 자전거도로 관리 상태를 보면 말로만 번지르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챙기지 못한 것 같아 매우 걱정이 된다. 사진은 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가는 보행자와 자전거 겸용 다리의 모습. 


자전거도로가 제대로 안 된 곳이 어디 이곳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대부분 도시들은 외형은 그럴 사 할지 모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디테일이 형편없이 부족합니다. 부족하면 개선하려고 해야 하는데.....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도시들은 왜 자전거도로를 방치하거나 본선과의 연결이나, 표지판조차 세워놓지 않을까요? 자전거를 타는 유권자가 일반 유권자나 자동차 운전자보다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우선적으로 드는 제 생각입니다. 둘째, 항공기, 자동차 시대에 자전거 따위가... 업신여기는 심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저보다 선출직 공무원이나 담당자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세계 최초로 공중에 비행기를 띄운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포 주인

 

조금이라도 통찰력을 가진 진정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이 기후위기를 극복에 동참할 있도록 자전거도로를 시민 편에 서서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새로 만들려고 애쓸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표가 되지 않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게 되어 도시의 환경문제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니까요. 이런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가 많이 나올 때 우리나라가 디테일을 중시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궁즉통(窮即通)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한계 상황에 도달했을 때 창의적 해결책이 나온다는 말이겠죠. 지구가 열대화가 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뭔가 해결책이 나오리라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도 그중 하나가 되겠지요. 우습게 보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1903년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띄운 라이트 형제는 항공기 전문가가 아니라 자전거포 주인이었습니다. 공중을 나는 기술도 시작은 자전거였지요. 작은 것도 소홀하지 않는, 영종국제도시가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가 서로 공존하는 온전(穩全)한 세계적인 도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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