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기증은 한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8명의 수혜가 가능하지만 인체조직은 한사람의 기증으로 100여 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 의학의 발전에 따라 활용범위가 계속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다양한 질병치료와 회복에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요의 74%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본지는 국내 인체조직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과 활성화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에서도 취재했다.
외국 인체조직, 역추적 불가
한한사람의 기증으로 100여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체조직. 의학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더 활용의 폭이 넓어져 다양한 질병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나 74%가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기증자는 년 평균 24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체조직의 수입 90% 이상은 미국에서 나머지는 유럽 등 서방국가에서 들어온다. 수입의존도가 너무 높다보니 항상 수급의 안전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하반기 일시적으로 미국이 수출물량을 줄이면서 화상센터에서 드레싱용 피부조직을 못 구해서 수술이 미뤄지는 문제도 있었다.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에서조차 전략적물자로 분류돼 물량을 관리하고 있는 인체조직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물량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WHO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자국 내 환자에 필요한 이식재는 자국민에 의해서 충족돼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인체조직기증본부 서윤경 국장은 WHO에서 권고하는 이유에 대해 “국가 간 거래가 계속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저개발 국가의 저소득층을 착취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수입인체조직재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병력조회 문제”라고 말했다. 덧붙여 “외국인체조직은 역 추적이 불가능하다”면서 “식약처에서 외국에 직접 나가 현장조사를 하긴 하지만 기증한 사람에 대한 병력 등을 조회할 수가 없으니 당연히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체조직, 활용범위 확대일로
사망 이전에 뇌사상태에서 적출을 해야 하고 한 사람의 기증으로 인해 몇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신장과 간 등 장기와 달리 조직이식재라고 하는 인체조직은 사후에도 기증이 가능하고 한 명의 소중한 기증으로 인해 많게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즉 기증된 인체조직은 많은 질병의 치료와 불구의 회복에 활용될 수 있기에 의학의 발전에 따라 그 활용범위가 확대일로에 있다.
한국인체조직은행연합회 임창준 회장은 “미국 내에서는 플로리다 주에 조직은행이 제일 많이 위치해 기증문화가 많이 소개됐고, 스페인에서는 병원 내에 뇌사 예정자가 발생되거나 돌연사 환자가 발생되면 의사가 직접 장기나 조직의 기증에 대해 보호자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를 기증으로 유도해 세계에서 높은 기증율을 보여준다”며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인체조직을 활용한 치료 방법은 날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증자에 의한 국내 수급은 답보 상태에 있어서 아직도 인체조직의 90%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며 “앞으로 수요의 증가를 고려할 때 조직기증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간 30여만 건 수술이 이뤄져
현재 인체조직의 활용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인체조직은 뼈, 피부 및 근막, 연골, 양막, 인대 및 건, 심장판막, 혈관 등을 말하는데 선천성 또는 후천성 신체적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필수적이다. 또 피부 및 근막은 화상이나 각종 사고로 인한 피부결손에 쓰이고, 뼈나 연골이 결손 돼 절단이 불가피한 환자에게 뼈는 희망과도 같다. 심혈관 질환환자에게 혈관도 이식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인체조직이식재만 잘 갖춰져 있다면 응급상황에서도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교통사고 후 으스러진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빠르게 뼈를 이식 할 수도 있고, 급성화상 환자의 경우 상처부위를 덮어 놓을 수 있는 기증된 피부가 있다면 감염을 막고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서윤경 국장은 “누군가 기증한 인체조직으로 피부를 덮어만 주면 일종의 드레싱 역할을 하게 된다”며 “공기 중에는 유해균들이 엄청 많은데 피부가 없으면 상처에 균이 바로 침투해 폐혈증을 일으킨다”고 전했다.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와 산업화에 따라 각종 질병 및 사고로 인한 신체적 결함을 갖게 되는 환자가 늘고 있고, 의학기술 또한 발전을 거듭해 환자들에게 인체조직 이식재의 사용이 보편화됐다. 실제로 국내에서 매해 30여만 건의 조직이식재로 수술이 진행된다. 요즘은 흔하게 받는 치과의 임플란트에서 상해버린 잇몸을 대신하는 뼈도 이식수술과 함께 진행되기도 한다. 인체조직은 직접 이식뿐만 아니라 연구개발로 가공이 이뤄져 금가거나 부러진 뼈의 회복을 돕는 등 의약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턱없이 부족한 기증자, 기증문화 정착이 관건
연간 30여만 건의 수술이 이뤄지는데도 우리나라는 조직기증에 대한 제도 미비, 홍보 부족, 사회적무관심 등으로 사회 전반에 기증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장기는 외국 간 이동을 법적으로 금하고 있으나, 인체조직은 수입으로 충당이 가능하다 보니 그동안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식재가 필요한 경우 동일 인종의 인체조직이 적합성면에서 가장 뛰어나 국내 자급을 통해 이식을 받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인체조직은 왜 이렇게 기증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했을까. 종교계와 일각에서는 장기, 혈관과 다르게 인체조직은 중간에 영리가공업체가 있어 순수한 기증문화를 해친다고 지적한다. 실제 혈액과 장기는 법도 완비가 됐고 국민인지도와 기증률도 높다. 혈액은 시대적으로 6.25를 겪으면서 매혈 등 반윤리적인 일들이 발생했고 1970년대에 법이 완비가 됐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의료보험 등이 적용되면서 이제 환자는 감당할 수 있는 비용에 수혈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에 정비가 된 것이 장기법이다. 1980년대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이식수술을 받는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뒤늦게 법이 완비됐고, 장기기증 캠페인이 일어났다. 거의 모든 종교계에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캠페인을 벌이면서 이제 장기기증도 국민의 인지도가 98% 정도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도 인체조직기증은 국민의 인지도가 40%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실제 가장 크게 장기기증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종교계 3개 단체 중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인체조직에 대해서는 캠페인을 꺼리고 있으며 생명나눔실천본부 한곳만 인체조직기증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무상으로 기증받은 인체조직이 가공돼 부가세가 붙는 상품으로 판매되는 등 상업성을 문제로 들고 있다.
지난 6월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전태준 한국인체조직기증원 이사는 “2013년 법 개정 이후에도 영리가공업체 주도 공급체계는 변하지 않았다”며 “이는 세계 유일의 영리업체 주도 최종재 공급체계”라고
비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증자와 유가족의 숭고한 기증의도도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다.
올 1월 개정법 시행, 공적관리 체계 기틀 마련
올해 1월29일 ‘인체조직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법안의 내용을 보면 국립조직기증관리기관 신설, 조직기증자 등록제 및 조직기증등록기관 신설, 조직기증지원기관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체조직도 이제 장기 등과 마찬가지로 조직기증자의 등록, 관리 제도가 시행되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시장경제 체제가 아닌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관리체계에서 인체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는 “헌혈, 장기기증, 조혈모세포기증, 인체조직기증으로 이어지는 생명 나눔 공적 체계가 마련된 것으로 생명 선순환 구조가 확립돼 생명 나눔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무상으로 기증받은 인체조직에 부가세를 빼버리고 혈액과 동일하게 수혜자가 선물로 느낄 수 있을 수 있을 만큼의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이 돼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를 하는 공공재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인체조직에 대한 끝없는 논란
인체조직은 장기와는 다르게 가공을 통해 최대 2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국가 간 수출입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대한 자본이 흘러들어오고 이윤추구의 원인이 되면서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또 기증과 이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장기기증과 달리 인체조직기증은 보관을 통한 불특정 다수가 수혜를 받을 수 있어 수혜자가 불분명한 것도 관리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의 인체조직을 다루는 특성 때문에 공개논의에서는 항상 철학, 윤리, 생명의 존엄성 등이 불거진다. 그러다보니 명분에 밀려버린 의견들은 표출되기도 쉽지 않으며 쉽게 공론화되지 못한다. 실제 우리나라 인체조직 가공업체들은 5~6곳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들은 접촉단계에서 발을 빼버렸다. 오히려 “우리가 나쁜 사람들로 몰아져 가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완전히 공공재가 되면 더 편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현재는 부가세가 붙는 상품이라는 것만 강조되고 있다”면서 “인체조직
기증 활성화가 안 된 것이 가공업체 때문인 것처럼 몰아져 가고 있는 것만 같다”고 전했다. 그는 “기본
적으로 인체조직은 채취하고 나서 이식을 위해서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어디까지가 그냥 인체조직
이고 어디부터가 가공재인지 부터 정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또 인체조직은 뼈·피부·혈관 등등 각 분야별로 성격, 가공, 쓰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쉽게 정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어디까지를 공공영역으로 가져가야 하는지와 민간부분에서 선 투자된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하루 다르게 발전하는 의료기술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체 조직을 활용한 치료 방법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 기증자에 의한 수급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수요의 증가를 고려할 때 수입 규모는 점점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인체조직과 관련된 법제도 정비가 이뤄져 마음 놓고 기증하고, 이식받는 날이 왔으면 한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