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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채화칠기의 맥을 이어가는 최종관 장인가족의 행복한 미소

채화칠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최종관 전승자. 국내의 몇 안 되는 장인 중 한 사람인 그는 배우자도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여인을 택했다. 그리고 부부는 평생을 옻칠을 하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한 길을 걸어온 지 벌써 40년. 이젠 지겨울 법도 하건만 부부는 너무나 행복하단다. 동행 길에 아들과 딸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가족전도 가졌다. 아들과 딸의 손을 거치면서 젊어진 작품은 전통미를 겸비한 현대미로 활용도를 한층 높였다. 가족의 작품전에 전통협회와 관람객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그 어떤 이슈보다 작품의 완성만이 관심거리인 이들에게 세상은 감칠맛으로 보답한다. 언론에서조차 관심가져주지 않은 빛바랜 일일지라도 이들에겐 행복수치를 높인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우리 문화는 그 가치를 빛나게 하고 소박한 행복에 스며들게 한다.

최종관 전승자는 20살에 옻칠을 시작했다.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고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집안에 형이 옻칠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렇게 산 세월이 40년이나 됐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 행복하고 자랑스럽단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니 원도 없죠. 가족들도 저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이해도 잘 해주고요. 더구나 아이들까지 뒤를 잇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워요. 그런데 처음에 아이들을 시키려니까 어렵더라고요. 아들이 지금 30살인데 4살부터 옻칠을 시켰어요. 처음에는 재미있는 줄 알고 덤비더니 팔목이 아프다, 하기 싫다면서 짜증을 내기에 전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다 데리고 다녔죠. 아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 때까지 데리고 다닌거예요. 그랬더니 학습효과가 있었던지 나중에는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집사람이랑 한참 웃었죠.(웃음)”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국 초등학생 산업디자인 전람회에 나가 입선한 아들은 중학교 때 중, 고생 산업디자인 전람회에서 특선까지 받았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채화칠기에 녹아들었다. 현재는 배재대학교 예술대학 칠예과를 졸업하고 국제통상대학원 칠예과 석사까지 받은 상태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배워

고운 선을 그려온 부모의 작품과 달리 아들은 선이 굵고 크면서도 활용도가 높은 현대화작품을 완성해낸다.

아버지가 했더라면 비판을 받았을 법한 작품도 아들이 완성하면 관련업계에서조차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아기자기한 멋으로 잔잔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딸은 단아한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

우리나라의 채화칠기기법은 출토된 유물로 보아 나전기법보다 앞서서 성행하였다. 그러나 평탈 기법의 유입으로 인한 나전칠기의 급격한 발전으로 통일신라시대 이후 채화칠기는 단편적인 유물에서만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나전칠기의 급격한 발전이 채화칠기의 맥을 단절시켰다고 볼 수 있다. 몇 명의 장인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채화칠기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아쉬움이 더한다.

최종관 전승자는 김태희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채화칠기에서는 단연 최고였던 스승의 작품은 일본 전문가들조차도 인정할 정도였다.

“제 스승은 칠공예의 다양한 기법에 두루 능하지만 채화칠기 분야에선 그 누구보다 특징을 가지신 분이에요. 칠료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넣는 일이 그건데, 일반 물감이나 먹에 비해 밀도가 훨씬 높은 옻칠을 붓에 찍어서 선을 그려냈거든요. 옻칠은 붓으로 찍어서 선을 그리기가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워요. 그럼에도 마치먹 붓을 휘두르듯 정확하고 우려한 선을 한달음에 그려 냈죠. 더구나 점진적으로 색체를 표현하는 솜씨는 대단했어요. 그만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했고요. 일본이 우리보다 옻칠의 기법이 앞서가잖습니까? 그런 옻칠 기법을 연구하고 연마하여 특별한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 일본에 가져가서 일본장인들로 부터 극찬을 받은 분이 제 스승이에요. 그만큼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알았던 분이고요. 우리 것의 중요성을 제게 일깨워 준거죠.”


붉은 색은 궁중에서 쓰던 색상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붉은 색이 일본 문화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 궁중에서 사용되던 물건들이 대부분 붉은 색을 띄면서 화려했다.

“지금 이 작품이 교지함인데 붉은 색만 보고 일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겁니다. 이 교지함이 궁중에 6개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일본과 미국에 다 뺏겨버린 거죠. 이 작품은 실물을 볼 수가 없어서 사진을 보면서 규격과 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겁니다. 우리 것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내주었으니 가슴 아픈 일이죠.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 외국으로 가버린 겁니다.”

채화칠기하면 아무래도 섬세함을 빼 놓을 수 없다. 여성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작품들과 달리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라고. 그 이유는 옻칠을 하는 과정이 어렵다보니 여성들은 힘이 부쳐 견디어 내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채화칠기는 칠한 자리에 다시 덧칠을 반복하는 과정이 28번이다. 그야말로 지극한 인내심의 달인이 아니라면 견디어 내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에 채화칠기를 하는 사람은 5명 정도다.

그래서 최종관 전승자는 채화칠기 맥을 이어갈 기능자 양성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힘들면서 수익창출이 어렵다보니 덥석 하겠다는 이도 없다. 이러다 맥이 끊어지겠다 싶어 두 자녀가 채화칠기를 전승받도록 했다. 우리 것을 이어가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도 바쁜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백제대학에 나가 채화칠기를 가르친다. 수업을 받는 사람들은 기능을 전수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채화칠기의 매력에 빠져 취미로 배우고자 하는 50대 성인들이다. 열 세명의 제자들 중 주부는 열 두명이고 남자가 한 명이다.

장인들을 만나면 가장 궁금한 게 수익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참 행복한 일일 테지만 수익이 없다면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지 않는가? 최종관 전승자에게 수익구조에 대해 물었더니 아내가 답변을 먼저 했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게 해주고 싶어서 몇 년 전 갤러리에서 찻집을 시작했었거든요. 일반인들에게 채화칠기도 알리고 생활비도 벌어보자는 취지에서였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 뒀어요. 보고 관심은 갖는데 활용도에는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활용도를 높여 가자니 우리 것이 퇴색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애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보고 실생활에서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길 권해요. 작년 가족 전에서 애들이 만들었던 작품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실용성과 편리성을 겸한 작품을 만들어야

“아쉬운 것은 우리 것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거예요. 활용도가 떨어지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하면 현대화된 우리생활에 접목을 할 건지를 연구해야죠. 무조건 옛것 그대로가 아니라 옛날 그 규격과 모양은 그대로 재연하되 실용성과 편리성은 갖춰야 한다는 말이죠. 이 작품은 옛날 관복을 넣어 두던 관복함입니다. 그런데 이 관복함을 예전처럼 방 어딘가에 놓는다면 어울릴까요? 당연히 안 어울리죠. 이미 우리가 사는 구조는 서구화되어 있는데 어떤 소품만 옛것이라면 조화가 안 맞잖아요. 그래서 다리를 달았더니 아파트 현관 입구에 놓아도 손색이 없는 콘솔이 되었잖아요. 바로 이거에요. 옛것, 우리 것을 쓰임새 있도록 현대화시켜서 우리 것이 구식이 아니라 정말로 아름답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 문화재기능전승자들이나 관련자들은 이런 생각을 못하고 있어요. 비판의 칼날을 세우면서도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일하게 대하는 거죠.”

우리의 옻칠을 보러 일본 학생들과 일본 전승자들이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이라면 일본은 다른 나라에 견학을 가고, 배우러 가게 되면 공부하는 것은 물론 경비까지 기업체에서 부담을 해준다. 그만큼 고전에 대해 중요시 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주 딴판이라고.

국내에서 우리 것을 지켜내든 외국에 배우러 가든 그 누구하나 신경 써 주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가야한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배려가 없고 문화를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면 과연 우리 것은 언제까지 그 맥을 이어갈지 심히 걱정이 앞선다.


전시관 개관이 마지막 꿈

최종관 전승자는 전시관을 하나 갖는 게 꿈이다. 개관하려면 기준에 준하는 평수의 전시관이 필요하다. 또 작품이 100점정도 진열되어야 한다.

“보다시피 현재 전시되어 있는 작품만 해도 200여 점이나 됩니다. 작품은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거죠. 물론 전시관이 조금 더 좋은 장소에 위치하여 우리문화를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공유해야 하는 건데요. 조건이 안 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하에서 2층까지를 개방하여 전시관으로 운영해볼 계획입니다. 제 아내는 해보자는 거고 저는 어렵다는 건데 채화칠기를 알리기 위해서 꼭 열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두 부부는 된다, 안 된다를 반복했다.

그만큼 이들에겐 우리 것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우리 문화는 21세기에 맞춰져서 있다. 사람들의 생활도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다. 좌식문화는 오래전의 문화였고 지금은 편리한 입식문화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우리 고유의 문화도 결국 현대인들의 생활문화를 따라 가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인식으로 자리 잡고 만다. 따라서 실용성을 겸한 생활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것의 원형은 보존하되 편리성을 가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전시관을 갖고 싶다는 최종관 장인가족의 꿈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MBC 이코노미 매거진 2월호 P.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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