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병원들이 해외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한 해 동안 세계 56 개국에서 1만여 명의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이대여성암병원. 2011년 5월, 백남선 병원장이 취임해 오면서부터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대여성암 병원은 외국환자들에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이제는 외국의 여러 병원들이 벤치마킹하고 싶은 병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병원들은 국내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해외환자들을 받을 서류는 물론 진료실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죠. 저는 맨 먼저 의료국제화를 위해서는 기본틀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백남선 병원장은 취임하자마자 해외환자들을 맞이할 시스템부터 갖췄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대여 성암병원은 지난해 세계 56개국에서 1만여 명의 환자들이 다녀가는 명실상부한 글로벌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외국환자들이 진료를 받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각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 ‘언어소통이 곧 국제화’라는 백남선 병원장의 철학 때문이다. 1947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해서 울대 의대를 졸업한 백남선 원장은 이후 원자력병 원 병원장, 건국대병원 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이대여성암병원장에 재직 중이다.
1986년 국내 최초로 ‘유방보존 수술법’을 시행했고 1991년에는 ‘백남선 위암수술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1997년 한국유방암학회를 설립해 한국유방 암학회장, 아시아유방암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6년에는 위암 및 유방암 분야 세계 100대 의사로 선정되는 등 여성암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의로 인정받고 있다. 백남선 원장을 만났다
Q. 의료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계십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시는지요.
A. 저는 그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메디컬 투어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어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의 중요성을 늘 강조합니다. 과거만 해도 영어, 일어, 중국어를 조금만 하면 어느 정도 소통이 됐습니다만, 지금은 저희 병원만 해도 56개국에서 환자가 오기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언어소통이 곧 메디컬 글로벌화입니다. 요즘은 제가 아랍어를 배워서 진료를 할 때 아랍어로 “잘 주무셨어요?”, “어디가 아프세요?” 하고 환자들과 인사를 합니다. 그분들이 깜짝 놀라요. 진료를 한 후에는 “걱정하지 마세요”라 고 말해주면 환자들의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걸 느낍니다.
Q. 해외에서 많은 환자들이 찾는다고 하셨는데 주로 어느 나라에서 어떤 환자들이 옵니까.
A. 저희 병원은 여성병원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여성 환자가 많습니다. 몽골만 해도 대통령 부인과 제가 친분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 와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알려지면서 몽골환자들도 요즘은 오기 시작했습니다. 또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서도 오고 아랍에서도 옵니다. 특히 아랍 사람들은 한국의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보사부에다 한국의료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을 부탁할 정돕니다.
아랍사람들은 과거 미국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다가 911사태 후에는 독일이나 인도, 싱가포르 등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그 나라들은 진료비가 굉장히 비싸요. 우리만큼 친절하지도 않고요. 언젠가 복지부 장관, 그리고 저와 몇 사람이 바그다드에 가서 한국에서는 유방암을 이 렇게 진단하고 치료한다고 자료(PPT)를 보여주면서 설명하자, 아랍보험회사(아랍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험회사는 국가공무원이다)에서 그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당신들을 믿고 환자들을 보낼 테니 치료를 잘 해 달라. 비용은 우리가 지불하겠다” 그러더라고요.
그 후로 아랍환자들이 늘었습니다. 아랍 환자들은 한국에 오면 무조건 저를 찾아옵니다. 환자 한 명만 오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5~7명 같이 옵니다. 아랍에서 오는 분들은 주로 유 방암환자들인데 요즘은 자궁경부암이라든가 갑상선암 환자들도 옵니다. 그들은 친절신뢰믿음을 주면 금방 친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외국어(몽골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이 환자는 영국과 독일에서 진료를 받고 온 케이스였어요. 자기는 분명 가슴에서 뭔가 만져지는데 괜찮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백남선’이라는 사람이 있더래요. 그래서 무조건 왔다고 하 더라고요. 진료를 해보니까 가슴이 까실까실한 게 있는데 수상해서 바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3시간 만에 결과가 나와서 보니까 유방암이었어요.
환자가 놀라지도 안길래 왜 안 놀라느냐고 했더니 “난 당신을 믿으니까 원칙대로 치료해 달라는 겁니다. 곧바로 수술하면서 유방보존수술까지 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엊그저께 출국했습니다. 어떤 분은 잡지에 인터뷰한 것을 보고 오신 분도 있고, 인터넷(구 글)을 통해서 검색하고 오신 분도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뭘 좋아하는지 취미가 뭔지까지 알고 오는 분도 있고요.
Q. 외국에 강의를 자주 가시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나라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지요.
A. 올 들어 러시아만 3번을 다녀왔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의과대학에 가서 강의도 해주고 교수, 학생들과 함께 토론도 했습니다. 연해주에 있는 블라디보스톡에는 현재 우리교민 400여 명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도 합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한 대학과는 양해각서(MOU)를 맺어서 돈독한 관계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도 갔었는데 마침 국제유방암학회가 열린다고 해서 갔더니 국제는 아니고 극동유방암학회라는 곳에서 열었더라고요. 아주 먼 도시에서까지 그 강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얘기죠. 저는 어딜 가든 유방암수술에 대해 강의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유방암진단과 수술은 전 세계에서 1등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Q. 병원경영에 대해서도 강의를 하시는지요.
A. 병원경영자들을 대상으로도 강의를 합니다. 거기서 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언어입니다. 우리가 국제화가 되려면 가장 먼저 언어가 돼야 합니다. 통역이 있다고는 하나 의학적인 커뮤놀로지는 잘 못 하잖아요. 저의 장점은 언어입니다. 제가 여기 처음 취임할 때 기자들 약 40여 명이 왔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길래 글로컬한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그게 뭐냐고 물어서 ‘글로벌이 아니고 글로벌 앤드 로컬’이라고 했죠. 저는 한국의 의 료체제로는 절대로 밥을 못 먹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화를 해야 해요. 그 첫 번째가 언어고요.
제가 며칠 후면 중국에 갑니다. 두 군데 대학에 초대 받아서 유방암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가는데요. 중국병원경영 포럼에서는 병원경영에 대한 강의도 할 겁니다. 병원경영을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여성암 병원을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나. 여성이라는 것은 항상 안아주는 기분, 그런 게 필요해요. 아무래도 여성병원은 일반병원과 달리 여성이라는 특별한 콘셉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병원이라는 것은 가장 먼저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 다음은 나름대로 콘셉이 필요합니다.
병원은 이용이 편리(convenient)해야 하고 편안(comfortable)해야 하며 신속(fast track)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죠. 저희 병원은 여성암병원이란 콘셉에 맞춰 포근하고 아늑한 색으로 꾸며져 있습니 다. 세계 여러 나라 암센터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접목한 것인데요. 병원 같지 않고 집처럼 아늑해야 하는 곳이 병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원이 환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과 상담도 하고 관심도 가져주면서 편안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죠.
저를 아는 분들이 각국에서 찾아옵니다. 벤치마킹하러 오는 거죠. 국내병원에서도 찾아 옵니다. 그 분들에게 구석구석을 모두 소개한 다음에 저희병원은 큰 병원도 그렇다고 시설이 일류도 아닙니다. 하지만 진료만큼은 최고로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늘 우리는 스몰 자이언츠(small giants)라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니까 더욱 믿고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Q. 해외메디컬 투어를 많이 다니셨는데 그런 부분 들이 병원경영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는지요.
A. 그렇습니다. 저는 외국에 메디컬투어를 할 때도 최대한 한국을 알리고 이대병원을 알리고 저를 알리고자 노력합니다. 그 나라의 공공기관이라든가 보건복지부, 의과대학에 가서 강의도 하면서 우리나라 의술을 알립니다. 현지의 의료손길이 필요한 곳에서는 치료하고 수술도 해주는 의료봉사가 중요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기술을 알리는 것도 아주 중요하니까요.
매년 몽골에 가는데 몽골 대통령 부인의 초대를 받아서 대여섯 명을 무료로 수술도 해줬습니다. 물론 경비는 그들이 부담했죠. 그것이 인연이 돼서 몽골 대통령 부인이 직접 저희 병원에 와서 수술을 받았고 경찰청장 부인도 저한테 와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결국은 우리의술을 해외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 하다는 얘깁니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외국 환자들에게 우리의술을 잘 알려서 그들이 우리 한국을 찾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Q. 유방암과 위암분야 전문가이십니다. 쉽지 않은 분야를 전공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 사립대 병원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암을 전공하고 싶었기 때문에 원자력병원으로 간 겁니다. 당시는 서울대 병원이나 연고대병원보다 원자력병원에 암 환자가 더 많았어요.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은 없었을 때죠. 암 중에서도 갑상선암 빼놓고는 위암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위암을 전공한 겁니다. 지금까지 수술한 위암환자가 2천500여 명이나 됩니다. 많은 케이스가 생기면서 ‘백남선 위암수술법’ 도 개발하게 된 거고요. 지난해에는 중국 연길에 초청받아 가서 위암수술을 해주고 왔습니다.
Q. 유방보존수술도 처음 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A. 아마 제가 아시아에서 처음일 겁니다. 1986년도에 유방보존수술을 처음 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방 보존수술을 처음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베르네시라는 국립암센터 의사(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암이 있는 부위만 절제하고 남은 부위는 방사선 치료를 하니까 치료의 성적도 비슷하고 유방도 보존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입니다. 그 사람이 수술 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안 믿었어요.
제가 그분과 일주일 간 같이 있었는데 그분 말이 맞는 거 같더라고요. 서양 사람은 가슴이 큰데 2cm미만짜리도 유방을 다 떼야 되겠는가? 그 사람의 주장은 유방암 환자가 유방을 다 들어낸 것과 부분 수술한 것이 다르다는 거였어요. 그분 말처럼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하는 게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죠. 당시만 해도 다른 병원에 비해 원자력병원은 의료기구들이 좋았어요. 특히 방사선치료에 대한 시설이 좋았죠. 유방보존수술을 하면 방사선 치료를 꼭 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이 좋았던 겁니다. 이런 조건들이 과감하게 수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거지요.
Q. 유방암학회를 처음 설립하셨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저는 의사가 돼서 전 세계 암학회를 돌아다녔습니다. 특히 미국은 15년 동안 다녔는데 그들은 암학회 연구테마가 대부분 폐암과 유방암이더라고요. 왜 그럴까? 15년을 다니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라가 잘 살게 되면 여자는 유방암이 제일 많이 생기고 남자는 전립선암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폐암하고 전립선암하고는 관계가 없으니까 위암과 유방암 중에서 조만간 한국에 1위로 뜰 유방암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은퇴 하셨는데)선배님을 찾아가서 우리나라에 유방암 연구회가 없는데 학회에서 돈 좀 대주면 유방암연 구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5년 동안에 유방암 수술사례가 15명 정도밖에 안됐어요. 그러나 유방암이 가장 많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렇게 의과학회에서 500만원을 받아서 유방암연구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의사들은 참여를 시키지 않고 서울에 있는 의사들끼리 만나서 케이스바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된 건데 서로가 친해지면서 잘 어우러졌어요. 초창기에는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의과학회에서도 도와주고 그러면서 몇 사람이 유방암 연구를 2~3년 하다가 유방암학회를 만들게 된 거죠. 그렇게 우리나라에 유방암학회가 처음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유방암학회를 만들고 나서는 어떻게 하 면 특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유 방암등록사업을 했는데 나라가 작다 보니까 참 잘 됐어요. 다른 나라들은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나로 뭉치다 보니까 좋은 점이 많았죠. 지금은 미국이든 유럽이든 우리나라 유방암학회를 상당히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유방암학회를 최고로 치죠. 과거만 해도 영어를 못하다 보니까 눈치만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한테 물어봅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냐”는 거죠.
Q. 국내 병원들이 해외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A. 현재 국내의 의료제도로는 병원들의 미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살길은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거란 얘깁니다.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나라의 부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 나라들이 우리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형편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들 은 의료비에 대해서만큼은 과감하게 지불합니다. 제가 올 상반기에 중국에 있는 대형병원 두 군데를 찾아가 병원경영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2년 전에는 카자흐스탄에도 가서 강의를 했고요. 지난해 와 달라고 했는데 못가서 올해는 거길 갑니다. 6월30일 에 가서 7월4일에 오는데 강의도 해주고 수술도 해 주고, 또 국립대에 가서 강의도 할 겁니다. 병원경영 을 잘 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나가 강의도 하면서 외국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Q. 바쁜 와중에도 책을 많이 쓰셨습니다. 암을 예방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연구하셨고요.
A. 암을 치료하게 되면서 암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보는 세상’이라든가 ‘긍정의 힘’도 결국은 암을 이겨내는 데 중요한 거거든요. 또 암과 비타민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외과의사지만 여러 가지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본에 가서 공부할 때 항산화 비타민에 대해 공부했죠. 우리나라에는 당시 그런 말 자체가 없었어요. 어떤 음식이 암을 잘 생기게 하고, 어떤 음 식이 암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어떤 음식이 암을 예방하는지 이런 연구도 했습니다. 수술은 뻔하거든요. 암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음식에 대한 것을 연구하면서 약이 되는 밥상 이라든지, 한국인의 항암식품 이런 걸 연구한 거죠.
얼마 전통합암연구학회를 발족했는데 저보고 회장을 하라 해서 안한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자꾸 하라고 해서 제가 그랬습니다. 통합의학이라는 게 뭐냐? 양방만 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다. 한약이라는 것도 전혀 무시하면 안 된다. 생각해 보세요. 아스피린하면 양약이지만 결국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거거든요. 징코민도 은행나무에서 추출한 거고요. 겨우살이에서 추출한 면역 요법도 있고요. 이외에도 다양한 효능을 가진 한 약재들이 많죠. 한약도 무시는 하지 말자 이거죠.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가 뭡니까? 결국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은 병을 치료해주는 게 주목적이거든요. 그 다음에 좀 깨어 있는 의사라면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만 해줄 게 아니라 무슨 음식을 먹어야 되고 어떤 생활을 해야 되고 어떤 취미생활을 해야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줘야죠.
저희 병원에는 ‘파워업’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암 환자들이 수술을 하고 나서 받는 애프터서비스 같은 건데요. 요가라든가 악기, 노래와 같은 서양의 개념을 도입한 겁니다. 현재 국내에는 저희 말고 그런 시스템을 도입한 병원이 없습니다. 저는 서양 의학은 병이 생겼을 때 치료해주는 거지만 병이 왜 생겼나에 대해 원인을 분석해서 안 생기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양의학은 그런 장점이 있다는 거죠. 요즘 통합이라든가 융합이라는 얘길 많이 하잖아요. 병원도 환자치료를 위해서 융합해야 합니다.
Q. 어떤 분야의 연구를 더 해나갈 계획인지요.
A. 이대하면 여성암병원입니다. 여성암에 차별성을 두다 보니까 왜 이대병원만 그런 부분에 대해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냐면서 질투하는 병원도 있어요. 그럴 때 제가 그럽니다. 당신네들도 업적을 내봐라. 그러면 언론이 관심을 가질 거 아니냐. 매스컴은 관심거리를 찾아가는 거니까요. 앞으로도 여성암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나갈 겁니다.
Q.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A.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환자를 케어하고 치료해 주는 겁니다. 가끔 ‘명의가 뭐냐’ 이런 질문 을 받을 때가 있어요. 명의는 환자들이 우선 신뢰를 해야 하고 그 분야에 있는 다른 의사들이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그게 명의예요. 마치 TV에 많이 나오고 언론플레이를 잘 하면 명의인줄 아는데 그게 아니죠. 요즘 방송이나 매체들을 보면 실력이 안 된 의사들이 나가서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것을 마치 믿을 만한 정보인양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사들을 환자가 믿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Q. 병원을 경영하고 조직문화를 이끌어 가는 경영 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병원도 경영면에서 본다면 일종의 영업장입니다. 어느 정도 적자가 나지 않게 유지해주면서 사회공헌을 해주는 곳이 곧 병원이죠. 의사, 간호사, 직원 들을 쥐어짜는 게 CEO가 아닙니다. 남들이 말하는 환자는 왕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구성원이 함께 화합하고 한 마음이 되었을 때 일도 잘 하게 됩니다. 제가 원자력병원장이나 건대병원장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에게 이거 해라, 지금 당장 해라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가 기업의 정의를 배웠잖아요.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면 되지만 병원 은 운영도 하고 사회 환원도 하는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또 구성원들의 복지라든지 화합을 잘 이끌어 내서 출근하고 싶은 조직이 되도록 해야 합 니다.
Q. 세계 의료계를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계획 입니까.
A. 저희 병원의 장점은 129년 된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 병원이라는 점입니다. 보구여관에서 시작해 128년이나 된 유일한 병원이죠. 우리는 그동안 이 부분을 특별히 부각시키지 못했어요. 지구상에 여자 수가 70억 인구 중 35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여성을 위한 병원도 거의 없고요. 우리병원은 그 러한 틈새를 공략한 겁니다. 여자를 더 잘 알고 여 자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한 거죠. 그래서 여성을 최고로 생각하는 병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 느낀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해외에서 온 환자들도 대부분 여성 환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과는 잘 찾지 않아요. 다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여성의 섬세함을 잘 챙기고 우리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Q. 제2의 병원을 건립 중인 것으로 압니다. 소개해 주시죠.
A. 강서 마곡에 9917.4m²을 샀습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지막 병원 부지인데 꽤 많은 돈을 주고 매입했습니다. 외국 환자들을 유치하려면 어느 정도의 규모도 필요하고 그래야 국내외병원들과 경쟁을 할 수 있겠다고 본 겁니다. 외국환자들의 접근도 좋습니다.
새로운 부지에 조성되는 제2병원은 병원 같지 않은 병원으로 설계했습니다. 지금과 같이 네모지고 딱딱한 수용소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컨버터블(convertible)한 디자인으로 병상도 많지 않은 문화 공간 같은 곳이 될 겁니다. 사실 우리나 라 병원들은 병상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병원에 가 봐도 고작해야 600병상이 전붑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연구도 많이 진행되죠. 국내에서는 앞으로 2천개 병 상을 갖춘 병원들도 생겨날 거라고 봅니다만, 저희는 오히려 병상을 줄일 겁니다.
대신 환자를 위한 휴식 공간과 갤러리도 만들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공간도 만들 겁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모임도 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요. 도서관을 만들어서 환자나 가족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공간은 오디오미술센터입니다. 환자가 어떤 질환에 대해 헤드폰 끼고 듣고 보면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저는 세계 각국의 암 센터를 많이 가봤습니다. 독일만 해도 큰 병원부터 작은 병원까지 다녀봤고요. 그걸 보면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병원을 지을 때 50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많은 입원환자를 받기 위한 병상을 늘릴 게 아니라 설계단계부터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병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 1천개 병상을 기획했지만 제 의견이 반영되어 800병상으로 줄였습니다. 지하도 원래 4층을 파기로 했는데 제가 워낙에 더 파야 한다고 하니까 5층을 파기로 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기간에 지어지는 병원인 만큼 외국시스템으로 짓고 싶다는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2018년 오픈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고 있습니다. 여성암병원으로 특화시킨 것에 대 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전 세계 인구의 반에 대한 비전이라고 본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