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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17) 불교 연기론의 깊고 긴 여운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를 보면 전생과 현생, 후생이 하나의 줄거리로 엮어진 이야기로 가득하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 부처님의 전생인 전불 시대 가람 터가 7곳이나 있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시지 않은 절들이 없을 정도다. 이것은 불교의 근본 교리인 연기론의 세계에 연유한다.

 


연기론은 인간 세상은 물론이고 우주만물의 모든 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이며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타자들의 결과를 빚는다는 불교적 진리다. 부처는 보리수 아래서 파천황의 이 연기법을 깨달았다. 이전에 인류가 ‘우연’의 공포 속에 살아왔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통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와 같이 초월적인 유일 절대신이 부여한 진리이자 명령이 아니라 신들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으로서 연기법을 말한 것이다. 특히 브라만의 결정론적 연기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와 평등을 내포한 연기론이었다. 이런 개명된 연기론으로 불교는 세계로 퍼져나갔으나 힌두교는 인도에만 갇혀 있게 된 것 같다.


‘연기법’으로 말미암아 힘없는 백성도, 천민도 마침내 자신의 삶의 고난을 알게 되었고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연기법에 따라 내가 직접 행한 원인 제공이 가장 큰 만큼 내가 욕심을 삼가고 선업을 쌓으면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불교는 연기법을 윤회와 업(業)설과 하나의 통일된 진리로 제시함으로써 보편적이고 윤리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해주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난의 원인은 내 탓이며 지금 나의 선한 행위는 미래에 좋은 과보로 돌아온다는 믿음은 인간 윤리성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유학을 윤리학이라고까지 말하나 유학의 윤리는 ‘당위성’에 치우쳐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의 가르침 속엔 천국도 없고 다음 생도 없어 죽으면 육체와 정신이 더불어 흩어져 사라지는 기(氣)로 가정한다. 아무리 삼강오륜을 충실히 지켜도 보상 받을 길이 막막한 셈이다. 


한국인의 심성에 면면히 전해져오던 연기론적 세계관은 근래 들어 많이 희미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불교 인구의 감소, 과학적 사고의 확산, 기독교 인구의 증가 등이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 것, 불교적 세계관 대신에 과학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들어왔다. 불교의 연기론이 갖는 이타적 자비심과 윤리성이 과학적 사고와 기독교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세계관과 융합되어 우리 심성으로 조화롭게 정착시키는 것이 오늘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한때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물질적 가치관이 팽배해 전래의 불교적 윤리의식을 마비시키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 부유층의 과시적 일탈 행위가 사회적인 질타를 받고 스스로도 자성이 이뤄져 지금은 배금주의 분위기가 적잖이 완화된 듯하다. 이제 각자 자기의 사회적 역할과 자기다운 성취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노력하는 윤리성만 다져나가면 한국사회는 진정한 선진국에 한 발 더 다가가리라 확신한다.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는 처음 왕권의 비호 아래 발전하다가 점차 백성들의 신앙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고려 시대 말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불교는 고려 말 배불론이란 암초를 만나고 배불론자들이 조선조 개국세력을 형성하면서 척불정책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당하게 된다.


불교의 타락은 수행보다는 기복을 원하는 중생들에게 가장 큰 원인이 있고 중생의 간절한 기복심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했던 일부 승려들에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정도전과 같은 극단적인 배불론자들은 불교의 타락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불교 교리를 공격하고 폄훼하였다.

 

신라와 백제의 왕들이 귀족들의 힘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거대한 사찰을 짓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불사를 치렀듯이 고려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왕실의 권위와 보전을 위해 불교를 이용했다. 승단으로서는 조용히 수행하고 보시 활동만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고려시대는 왕뿐만 아니라 귀족과 관리,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형편이 닿는 대로 극락왕생을 염원하여 ‘과분한’ 불사를 행하였다. 

 

 

고려 시대 최서의 처 박씨 부인(1249-1318)의 묘지명을 보면, 고위 관직을 지낸 남편이 죽은 후 12년째(충숙왕 5년)인 70세에 큰 병이 들었다. 박씨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고 묘련사에 출가하여 성공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박씨 부인은 임종 당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자녀들을 불러 마지막 대면을 했다. 그런 후 합장하고 아미타불만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염송하였다고 한다. 고관을 지내고 경제력 있는 계층들은 생전에 부부의 성씨를 딴 절을 짓기고 하고 남편 사후엔 남편을 위해, 또는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절을 짓고 승려들을 공양했다. 불경을 금자와 은자로 사경하거나 불상을 세우고 불화를 그려 봉헌하는 불사도 많이 행해졌다. (「고려시대 정토신앙 연구」, 라정숙, 숙명여대 박사논문, 2010)  

 

「관무량수경」은 석가모니 부처가 태자에 의해 굴에 갇힌 마가다국의 왕비 위제희 부인의 간청을 듣고 설법한 내용이다. 부처는 그 설법 중에 중생들이 극락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전했다. 부처는 중생을 근기에 따라 상생상품, 상생중품, 상생하품, 중생상품, 중생중품, 중생하품, 하생상품, 하생중품, 하생하품 등 9품으로 나누고 각 품에 따라 왕생 방법을 설했다. ‘근기’란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교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데, 상생상품이 가장 높은 근기를 가진 출가자가 해당된다. 이 설법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하생3품에 대한 말씀이다.

 

하품상생자는 많은 악업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경전을 비방하지 않는 자다. 하품중생자는 5계와 8계, 구족계 등 악업을 짓는 것에 더하여 승단의 물건을 훔치고 설법을 부정하기까지 하는 자를 말한다. 하품하생자는 하품상생자와 하품중생자보다 더 흉악한 죄를 범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하품3생자들도 그들의 목숨이 다할 무렵 선지식(바른 불법을 전하고 인도하는 불교 지도자)을 만나 12부경전의 제목을 듣거나 아미타불의 위덕과 해탈에 관한 설법을 듣거나, 나무아무타불을 10번만 지성으로 부르기만 하면 극락세계에서 태어난다. 이는 기독교에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과 천국을 보장해준다는 말과 흡사하다. 모름지기 종교란 죄짓고 약한 자들, 흉악한 자들이라도 회개하면 용서받고 구원해주는 자비로움이 본질이 아닐까 한다.

 

한국 역사에서 순전한 의미에 가까운 종교 시대라고 하면 신라와 백제의 불교를 이어받은 고려 시대였다. 고려인의 불심을 잘 나타낸 보물은 바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몽골의 침략을 부처님의 가피로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경전의 한 글자를 새기고 삼배를 했다고 전한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혼연일체의 지극한 불심이 비록 몽골군을 물리치지는 못했지만 나라의 형체를 보전하여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듯하다.   

 

흔히 지식인들이 종교의 기복성을 비판하는데 일리가 있는 듯하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안타까움, 사랑이 결하고 정신적, 지적 오만함이 숨겨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보통 인간들은 오묘한 종교 진리를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생명의 존재이기에 욕망을 만족시키고 죄를 범하면서 살아간다. 종교의 창시자와 중창자도 이를 잘 알기에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재생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기복’으로 나타날 뿐이다.   

 

 

조선의 배불론의 본질은 정치세력이 종교를 억압한 사건

 

조선의 유학자는 정치세력이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보면 그가 성리학과 불교를 제대로  알고 비판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치개혁가로서 불교가 빚어낸 폐해를 지적하고 혁파를 주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교의 순기능이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의 역기능을 최소화하도록 내부적으로나 정치에서 노력하면 될 일을 불교를 진멸하고자 한 행위는 과했다. 종교는 널리 전파되어 많은 신자들을 확보하면 자연히 역기능은 증가한다. 고려 말기 불교 폐해는 불교 교리의 문제가 아니고 그걸 신앙한 인간의 문제이다. 후세의 일부 종교학자와 사가들이 불교와 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천박한 탓에 고려 말의 불교 타락이 실제보다 확대 해석되고 본질을 벗어난 면이 있다. 
  
성리학은 이, 기, 성, 심 등 네 가지의 개념을 가지고 자연과 우주, 인간, 물질을 형이상학적 논리로 설명한 이론적 체계다. 이에 비해 불교는 우주만물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전생과 현생, 후생을 인과응보의 연기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인간의 삶을 ‘고(苦)’로 인식한 현실 인식 위에 깨달음과 극락왕생을 위한 방법론을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성리학은 주로 ‘예(禮)’와 ‘수양’을 통한 실천론을 강조하고 있다. 송명 성리학을 보면 불교와 도교의 교리를 많이 흡습하여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자연히 양명학으로도 갈래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이런 송명 성리학과의 교통도 부족하고 창조적 발전을 이루지 못해 교조적으로 흘렀다. 조선 시대 정치는 한 마디로 성현의 ‘말씀 정치’, ‘경전 정치’였다. 서구 사회처럼 정치와 사회사상의 다음 단계인 제도와 시스템, 정책을 낳지 못했다. 성현의 말씀과 이론으로 모든 것에 대한 잣대를 따지고 드니 격한 논쟁이 일 수 밖에 없었다.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 이론이야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그것을 정치로 펼칠 수 없었다. 실학에 와서야 제도와 시스템을 논하기 시작했으나 실학자들이 정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시스템적 사고가 결여된 조선 왕조 국가에서는 어떤 개혁도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지 않고 유교와 공존했더라면 훨씬 백성의 숨통이 트이고 지독한 차별주의에서 약간이나마 자비로운 평등심이 심어졌을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선불교는 시련을 겪으며 ‘간화선’을 통해 불교의 본래 정신 회복

 

고려시대 불교가 전체적으로 수행 쪽보다는 극락왕생을 바라는 백성들의 신심에 이끌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의 염불 불교에 치우쳤다. 조선 개국 후 극도의 배불 내지 척불정책으로 불교 승단은 산사로 은거했다. 조선 승려들이 용맹정진한 ‘간화선’은 기독교 역사에서 수도원 운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 

 

오늘날 종교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자신의 절제되지 못한 욕심과 함부로 내뱉은 말과 타인에게 끼친 악한 행동들이 나중에 인과응보로 돌아온다는 의식이 없다. 또 자신의 잘못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일에 의해 화를 입었을 때 그저 애통하여 원통함에 사무치거나 자포자기에 빠진다. 불교적 과보론을 믿으면 억울하고 애통한 가운데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며 자포자기 하지 않고 희망의 사닥다리를 딛고 일어설 수도 있다. 불교적 진리는 인생은 고(苦)이며, 고의 원인은 절제되지 않은 욕망과 연기법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있다고 본다. 이를 테면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불교적 진리에 귀를 기울여봄 직하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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