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때가 되면 죽는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 산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대형사고가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오면 그 기업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업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본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다.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숨 쉬면서 내뿜는 독소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의 기원은 사채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채업은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시절 서민들이 숨 쉴 수 있도록 도와준 유일한 돈줄이었다.
그들을 고리대금업자라고 비난하긴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은행의 빈자리를 메워준 사채업자와 저축은행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분명히 있었고, 그들이 받았던 고금리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우리 금융시스템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은행이 열심히 도와주고 키우던 대기업들은 돈을 별로필요로 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하더라도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주식을 상장해서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한다. 저축은행들이 주로 대출을 해주던 여관이나 음식점은 대기업이라는 손님을 잃어버린 은행들의 중요한 새 고객이 됐다. 개인들은 1인당 5장씩 들고 있는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나 카드 론을 통해 저축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은 얼마 든지 빌릴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 16개 저축은행이 잇따라 문을 닫은 것은 이런 쇠퇴의 징후다. 금융회사는 돈을 계속 빌려주고 받아내면서 굴러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돈 빌려줄 곳이 없어진 저축은행은 아파트를 지어 파는 장사의 밑천을 대주는 이른바 PF대출이라는 것에 뛰어들었다가 계속 쓰러지는 중이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런 섭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 저축은행 업계의 몰락에 대처하는 정부의 방식이다.
쓰러진 저축은행에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 원의 예금보험기금을 투입해서 상처를 치료한 후 수백억 원 정도의 프리미엄을 받고 다시 은행이나 증권사에 팔아넘기고 있다. 그렇게 다시 살아난 저축은행들은 다시 뭘 먹고 살지 고민하다가 또 뭔가 위험한 대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문을 닫은 저축은행은 그냥 파산시키든 다시 살려내서 팔든 5천만 원까지 예금을 보장하기 위해 투입되는 예금보험기금의 규모는 마찬가지다. 다만 증권사나 은행에 팔아넘기면 몇 백 억 원 정도의 프리미엄을 더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좀비 저축은행들을 계속 되살릴 경우 그 부작용은 더 크다.
올해 문을 닫은 16개 저축은행들이 대출해준 대출금의 규모는 26조 원이 넘는다. 이중 절반이 부실대출이었다고 가정하면 문 닫은 저축은행에 투입된 예금보험공사의 돈은 13조 원이 된다. 이런 저축은행을 다시 살려내서 영업을 재개할 경우 그 저축은행들은 13조원의 현금을 어디에 대출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서민금융시장에 대출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대부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서민금융시장의 규모는 3조 원 정도에 불과하다. 쓰러진 저축은행들을 그냥 파산시키는 것이 해답일 수도 있다. 생로병사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
글 / 이진우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 이데일리 경제전문기자
<MBC 이코노미 매거진 12월호 P.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