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싼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가치투자의 출발점이다. 이와 더불어 가치투자는 기본적으로 매매가 아니라 투자를 지향한다. 우리는 약간의 차익을 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빈번히 주식을 사고파는 매매자(트레이더 혹은 스캘퍼)가 아니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수익을 극대화하는 진정한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투자를 지향해야 한다. 장기투자는 투자자의 수익을 극대화해주는 경험적으로 확인된 가장 효과적인 투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우리가 왜 ‘기본적으로’ 장기투자를 지향해야 하는지, 장기투자에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언제 매도할 것인가?
엄격한 주식 스크린 과정을 거쳐 좋은 주식을 매수했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유한 주식을 매도해야 한다. 그런데 매도전략을 둘러싸고 같은 가치투자 진영 내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요컨대,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좋은 주식을 골라 매수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수익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특히 언제 매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가치투자자들 사이에도 완벽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경우, 좋은 기업을 강조하면서도 주가수준을 더욱 중시해 적정가치 훨씬 이하의 가격에서 거래되는 싼 주식, 예컨대 회사의 시가총액이 순현금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인 주식, 특히 회사 보유현금의 50% 이하의 가격에서 거래되는 주식을 찾는데 초점을 맞췄다(최근에는 이런 주식을 찾기가 무척 힘들다). 또 PER가 10배 이상인 주식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16배 이상인 경우에는 투자하지 말라고 했다. 매도와 관련해 그레이엄은 2-3년이 지나도 주가에 별 변동이 없으면 주식을 매도하고, 주가가 매수가에서 50% 이상 상승하면 보유 기간과 관계없이 주식을 매도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이런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를 1세대 가치투자라고 한다면, 2세대 가치투자의 대표주자는 워렌 버핏이라 할 수 있다. 그레이엄의 가치투자에 기초하면서도 워렌 버핏은 기업 자체의 지속적인 경쟁우위에 관심을 갖고 복리수익률의 폭발적인 혜택을 누리기 위해 좋은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매수-보유(buy & hold)’전략을 썼다. 물론 워렌 버핏도 좋은 주식을 적정가치 이하의 가격에 매수할 것을 강조했다. ‘매수가가 수익률을 결정한다’는 그의 투자원칙도 그것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이 그레이엄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치투자의 원칙이라면, 워렌 버핏은 여기에 ‘매수-보유’라는 장기투자전략을 가미하여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우위와 그 경쟁우위가 가져다주는 수익을 최대화하려고 했다.
장기투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복리수익의 마술
예컨대, A라는 좋은 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이 회사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자기자본 대비 이익의 비율)이 20%라면, 이 회사는 향후 상당기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자기자본이익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이 회사가 이익을 전액 내부 유보한다면, 이 회사의 다음해 자기자본은 ‘전년도 자기자본 + 전년도 이익’이 된다. 이런 가정에 기초해 이 회사의 향후 10년간 이익을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
자기자본(전년도 자기자본 + 전년도 이익) |
이익 |
기준년도 |
100 |
20 |
1년차 |
120 |
24 |
2년차 |
144 |
28.8 |
3년차 |
172.8 |
34.56 |
4년차 |
207.36 |
41.47 |
5년차 |
248.83 |
49.77 |
6년차 |
298.6 |
59.72 |
7년차 |
358.32 |
71.66 |
8년차 |
429.98 |
86 |
9년차 |
515.98 |
103.2 |
10년차 |
619.18 |
123.84 |
이를 투자자 관점으로 전환해보자. 편의상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 10,000주이고 주가가 100원이라면, 주가는 주당자기자본(100만원 ÷ 1만주 = 100원)과 같다. 그리고 이 회사의 주가가 주당자기자본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투자자가 기준년도에 이 회사 주식 1주를 100원에 매수해 10년간 보유했다면, 10년 후 주가는 619.18원이 되고 총 수익률은 세전으로 620%가 된다.
여기서 한 종목의 주식 보유기간이 평균 6개월인 미국 투자자들의 경우, 6개월 후 주식을 매도하면 주가는 110원, 총 수익률은 10%가 된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경우라면 매수가에서 50%정도 주가가 상승한 2-3년 차에 주식을 매도할 것이고, 이 때 총 수익률은 50%가 된다. 사실 이 50%의 총 수익률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워렌 버핏처럼 복리수익을 기대하면서 이 주식을 10년간 보유하면 주가는 619.18원, 총 수익률은 620%가 된다. 20년 보유하면 주가는 3,833.76원, 총 수익률은 3,834%가 되고, 30년 보유하면 주가는 23,737.63원, 총 수익률은 23,738%가 된다. 이자가 이자를, 이익이 이익을 낳는 복리수익의 마술이 작용하면서 수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워렌 버핏 식의 장기투자를 ‘스노우볼(snowball)’ 투자라고 부른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매수가에 따라 이 수익률은 크게 달라진다. 위에서는 주당매수가를 주당자기자본과 같은 100원으로 가정했다. 그런데 이 주식이 일시적으로 저평가되어 주가가 주당자기자본의 50%인 50원이 되었다고 할 때 그리고 이 회사의 주가가 궁극적으로는 주당자기자본 수준을 다시 회복한다고 할 때, 10년 후 총 수익률은 1,238.36%, 20년 후 총 수익률은 7,667.52%가 된다. 같은 기업이라 해도 주가가 100원일 때와 50원일 때의 수익률 차이는 엄청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매수가가 수익률을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는 가공의 사례이긴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장기투자에서 누릴 수 있는 복리수익의 엄청난 혜택을 확인할 수 있다.
성공한 가치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5년
가치투자를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제임스 몬티어(James Montier)에 따르면, 1871년 이후 미국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주가상승, 배당수익률, 실제 배당금 증가가 총 실질수익률에 각각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1년과 5년의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분석한 결과, 수익창출 동인(動因)의 관점에서도 장기투자가 합리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년 보유의 경우, 총 실질수익의 60%가 투자자가 통제할 수 없는 주가상승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5년 보유의 경우, 총 실질수익의 약 80%가 훨씬 안정된 수익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배당수익률과 실제 배당금 증가에서 발생했다. 주식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배당수익률(매수가 대비 배당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매수가에 따라 달라짐)과 실제 배당금 증가가 수익원천으로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주식을 장기 보유할수록 수익원천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장기투자가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기실 성공한 가치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약 5년이었다.
특히 가치투자를 할 경우, 수익률은 시간이 감에 따라 시장 평균수익률을 크게 상회했다. 미국시장에서 가치투자전략의 보유기간별 누적수익률에 관한 분석에 따르면, 가치투자는 1년 차에는 시장보다 약 7% 높은 실적을 냈고 2년차에는 시장보다 13% 높은 실적을 냈다. 이런 실적 격차는 시간이 가면서 더 벌어졌다. 3년차에는 시장보다 25% 높은 실적을 냈고 4년차에는 시장보다 33% 높은 실적을 냈다. 장기로 가면서 시장수익률과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린 것이다.
커피 캔 포트폴리오
전설적인 투자자 밥 커비(Bob Kirby)는 주식을 묻어놓고는 건드리지 않는 이른바 ‘커피 캔 포트폴리오’를 권한 바 있다. 커피 캔 포트폴리오란 과거 서구인들이 귀중한 재산을 커피 캔에 넣어 침대 매트리스 밑에 보관하던 관행에서 따온 것이다. 이런 커피 캔 포트폴리오전략에는 거래비용이나 특별한 관리비용이 소요되지 않으며, 이 전략의 성공여부는 오로지 커피 캔에 넣어 보관할 좋은 물건(싸고 좋은 주식)을 고르는 지혜와 통찰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커비는 커피 캔 포트폴리오전략이 투자매니저들 사이에 인기를 끌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이런 전략이 만연하면 수입의 상당부분을 거래수수료에 의존하는 증권투자업이 위축되고 투자업에 종사하면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던 사람 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커비는 개인은 커피 캔 포트폴리오전략을 추구하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하고, 개인투자자는 진정한 투자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매매자(트레이더)가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하며 진정한 투자자가 되려면 단기 시장추세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좋은 주식을 사서 묻어두는 커피 캔 포트폴리오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기실 커비가 지적한 것처럼 커피 캔 포트폴리오라는 장기 보유전략을 추구하면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발생하는 각종 수수료나 세금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매매에 따른 이런 각종 비용을 제거하면 실질수익은 그만큼 높아지며, 이런 효과는 장기투자로 갈수록 더 커진다.
‘버핏 + 그레이엄’을 시도하자
복리의 마술이 제공하는 효과, 장기 가치투자의 실제 수익률이 시장을 상회한다는 경험적 사실, 불확실한 시장상황에서 장기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확실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장기투자에 따른 여러 비용절감효과를 감안할 때, 가치투자자라면, 아니 진정한 투자자라면 기본적으로는 장기투자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100% 장기투자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권하는 것은 포트폴리오의 상당부분(예컨대, 2/3 이상)은 장기투자를 지향하되, 일부(예컨대, 1/3 이하)는 비탈리 카스넬슨이 말한 이른바 ‘적극적 가치투자‘로 운용하라는 것이다. ‘타이밍에 강한 가치투자 전략(Active Value Investing)’의 저자 비탈리 카스넬슨이 말하는 적극적 가치투자란 워렌 버핏보다 그레이엄의 투자전략에 가까운 것으로 ‘적정가치에서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매수한 후 적정가치를 회복하면 즉시 매도하는 전략’이다.
비탈리 카스넬슨은 워렌 버핏의 ‘매수-보유’식 장기 투자전략은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는 대세상승기에 매우 효과적이고 실제로 대세상승기였던 20세기에 가장 탁월한 성과를 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2000년 말로 대세상승기가 끝나고 2020년경까지 아찔하고 짜릿한 장기 롤러코스터장, 즉 장기 박스장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적정가치에서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되 적정가치가 회복되면 기다리지 말고 즉시 매도하는 적극적 가치투자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로서는 2020년경까지 장기 롤러코스터장이 전개될 것이라는 카스넬슨의 예측이 맞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의 말을 믿고 포트폴리오 전체를 적극적 가치투자로 운용하는 것은 장기투자가 가져다주는 많은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트폴리오의 많은 포션은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전략을 지향하되,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일부 포션에서만 적극적 가치투자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워렌 버핏과 그레이엄의 투자전략을 적절히 조합한 것으로, 이런 식의 투자전략 조합은 특히 투자자의 투자목적과 나이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음 호에서는 투자목적과 나이에 따라 워렌 버핏의 ‘매수-보유전략’과 그레이엄 및 카스넬슨의 ‘적극적 가치투자전략’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글 / 김상우 본지객원편집위원
<MBC 이코노미 매거진 4월호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