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뜩이나 장기불황에 공공요금이 또 오른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반갑지 않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원가 인상요인이 발생했는데도 공공요금을 올리지 못한다면 공기업의 적자가 심화된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 천정부지로 치솟던 국제유가가 한풀 꺾이면서 추운 겨울 도시가스 요금이 인하된다는 소식은 좀 따스하게 들리지만 공공요금이 인상되는 추세를 꺾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이제 국민들에게 이런 말은 잘 믿기지 않는다. 특히 공공요금은 거의 매해 올려왔고 올해도 예외는 아닐 거라는 국민들의 생각도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닐 듯하다. 정부는 100달러 고지를 넘었던 국제유가가 최고치의 절반 수준으로 인하되면서 유가 등 원가하락 효과가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에 제 때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지방공공요금 홈페이지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유가 내려도 공공요금은 제각각
국제유가 하락은 석유류 제품 가격과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꾸준히 내리고 있으며 석유류 제품 가격도 내림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도 내림세이다. 소비자물가는 2년 넘게 1%대 저물가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부터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5% 내외로 인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가스요금은 최근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와 스팟 계약가격이 하락해 원료비 인하요인이 존재하므로 1월부터 평균 5% 내외의 인하가 가능할 전망이다. 액화천연가스 도입계약상 유가지표가 현물유가보다 3~5개월 후행하는 시차가 존재하므로 유가하락이 도입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내년 1월부터 도시가스 요금 인하가 가능하다. 이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하 주문에 따른 결정이다. 박 대통령은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휘발유 등에 적시에 반영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도 유가 절감분을 요금에 즉각 반영토록 해서 서민가계의 주름살이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은 최근까지 오름세였고 이런 상황에서 도시가스요금을 내리겠다는 것은 이미 올라버린 요금에 어느 정도 인하분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가 1%대 저물가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도시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은 물가 상승률보다 갑절 이상 올랐다. 지난 2013년 11월 전기요금은 평균 5.4% 인상됐다. 전기요금이 생산원가보다 낮고 기름, 가스 등 다른 에너지 가격에 비해 싸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떨어지면 한국전력은 연간 1천억 원 가까이 연료비 부담을 절감할 수 있지만 기름만으로 돌리는 발전량은 전체의 5% 정도여서 국제유가와 전기요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아직도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낮아 기름값이 내렸다고 전기요금을 인하할 수는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게다가 지리적인 원인으로 인해 석유제품의 수송비용이 많이 드는 강원 춘천, 원주, 태백, 동해 등은 이미 시내버스 요금을 최대 9.1% 인상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해 석유류 제품가격이 떨어지면서 연료비용 부담이 줄어들게 되면 수송비용이 절감돼야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대중교통 요금은 오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대중교통 요금을 25%(250원~300원)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통카드 기준으로 1,050원인 현행 대중교통 요금은 최대 1,350원까지 올리겠다는 얘기이다. 서울시에서 시내버스 요금을 200~300원 올리게 된다면 통합 환승제도로 인해 지하철과 인천·경기 시내버스 요금도 같이 오르게 된다. 현재 1,050원(교통카드 기준)인 기본요금을 1,250~1,350원으로 올리려는 계획으로 인상 폭이 최대 28.6%에 이른다. 게다가 2년 마다 요금 인상을 정례화하게 된다면 대중교통요금이 폭등하게 된다.
인천교통공사도 도시철도 요금을 200원 인상하는 내용
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기본구간 전철을 타면 교통카드 기준으로 1,25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대구도시철도공사도 부채 감축을 위해 상반기 중 1,100원인 철도요금을 2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버스요금 상향 조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의 시내버스 사업비 가운데 연료비는 3천억 원으로 그 비중이 전체의 2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연료비가 절감된다면 요금이 내려야 하는데도 오히려 버스요금을 올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원료비용에 대한 부담이 감소했는데도 요금을 올리겠다는 것은 다른 부분으로 인한 적자 운영 부담을 요금 인상을 통해 해결해보겠다는 계산이다. 서울시 지하철의 연간 적자는 5천억 원, 시내버스의 연간 적자는 3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유가 기조는 지속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가격이 3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0월에 이어 11월에 국제유가는 더욱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며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저유가 동향 점검 간담회를 열고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간담회에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세계 경기 회복 지연과 비전통적 원유의 생산 증가, 달러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2015년 연평균 유가를 배럴당 64∼101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그러나 신흥국 성장둔화와 산유국의 재정건전성 악화, 생산비용이 비싼 비 전통자원의 개발 축소 등이 유가를 상승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고 리비아의 생산이 회복되면 석유수출국기구의 공급이 크게 늘어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64.04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대로 리비아 내전이 심화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 등 지정학적 요인에 따른 공급차질이 발생하면 공급이 줄어 유가가 배럴당 100.87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업종별로는 유가가 하락하면 화학, 비금속광물, 자동차, 섬유 등에서 생산증가 효과가 나타나는 반면 정유는 매출액이 감소하고 플랜트 부문은 중동지역 수주 지연·감소 등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공공요금 인상 도미노
대부분의 공공요금은 오를 전망이어서 가계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중교통, 상·하수도, 쓰레기봉투 등의 요금과 고속도로 통행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6월 수도요금을 원가의 90%까지 현실화하라고 지자체에 권고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수도요금이 오를 전망이다. 상수도 요금도 부산시와 대구시 등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연초부터 인상이 시작된다. 부산시는 수돗물 생산원가를 맞추기 위해 오는 2018년까지 수돗물 요금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기로 하고 연차별로 수돗물 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대구시도 수돗물 요금을 내년 1월부터 2년간 8.7∼10% 정도 인상할 예정이다.
충북 청주시도 수도요금을 9.7% 올렸다. 경기도 안성시와 이천시, 경북 영천시 등은 내년부터 수도요금을 각각 423%, 143%, 10%대 인상안을 검토 중이다. 세종시는 상수도뿐만 아니라 하수도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원주시는 오는 2017년까지 매년 하수도 요금을 올리고 이천시도 내년부터 2017년까지 하수도 요금을 최고 4.3배까지 인상할 계획이다. 경기 용인시는 내년부터 쓰레기 종량제봉투 가격을 최대 50% 인상하기로 했다. 지방 공공요금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통행료 등 중앙 공공요금도 인상될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4.9% 안팎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요금 원가공개
장기적으로 저물가 흐름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서민 경제생활의 지표인 공공요금이 오르면 시민들은 여전히 물가 사정이 나쁘다고 여길 수 있다. 또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공공요금의 인상 폭이 그보다 더 크다면 실질 임금상승 효과가 전혀 없게 된다. 예를 든다면 최저임금이 300원 오르는데 버스요금, 지하철요금, 전기요금, 상수도요금, 하수도요금 등 여러 가지의 공공요금이 300원씩 오른다면 최저임금이 인상된 것보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에서는 여러 해 전부터 원가 인상 요인이 얼마나 발생했는지에 대한 투명한 가격 산정 체계 공개를 요구하면서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통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2014년 7월부터 수도요금 생산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자체와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서 수도요금 생산원가의 변동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놓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전국 162개 지자체와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 수돗물의 생산원가와 부과단가, 재원부족액 등과 함께 수도요금 현실화율의 추이를 알 수 있도록 지난 4년간의 생산원가와 부과단가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수돗물 원가정보 공개는 수도사업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 각 관련 기관의 경영개선에 도움을 주고 각 자치단체마다 다른 수도요금 격차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정책이다. 그러나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에서도 서울시청 홈페이지에서도 수도요금 생산원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도요금 원가공개는 원가 변동분이 발생했을 때 공개하겠다는 것이고 현재는 공개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물가상승분을 반영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2년마다 한 차례 인상할 수 있도록 조례에 명문화하기로 하는 등 요금 인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시에 확인한 결과 이번 조례에는 그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요금 인상을 2년마다 인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방침을 정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공요금 원가공개 의무화를 해야 하는 이유
지난 2012년 경실련은 ‘공공요금 원가공개 의무화하자’는 제하의 보도자료를 냈다. 자료에서는 “공기업의 심각한 부채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공공요금의 일방적 인상을 감내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공공요금 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밝히면서 “공기업이 운영과정에서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원가에 반영하지 않은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공요금은 요금변경 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해야 하지만 협의는 공공요금 중 전기, 통신, 열차, 시외·고속버스, 도로통행료 등 중앙공공요금에 한정돼 있다. 게다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시외·고속버스요금, 전기요금, 가스요금을 제외하고 요금인상 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한 사실조차 없다. 따라서 중앙공공요금 및 지방공공요금을 포괄하는 공공요금 산정체계 개선, 공공요금 원가 검증 및 관리·감독체계, 요금인상 시기 및 범위 등의 기준과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공공요금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확보된다면 자연스럽게 적정하고 공정한 요금이 산정될 수 있다. 소비자가 배제된 채 공공요금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요금이 적정하게 선정됐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따라서 공공요금 결정과정 및 사업내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공공요금의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 공공요금은 주무관청이나 서비스제공 기관이나 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인상되므로 소비자는 단지 불이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실련은 요금결정과정에서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물가대책위원회 또는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고 공청회 등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공공부문의 경영혁신의 노력도 선행돼야 한다. 공공서비스는 필요적으로 독점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독점은 가격이나 서비스 경쟁이 필요 없게 되고 결국 방만 운영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의 부채증가 또는 공공요금인상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원가절감과 서비스 향상 등 경영혁신을 통한 공공요금 인하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