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기초생활보장의 급여(이하 기초급여)와 기초연금의 중복수급과 관련된 논쟁이 한창이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기초급여를 수급하는 65세 이상 노인의 수는 약 40만 명이다. 새로운 『기초연금법』에 따르면 이들은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연금액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상의 소득인정액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기초급여는 20만 원이 차감된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기초연금과 기초급여의 총합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기초연금 20만 원은 실질적으로는 ‘그림 위의 떡’인 셈이다.
이에 시민사회는 기초연금과 기초급여를 각각 독립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선진국의 중복수급 금지경향, 예산부족, 소득역전현상 등을 내세워 이 요구에 반박하고 있다. 정말 시민사회의 주장이 타당성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반박이 빈약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기초급여 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수급은 원리와 가치에서 정당
무엇보다도 정부의 반박은 '영혼 없는 관료'의 목소리다. 사회정책의 '영혼'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 특히 인간이 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원리에 대한 이해로부터 만들어진다. 모든 국민들은 "생존에 지장이 없고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며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신체적 장애로부터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필요·욕구"를 나면서부터 갖는다. 이러한 근원적인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그것은 모든 국민의 필수불가결한 삶의 조건이자 각각의 국민을 움직이는 원리이다.
모든 사회정책과 제도들은 바로 이 원리를 직·간접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게 된 것도 이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행위자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재정상의 문제나 기술상의 문제 또는 법률의 구체적 조항들에만 집착하면서 자신들의 근원적인 직무를 잊고 있는 듯하다.
기초연금법의 제 1조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여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노인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고 복지를 증진함을"이라며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는 "이 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라는 목적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들은 바로 앞에서 말한 원리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기초급여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의 중복수급을 허용하자는 것은 단순히 인류애에 기초해 자선을 베풀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는 원리의 실현이라는 이 법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현재 정부는 유럽선진국에서 기초연금이 소득인정액으로 계산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시민사회의 중복수급 주장을 반대하고 있다. 이는 위의 원리와 법의 목적이 각 법률을 채우는 구체적 규정들 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이다.
유럽선진국이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에 포함시키는 것은 원리와 목적이 공적연금제도, 최저생활보장제도, 여타의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이미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되고 있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유럽의 사례들을 들어 시민사회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어폐가 있는 것이고 논리상의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너무 높은 노인빈곤율과 너무 미흡한 해결책
앞서 말한 원리와 목적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실현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노인빈곤 상태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점과 이에 대한 해결책이 너무 미흡하다는 점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최근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인 12.4%의 거의 4배에 달하고 있다(2011년 기준). 보다 큰 문제는 OECD 평균은 2007년 이후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반면, 우리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노인빈곤의 해결책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유럽선진국에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 거의 모든 노인들을 포함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중 35.1%만이 국민연금을 수급하고 있다. 특히 빈곤노인이 여기에 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노인을 위한 핵심적 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노령연금이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낮은 수급률, 낮은 급여액, 중복수급의 불가 등의 결함을 갖고 있다.
2012년 1인 기준으로 급여액을 보면, 빈곤노인은 기초노령연금으로 최고액인 9만4,600원을 기초급여로 최저생계비인 553,354원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빈곤노인들은 두 가지를 중복해서 받을 수는 없었다. 기초노령연금액이 기초급여의 소득인정액으로 계산되어 차감됨으로써, 두 급여의 총합이 최저생계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보장액수는 최저생계비인 55만3,354원이었다. 이 수치는 유럽 나라들의 50~60%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의 주관적 최저생계비인 83만4천원(2012년 기준)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낮다.
이러한 현실은 현재의 제도들이 앞에서 제기한 '생존유지', '인간적 삶의 영위', '자율적 삶의 향유'라는 원리와 목적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도들은 이 원리와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초급여 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 수급은 근원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기초연금액을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제외
정부가 제기하는 반론의 핵심 중 또 다른 하나는 기초급여 수급 노인층과 차상위 노인층 사이의 소득역전 현상이다. 기초급여 수급 노인이 기초연금과 기초급여를 중복해서 받는다면 기초연금만을 받는 차상위 노인보다 더 많은 소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기초연금액을 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소득인정액 목록에서 제외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한다면 소득이 소득하위 70%에 미치지 못하면 모두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초급여 수급노인과 차상위 노인은 모두가 완전기초연금, 즉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기초연금으로 인한 소득역전현상은 생기지 않는다.
기초급여의 경우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소득인정액을 산정하기 때문에 자체 내에서 소득역전이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상위 노인층에 있던 일부의 노인들은 소득인정액에서의 기초연금 제외한 덕분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을 얻게 되어 문제의 사각지대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일석이조'가 나타난다.
기초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금지는 오히려 소득불평등 초래
사실, 소득역전현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초연금으로 인해 노인들 사이에서 소득불평등이 발생하거나 심화되는 모순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선 소득불평등은 기초급여 수급 노인과 차상위 노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기초연금이 시행되면 차상위 노인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수급한다. 이를 통해 차상위 노인은 기존 소득보다 10만 원(기초연금액에서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액을 뺀 금액)을 더 얻게 된다. 반면 기초급여 수급 노인은 소득에 변화가 없다. 결국 기초연금의 도입은 기초급여 수급 노인과 차상위 노인 사이에 10만 원의 소득불평등을 만들게 된다.
또 하나의 소득불평등은 기초급여 수급 노인과 소득상위 30% 사이에서 발생한다. 지난해 기초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70%가 아닌 64.7%에게만 제공되었다. 이러한 수급율의 저조현상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미신청의 사례 중에 기초급여를 받는 노인이 기초수급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차상위 노인이 의료급여를 유지하기 위해 신청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미수급의 문제를 기초노령연금의 수급기준을 상향시킴으로써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작년, 실제로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은 총 479만4,500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전체의 76.7%에 해당한다. 즉 소득수준이 소득상위 30% 이상의 일부 노인들도 기초노령연금을 수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 수급 노인은 변한 게 없는 반면, 이들은 기초노령연금만큼 소득이 늘어나게 되어, 양 계층 사이에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것이다. 정부는 새로 도입되는 기초연금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소득불평등이 눈앞에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가겠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초급여 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수급’은 이뤄져야 한다.
예산부족문제는 여러 차원에서 명확한 자료에 기반해 논의돼야
정부가 반대를 하는 또 하나의 핵심논리는 예산부족이다. 이 문제는 현재 기초급여 수급노인과 차상위 노인들이 실제로 기초연금을 신청할 것인지의 여부(일부의 기초급여 수급노인은 기초연금을 포기할 수도 하고 일부의 차상위 노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초연금을 위한 예산과 기초급여를 위한 예산의 구별, 전체적인 예산규모와 기존 예산에 추가적으로 들어가 는 예산규모의 구분 등을 고려해서 풀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예산부족을 마치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의 통과를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너무 남발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선, 기초예산의 경우 정부는 이미 충분한 예산을 준비해 뒀다.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노인 수에 맞게 5조 2천억 원이란 예산이 중앙정부의 재정으로 확보돼 있고 전체재정의 약 25%는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 예산 안에는 소득인정액이 너무 낮아 기초급여도 받고 기초연금도 받을 수 있는 노인만이 아니라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근처에 있어서 기초급여나 기초연금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노인의 몫이 다 들어가 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기초연금의 명목으로 더 필요한 예산은 없다. 사실, 예산의 복잡함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더 연관이 깊다.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게 되면 그만큼 기초급여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각의 노인별로 보면 제공되는 기초급여의 크기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초급여 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수급’이 이뤄지더라도, 모든 기초급여 수급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에 상응하는 기초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기초급여 수급노인이 기초연금을 받았는지에 대한 자료가 제시되어야 한다. 만약 기초급여를 수급하기 위해 기초노령연금을 포기한 노인들의 비중이 큰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소요될 예산의 규모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노인들은 이미 기존의 예산에서 기초급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초급여 수급 노인의 기초연금 중복수급’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여러 측면에서의 자료들을 객관적으로 공표한 상황에서 제시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이러함이 없이 단순히 총액만을 가지고 그것도 과다하게 예상된 액수를 제시하여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예산문제는 돈이 아닌 인간에 기반을 두고 결정돼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산문제는 앞에서 제시한 원리와 목적을 제대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목적의식 하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민의 돈을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인빈곤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함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사용해야 할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은 생존유지, 인간적 삶의 영위, 자율적 삶의 향유라는 누구나 원하는 보편적인 필요·욕구는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기초급여 수급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또한 보편적인 것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있어왔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노력을 제대로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이러한 노인빈곤해소에 쓰이는 예산은 그야말로 ‘반드시’ 그리고 ‘지금 당장’ 사용되어야 하는 최우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 앞에서 예산부족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반박이다. 이는 단지 ‘돈은 부족한데 쓸데는 많다. 그래서 어디에도 더 쓰지 않고 그냥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빈곤한 노인들을 지금 이대로 방치하자는 말인가? 예산부족 타령은 그냥 그들이 침묵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다가 그냥 조용히 이 세상을 마감하길 기다리자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인간이 갖는 원리와 법이 갖는 목적 그리고 이들로부터 나오는 ‘생의 행복한 마감’이라는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 산정에서 제외하여 기초연금과 기초급여의 중복수급을 가능하도록 현행 제도를 고치자. 그리고 그에 소요되는 예산을 최우선적으로 마련하자. 이것은 인간의 원리와 법의 목적에 의거하여 기존의 제도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재구성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사회적 연대’라는 기제를 통해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근연구위원
MeCONOMY Magazine July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