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 재도약도 지속성장도 어렵고 사회통합도 안 된다.” 2월 13일 청와대로 노사정 대표들을 불러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박 대통령 집권 3년 차 핵심과제다.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세부사항을 놓고 노사정 간에 이견조율이 쉽지 않은 데다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은 경영계·노동계 모두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
‘3대 현안’과 ‘노동시장 구조개혁’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3대 현안은 2014년 초에도 노동시장에 가장 큰 이슈거리였다. 하지만 지난해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핵심 사안에 대한 교차점이나 절충안 없이 노사는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는 해가 돼버렸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위원장 김대환, 이하 노사정위)는 지난해 9월19일 노사단체 부대표 및 정부 차관급으로 구성된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3개월간의 논의 끝에 12월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원칙과 방향’이라는 기본합의안을 확정했다. 여기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오는 3월말까지 노동시장 이중구조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문제, 사회안전망 정비 의제 등에서 결론을 도출키로 하고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노사정위원장이 특위위원장을 겸임한 것만 봐도 사안의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논의 의제 설정에만 3달이 걸렸는데 합의까지 3달 안에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상당하다. 여기에 현재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생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서두르고 있다.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통령이 나서 신년기자회견에서 올해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개혁 종합대책을 반드시 도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 2월13일에는 청와대에 노사정 대표들을 불러 오찬을 하고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대타협을 당부했다.
하지만 좀체 좁혀지지 않는 노사 간 간극과 3월이라는 합의 데드라인이 주는 압박감등으로 노사정 리더십의 발휘로 돌파구를 마련할지, 파국으로 치달을지를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노동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김대환 위원장은 지난 2월13일 제10차 전체회의에서 “2월말까지 전문가그룹에서 노동시장구조개선을 위한 합리적 대안이 제출되면 3월초부터 특위차원의 긴밀한 협의와 의견절충을 시도해 나갈 계획”이라며 “3월까지 대타협을 도출하겠다는 것은 이미 노사정이 지난 12월23일 국민들에게 공언한 약속이란 점을 잊지 말고, 노사정 주체들은 진정성과 리더십을 갖고, 의제 논의와 대화에 충실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공유와 공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적극 참여하지만 노동운동에 도움 안 되는 합의는 절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현재 사회적 조건이 충분하게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경계하고 있다”며 “모든 사항은 조직 내외적 충분한 토론과 공감대 형성 및 민주적 절차를 거쳐 추진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합의도출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합의도출에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이정식 사무처장은 “사회적 대화 또는 합의기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원칙적으로 사회적 합의는 국가위기 시에 진보정권이 집권하고 있을 경우, 강력한 노동조합의 중앙집중성과 리더십을 토대로 대화와 타협의 역사적 전통이 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노사정 등 경제주체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조직 및 조직 구성원의 이해득실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처장은 “우리나라는 아직 기업별 노동조합이라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중앙 내셔널 센터에 힘이 집중돼지 않아 노총이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며 “또 강력한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구조가 분리돼 있는 우리나라는 여기서 합의가 이뤄져도 다시 입법과정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계는 과거에 사회적합의를 했던 경험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불신의 트라우마
로 남아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대화가 발전한 북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의원내각제로 수많은 정당이 존재해 원래부터 정치의 모습 자체가 항상 의견을 모아서 대화하고 타협한다는 말도 전했다. 현재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림을 그려가며 말을 이어갔다. 이정식 처장은 “현재 노동시장 구조개선 문제가 단순히 노동
시장 내 임금·노동시간·고용 등의 문제라는 주류 및 보수적인 여론과 사회분위기는 잘못됐다”면서 “노동시장 문제는 생산물 시장 즉, 중소기업 활성화와 대기업과의 동반성장, 원·하청 등 공정거래 등을 포괄하는 경제민주화 문제이며, 4대보험 등 사회안전망과 사회보장의 정비 등 제도개선과 구조적·장기적·전면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주고받기식의 패키지딜이 아니라 사회적공론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새로운 노동패러다임 만들어야
한국경총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해 유연성과 안정성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이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이뤄져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사가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향적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올해 노사관계 전망을 조사해본 결과 기업들은 ‘노사관계 현안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최대 불안요인으로 꼽았다”며 “최근 산업현장에서 사법부의 통상임금 소송, 휴일근로의 가산임금 중복 여부를 둘러싼 판결, ‘불법파견’ 인정 판결 등으로 기업 경영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기업들은 ‘임금체계 합리적 개편’을 정부가 노사관계에 있어 중점을 둬야 할 사항으로 선택했다”며 “이는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3월 말로 다가온 노동시장 구조개선 합의에 관해서는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같이 나눈다는 취지에 맞게 지금은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논의해야 한다”
또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3대 현안도 아직 현장단위에서는 계속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며 “임금·근로시간·고용기간이란 큰 문제인식으로 종합적으로 명확히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의 기본요소인 임금, 근로시간, 고용기간 등 노동패러다임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본부장은 ‘그동안 못 받았던 할증 부분을 더 받아내겠다’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계속 싸워야 하고 다퉈야 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서 “현장단위가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도록 노사가 같이 공생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도록 해 경제적인 측면이나 국가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현장단위에 큰 틀에서 방향성과 기준을 정해 문제를 풀어 가는데 혼란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애로사항도 전했다. 정년연장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통해 합의문을 만들어왔는데 대표적으로 ‘임금피크제 등 도입에 대해서 노사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합의를 해놓고 실제 현장단위에는 결과가 별로 없다는 것. 이 본부장은 “합의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부분은 사실 합의의 주체가 각각 최선을 다해서 지도, 편달할 부분인데 그 부분이 현재 잘 안 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워낙 복잡다기한 문제가 일어나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에 전체 노사관계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데 있어서는
사회적 대화는 지속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노동시장은 다극화, 다변화됐다고 평가했다. 양쪽끝으로만 수렴할 수 없으며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화되고 다극화됐다는 것. 현재 기업도 단순히 수직으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식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는 노동시장이 다양화되고 다극화되면서 예전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근로의 모습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결국 산업의 발달정도, 경제의 발달정도, 외부 여건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되는 모습을 수렴하고, 거기에 적응을 하기 위한 노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4월 24일 총파업 선언한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현재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 즉각 중단 등을 주장하고 있다. 2월25일 오전 10시 민주노총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총파업 투쟁 선포식을 열고 4월24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와 서민을 살리기 위한 2015년 위력적 총파업 투쟁을 공식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오는 3월31일까지 민주노총 대정부 요구에 대한 답변과 함께 면담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친재벌 경제정책 중단 ▲노동시장 구조 개악 중단 ▲서민증세만 있고 복지는 없는 서민 죽이기 정책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4월24일 총파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파업일정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한이 3월말인 노사정위 구조개선 특위 대타협, 4월까지인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첫 직선제로 당선된 한 위원장은 선거공약이 총파업이었을 정도로 강경파로 분류된다. 이에 1997년 이후 18년 동안 현실화하지 못했던 총파업도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치와 마찬가지로 노사문제도 일상적인 노사균형을 전제로 대화와 자치에 의해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며, 우리나라처럼 노사 균형이 전혀 보장되지 않을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해 균형을 이루도록 강제하고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가뜩이나 기울어진 노사의 힘 균형을 정부가 더욱 사용자쪽으로 기울이는 편파행정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노동자의 투쟁이 없을 수가 없고 사회적 대화 기구라는 노사정위원회도 정부의 사용자 편향정책에 정치적 명분을 실어주는 기구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 역시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사용자 중심의 안을 기정사실화하며 합의를 종용하는 모양새”라고 평가했다. 이어 “균형이 없다면 협박과 다름없다”면서 “어차피 노사는 갈등과 조정을 늘 겪기 마련”이라며 “따라서 노사관계가 혁명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이상 모든 사안에서 노사를 사회적 합의로 이끌 순 없다”고 전했다. 다만 저출산, 환경, 고령화 등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 문제에 노사가 공히 봉착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식 대변인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비정규직의 남용과 불평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의 경우엔 임금 등 처우수준을 정규직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면 비정규직은 당연히 감소될 것이며, 진정한 자발적 비정규직(임시직 프리랜서) 수요에 맞는 노동시장이 조성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비정규직 기간제한’처럼 제도가 있어도 자본의 힘에 억눌려 유명무실한 경우가 허다하다”며 “노조 조직률을 높여 노동자 스스로가 잘못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높였다.
올 한해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총파업을 성공시켜 개악정책을 막고 진정한 개혁을 쟁취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밝혔다. 현재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노린 ‘노동착취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민영화와 더불어 공공성 후퇴의 상징인 공적연금 개혁도 개악이라며 막아야 할 중요한 영역이라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런 막아내야 할 과제와 더불어 ‘최저임금 1만원 시대’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총파업의 핵심 쟁취과제로 설정하고 있다”며 “특히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쟁취’는 올해 새롭게 제시된 과제로, 이는 우리사회가 재벌 등 자본독식 사회에서 노동소득 중심의 사회로 시대적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는 담론의 제시이자, 최저임금이 기준임금으로 작용하는 왜곡된 현실에서는 실제노동소득을 대폭 올리는 수단으로 최저임금을 작동시켜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전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