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가 점진적으로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인구의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중장년층 인력의 활용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미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늘어난 평균수명만큼 정년퇴직을 하고도 10년에서 많게는 15년 정도 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생2모작 시대를 넘어 인생3모작 시대라는 평도 흘러 나온다. 전직·재취업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5월13~14일 코엑스에서 대기업 협력업체 중심으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장은 현장면접을 위해 정장을 갖춰 입은 대학생들과 고등학교 학생들로 가득 찼다. 그 사이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남성이 보였다. 채용박람회에 참가한 업체 사람인가 했으나 양손에 든 내용물은 박람회장에서 나눠 준 박람회 참가업체들의 채용정보였다. 나이가 54세라는 최창덕(가명) 씨는 은퇴를 하고 재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최 씨는 젊은 사람들 채용박람회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혹시나 해서 나와 본 것이라 전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한 기업체 인사담당자는 “요즘에는 온라인상에는 덜하지만 이런 현장 박람회장에는 중장년들도 꽤 많이 와서 상담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제는 이런 모습이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별로 또 대한노인회, 대한은퇴자협회 등 각종 단체에서 중장년 일자리박람회를 여는 등 청년·여성 일자리 뿐 아니라 중장년의 일자리 문제도 사회문제로 등장한지 오래다.
우리 사회는 점진적으로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인구의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중장년층 인력의 활용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미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10년에서 많게는 15년가량 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생2모작 시대를 넘어 인생3모작 시대라는 평도 흘러나온다. 인생2모작 시대를 위해 전직·재취업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현장에서는 전직과 재취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상황이었다.
사회문제로 등장한 중장년 일자리
우리 사회의 산업발전을 이끌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3)가 이미 은퇴를 했거나, 대규모 은퇴를 앞두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720만여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을 기점으로 정년퇴직연령에 진입했다. 1955년생들이 2010년에 기업의 일반적 정년연령인 만55세에 도달해 이미 직장을 떠난 사람을 포함해 대다수의 베이비부머들이 향후 10년간 점진적으로 은퇴를 맞게 된다.
이들이 매년 30~40만 명씩 기존 직장에서 은퇴를 맞이하면서 고령사회와 맞물려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은퇴자들의 실제 퇴직연령은 평균 54세로 나타나는 반면, 적정 은퇴시기에 대한 인식은 65세 이상으로 나타나 그 갭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조사한 ‘2014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말 서울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144만명(14.3%)으로, 이들의 45.3%는 ‘적정은퇴시기’를 65세~69세로 응답했으며, 70세 이상이라는 응답도 20.8%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베이비붐 세대 은퇴의 파급효과와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보유자산이 충분하지 않아 일부는 은퇴 이후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세대주인 가구의 평균 총 자산은 전체 평균보다 약 10%가 많은 3억1천63억원이지만 주요국에 비해서는 적은 수준이다. 미국(약 80만달러), 일본(약 5천556만엔)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다. 이들은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로 유사시 현금확보 여력이 떨어져 질병이나 기타 위급 상황에 취약하다. 연금소득대체율은 42.1%로 OECD 평균인 68.4%에 비해 턱없이 낮고, 은퇴 이후 공적연금을 수급하기까지 약5~10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은퇴 후 10년에서 많게는 15년까지 일을 해야 한다.
경력을 살릴 수 없는 일자리가 대부분
이번 정부에서는 고용률 70%를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 결과로 전체 고용률 지표가 개선되고, 특히 장년층이 고용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장년층의 어려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15세~64세의 고용률은 지난 2011년 63.8%에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65%로 늘어났고, 더 세분화해 50세~64세를 보면 2011년 67.6%에서 지난해 69.9%로 올랐다. 취업자 중 50대 이상 비중도 32.9%에서 36%로 증가해 양적으로는 늘어났다.
하지만 주된 일자리에서 평균 53세에 퇴직(남 55세, 여 52세)하고, 준비 없이 퇴직하는 경우가 많아 재취업하더라도 임시·일용직, 생계형 자영업(26.7%) 등 고용의 질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은퇴자들은 수십년 간 일한 경력을 살리고 싶어 하지만 실제 재취업 일자리는 이와 무관한 단순 노무직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최창덕(가명)씨도 “수십 년간 쌓은 내 경력과 노하우를 활용할 일자리는 찾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은퇴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있어 가장 애로사항은 무엇일까. 최씨는 “20여년 간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나와 보니 구직활동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일자리정보도 너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취업박람회장을 찾아가 보지만 원하는 일자리는 없다고 전했다.
56세로 은퇴 후 캄보디아 현장소장으로 재취업
현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전국적으로 28곳이 세워져 중장년 일자리에 관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노사발전재단,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 등이 각각 설치하고, 노사발전재단이 이를 전체적으로 총괄하고 있다. 중장년일자리 희망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 본부를 찾아갔다.
먼저 중장년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장년들과 만나고 있는 컨설턴트를 만났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문의전화에서 구직자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나이에 어디 취업할 수 있느냐’ ‘급여는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 ‘취업은 가능한 것이냐’ 등 다양했다. 박혜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컨설턴트는 “현재 구직을 준비하시는 많은 분들이 참고 했으면 좋겠다”면서 김상문(가명, 57)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씨는 무역업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생산관리, 자재관리를 하다 지난해 56세 나이로 정년퇴직했다. 경
제적으로 여유있는 상황이었고, 가정에서는 잠시라도 여가 생활을 즐기라고 했지만 쉬는 게 맞지 않았
다. 노사발전재단 박혜연 컨설턴트는 “실제 은퇴한분들 대부분이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시간이 많이 주어지다 보면 상황 자체가 어색한 경우가 많다”며 “정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재취업을 생각하는 분도 계시지만 본인이 아직 건강하고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취업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김씨는 본인의 경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력유지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나이에 관리직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겠다’고 여긴 김씨는 새로운 직종으로 전환도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분히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화물차, 지게차 운전 등을 위한 자격을 획득했다. 또 일에 필요한 자격증뿐만 아니라 여가, 재무 등 본인의 전반적인 인생설계를 다시 시작했다.
원래 사진찍는 것을 좋아한 그는 블로그도 운영하며 온라인 인맥을 새로이 형성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시간관리도 들어갔다. 박혜연 컨설턴트는 “김씨는 굉장히 적극적인 마음, 능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그렇듯 구직활동 자체가 몇십 년 만에 처음이다 보니까 방법을 모
르셨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운영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집단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개별 컨설팅도 받는 등 주도적으로 컨설팅을 이용했다. 박 컨설턴트는 “보통은 컨설팅을 해드려도 딱 그 선까지 하신다거나 그마저도 안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시고 정작 실행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김씨는 지인활용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도 탐색을 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그것을 본인한테 적용해 좀 더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30대 채용정보가 주를 이루는 온라인에서 재취업에 성공했다. 나이, 채용 마감일자 상관없이 다 지원을 했다고, 김씨는 “인사담당자마다 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마감공고가 지나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또 생산관리나 자재관리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젊은이들 채용을 고려했다가도 내 이력서를 보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채용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뤄졌다. 사원, 대리급을 채용하는 면접을 보고 온 그는 면접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일과 함께 간단하게 업무 노하우가 담겨있는 제안서를 보냈고, 다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본 면접자리에서 직급조정이 이뤄졌고, 실장급 직급과 연봉이 책정돼 재취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회사에서는 해외공장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고, 김씨를 적합자로 채용했다. 김씨는 재취업으로 캄보디아를 오가며 이전 직장에서 보다 바쁘고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박혜연 컨설턴트는 “실제 상담을 진행해 보면 대부분의 분들이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만 구상하면서 고민이 많은 경우가 많다”면서 “일단 하나씩 실행하면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전했다.
정책을 믿고 따라와 줬으면 하는 바람
김상문 씨의 사례처럼 개인의 노력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부 정책과 기업의 노력도 마찬가지로 중요
하다. 일본은 노동력 감소 문제에 우선적으로 정년연장을 추진하고 기업을 상대로 고령자 재고용을 유도했다. 사업주는 정년 65세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제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해 일정의 성과를 이뤘다. 미국은 ‘고령자보호법’을 통해 정년제도 자체를 폐지했고 퇴직연금을 육성해 개인 책임의 노후 준비를 유도했다.
정용영 중장년일자리본부장은 “우리 정부도 지난해 ‘장년 고용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등 장년층의 고용불안, 질 낮은 일자리 재취업, 노후걱정이라는 문제해소에 힘쓰고 있다”며 “특히 올해 선진국형 복지제도의 일환으로 시작한 ‘장년 나침반 프로젝트’는 생애 전반에 걸친 경력을 설계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년 나침반 프로젝트는 간단하게 말하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듯이 근로자의 생애관리를 해주는 것이다. 건강검진처럼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본인이 나갈 적성과 취미까지 점검해 스스로 생애를 설계하고 인생후반부를 준비할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 현재는 만50세 이상이 대상이지만 점차적으로 40세 이상까지 범위를 넓힌다. 이 말고도 재직근로자를 위한 전직지원 서비스, 기업에게는 장년친화 직장만들기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자리 미스매치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정용영 본부장은 “이 부분은 단순히 중장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청
년일자리, 여성일자리 문제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중장년들만 미스매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단정하기
는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 문제는 문화적, 구조적, 사회정책적인 문제”라며 “제도적인 개선을 단순히 중장년층만을 놓고 볼 것은 아니고, 청년·여성·중장년을 다 함께 놓고 제도적인 개선을 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용영 본부장은 중장년 구직자에게 바람을 드러냈다.
“현재 일자리 미스매치, 일자리 정보부족 등 문제는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며 나가고 있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전직, 재취업을 준비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중장년 구직자분들께서 정책을 한번 믿고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인생2모작 시대가 도래했다. 현재는 70세를 완전은퇴 시기로 보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많게는 15년 이상 현장에서 일해야 한다. 정부의 장년고용종합대책 움직임과 함께 기업의 전직지원서비스 의무화 법안도 국회에 계류돼 통과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우리사회의 장년 고용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