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한·미 간 원자력협정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1973년 이후 42년 만에 마련 된 새 협정은 이전의 협정 유효기간이 이전의 42년 (1973년-2016년)에서 향후 20년으로 단축 되었으며,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저농축 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명시됨으로써 양국간에 윈윈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2010년 10월에 시작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11차례에 걸쳐 정례협상과 다수의 수석대표 및 부대표급 협의를 가졌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 지난 2년간 집중적으로 협상을 전개하였다.
이미 40 여년에 체결된 현행 협정이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 되게 된 것이다. 이번 개정이 갖는 주요한 의미는 비록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농축과 재처리의 명시적 금지인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농축과 재처리를 위해 미국과 고위급 협의를 통해 합의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지만, 향후 한·미가 합의를 할 경우 한국이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 농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한 사용 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다 각적인 방안이 마련되었다. 사용 후 핵원료를 재처리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영구처분 그리고 해외 위탁재처리 등 사용 후 핵연료 관리를 위해 우리나라가 향후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방식이 협정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3년 후, 즉 1956년에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57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고, 1959년에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에 상업용 원자력발전소가 부산시 인근 고리에 최초로 완공되어 본격적인 원자력시대를 열었다. 2015년 현재 고리원자력발전소, 한빛원자력발전소 (구, 영광원자력발전소), 한울원자력발전소(구, 울진원자력발전소), 월성원자력발전소 등 4개소에 원자력 발전소(총 23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으며, 9기가 건설 중에 있다.
현재 소는 2001년에 설립된 한국전력공사 계열의 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한수원)가 운영하고 있으며, 2015년 초 한수원의 원자력발전 총량은 전체 발전량의 약 36.6%에 해당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는 중단 없이 가동하고 있으므로 실제적으로는 총 소비전력의 45% 이상을 생산하고 있고, 원자력발전소의 가동률도 93.4%로 비교적 높게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23기를 갖춘 세계 5대 원자력대국으로 2009년에는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난 협정은 농축과 재처리 등을 전면 금지하고, 원전 수출입 인허가도 일일이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의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체결된 새 협정으로 우리의 재처리 기술 연구 활동이나 수출의 자율성 등이 담보 돼 호혜적으로 개정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에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3대 협상목표인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와 ‘원전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이 모두 담겨져 있다. 먼저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사후 시험'이나 '전해환원' 등의 연구 활동을 미국의 별도 동의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용 후 핵연료 관리를 위해 한미 양국이 2020년을 목표로 공동연구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건식 재처리 기술은 양국 상호 합의 아래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관련해서는 미국산 우라늄을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없는 20% 미만까지 저농축이 필요할 경우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수행할 수 있게 됨으로써, 향후 연료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우리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할 때 미국산 핵물질과 원자력 장비, 부품 등은 미국의 별도 동의 없이 재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 밖에도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도 미국산 핵물질로 별도 동의 없이 우리가 전량 생산하고 공급하고 수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은 가서명 이후, 우리의 경우 법제처의 검토와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되며, 미국 측은 가서명 이후 국무부와 에너지부 장관의 검토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미 의회에 보내지게 된다.
그리고 상하원 회기 90일 안에 불승인 공동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으면 자동 통과된다. 이같은 한미 두 나라의 절차가 완료되면 정식적으로 발효된다. 일부에서는 일본과 같이 핵연료를 재처리(플루토늄 추출)하거나 파이로프로세싱 개발의 전체 과정을 보장받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 현실은 냉혹하여 이번 협정 체결에서도 미국이 동의해주지 않는 한 한국이 독자적으로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연구와 농축을 추진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협정에서 농축·재처리를 명시적으로 넣지 않는 것으로 한국은 체면을 살렸지만, 미국이 각 단계마다 제동을 걸 수 있는 구조도 동시에 명문화한 것이다. 원자력 등의 군사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규제로 묶어두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사용 후 핵연료를 우리 손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추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의 목표는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직접 뽑지 않고 혼합물질로 추출하는 것이다. 만약 성공하면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의 포화상태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으며, 향후 고속증식로(Fast Breeder Reactor)의 연료로 재활용 할 수 있다.
비록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에 막혀 우리가 추구하는 독자적인 원자력 산업 시스템은 얻지 못했지만, 향후 사용 후 핵연료 폐기와 재활용, 그리고 수출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체결되어 다행이다. 이번 한·미 원자력협정이 북한의 핵위협과 국제 정치의 규제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개발하고 있는 원자력분야의 종사자들에게 한 빛 희망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MeCONOMY Magazine Ma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