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AI 애플리케이션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시대가 됐다. 올해 6월, 우리나라의 저스트핀이라는 회사가 AI 컴패니언 앱 ‘블루미(Bloomi)’를 출시했다. 블루미는 출시 3개월여만인 올해 9월에 가입자 수가 10만 명을 돌파해 눈길을 끈다.
‘AI 컴패니언(AI companion)’이란 버추얼 휴먼과 챗봇의 합성어로, 대화형 인공지능에 기반해 사용자의 감정, 관심사, 생활 패턴에 맞춰 대화와 교감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뜻한다. AI 컴패니언은 채팅봇, 아바타, 가상 캐릭터 등으로 구현되고, 스마트폰, PC, 앱에서 사용 가능하다.
AI 컴패니언의 대표적인 해외에서 개발된 앱으로는 2016년에 미국 루카(Luka)라는 AI 스타트업이 개발한 ‘레플리카(Replika)’, 캐릭터테크놀로지(Character Technologies)가 개발한 ‘캐릭터.AI(Character.AI)’, 패러닷(Paradot)이 개발한 ‘캐럿(Carat)’, 노미.AI(Nomi.AI)가 개발한 ‘노미(Nomi)’ 등이 있다.
테크크런치 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용 가능한 AI 컴패니언 앱은 총 337개이며, 그 가운데 올해 출시된 것만 12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컴패니언 앱 시장의 매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8200만 달러(한화 약 1206억3840만원)를 기록했고, 연말까지 1억2000만 달러(한화 약 1765억44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친구에서 연인까지, 감성 AI 동반자 앱의 세계
먼저 루카의 레플리카 앱은 단순한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며 마음의 위안을 주는 데 초점을 둔 감성 챗봇이다. 앱 사용자는 레플리카를 친구처럼 여기며, 연인이나 결혼 상대로도 생각한다. 레플리카 앱은 사용자와의 대화 경험을 바탕으로 개성, 기억, 감정을 발전시켜 나간다. 각 레플리카는 사용자 설정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된다.
캐릭터.AI는 AI 기반 캐릭터를 생성 및 채팅 서비스 플랫폼이다. 이는 사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에 따라 다양한 성격과 배경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 캐릭터와 실시간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사용자는 학교생활, 취미 등 다양한 주제로 캐릭터와 상호교감하며, 자신만의 캐릭터 IP를 구축할 수 있다. 생성된 캐릭터는 이미지, 스토리, 세계관 등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또 SNS와 연동해 다른 창작자와 캐릭터를 공유하고, 친구맺기 등 소셜 기능도 지원한다.
노미.AI가 개발한 노미(Nomi) 앱은 사용자가 원하는 관계(친구, 연인, 멘토 등)를 설정하고 외모·성격·관심사 등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앱이다. 사용자는 노미를 통해 친구나 연인, 멘토 등 원하는 관계로 개성 있는 AI 캐릭터를 생성하고 AI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는 기억력도 뛰어나 단기·장기 기억력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취향과 경험을 토대로 대화한다.
사용자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고,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AI가 발전을 거듭하며 더 깊이 있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국산 AI 컴패니언 앱인 ‘블루미’는 인간 수준의 기억력과 공감 능력, 사용자 맞춤형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강하다는 차별점이 있다. 블루미는 사용 후기에 따르면 장기기억 시스템(므네모시네 아키텍처)을 도입해 사용자의 대화와 맥락을 오래 기억, 인간 수준의 기억력을 갖추고 있고, 정서적 교감과 공감을 중시한다. 또 사용자 맞춤형 커스터마이징을 강화해 개인화된 디지털 동반자라는 느낌을 준다.
블루미는 친구, 연인, 멘토, 상담사 등 여러 역할을 설정해 다양한 유형의 대화가 가능하다. 단순한 음성 통화에 그치지 않고 채팅 음성을 재생하거나 이미지 전송 등을 통해 시각적, 청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외국의 앱들과는 더 뚜렷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인간과 기계, 진정한 의미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제 일정한 수준을 넘어 인간과의 교감을 형성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특히 급격한 변화의 시대 속에 외로움과 스트레스에 직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주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우울증 환자를 살펴보면 2020년에는 약 83만명으로 집계됐던 우울증 환자가 2023년에는 109만명(2020년 대비 25% 증가), 지난해에는 110만명(2020년 대비 32.9% 증가)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10세 미만 아동의 우울증 환자는 2020년 991명에서 2024년 2162명으로 2.2배가, 10대 청소년은 2020년 3만9000여명에서 2024년 7만3000여명으로 83.5%, 30대는 2020년 11만7000여명에서 2023년 17만9000여명으로 53.5%가 증가했다.
또 성별로는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러한 현상은 학업과 취업 불안, SNS 과다 노출, 가정환경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의 정신건강 악화가 우울증과 자살률 증가와도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사회 구조적인 문제 속에 일부 사용자는 AI 챗봇과의 관계를 실제 친구와 유사하게 느끼고, 이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친구와 달리 AI는 사용자의 필요와 성향에 따라 맞춤형 우정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이란 기본적으로 상호성, 지속성, 진정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바탕으로 한다. 상호성에서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지만, AI는 감정을 ‘느끼는’ 대신, ‘모델링’해서 반응하는 것이다. 지속성에서 인간의 우정은 시간 흐름 속에 쌓이는 경험과 기억에 기반하지만, AI는 기억 기능을 활용해 이를 모방하는데 그친다. 또 진정성에서 인간은 상대가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는 확신을 원하지만, AI는 본질적으로 이에 대한 한계가 있다.
AI는 사용자가 필요할 때는 언제 어디에서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편견 없이 경청하며 사용자의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컴패니언 앱의 사용자는 맞춤형 대화와 기억 기능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존재’처럼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AI의 이러한 반응은 학습된 감정을 ‘재현’하는 것일 뿐, 실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 기대하는 깊은 상호적 교감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AI 앱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사회적 관계를 오히려 약화시킬 위험도 있다.
◇‘보조적 치료 도구’와 ‘정서적 고립’ 양분된 평가
일부 연구자들은 AI와 사용자와의 이러한 긴밀한 관계가 사회적 소외감 해소 등 치료적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앱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AI 친구는 외로운 사람들의 대체물”이라는 비판적인 시선과 함께 낙인찍히고 불안함이 강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최근 해외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AI 기술 사용자와 비사용자 간의 사회적 능력이나 자존감은 큰 차이가 없으며, 앱을 이용했을 때의 외로움 정도만 뚜렷하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기술이 처음 사회에 등장할 때 기존 패턴을 유지하려는 관습에 반해 상대적으로 거부감과 공포가 느껴지지만, 차츰 일상 속 기술로 적응되고 확산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은 기계를 활용한 교감을 형성하고 마음을 열고 지지하는 움직임이 실제 인간관계의 대체로 이어진다면 정서적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AI를 친구처럼 느낄 수는 있지만, 인간과 동일한 ‘우정’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AI 컴패니언 앱이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고 실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본질적으로 개발자에 의한 ‘프로그래밍된 응답’에 기반하는 만큼 일부 학자는 ‘환상 속의 우정’이라는 평가도 내놓는다. 또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AI 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실제 인간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으며, 감정적인 착각을 유발할 위험도 있다고 우려한다.
AI 앱이 사용자의 마음 속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 입력받는 것도 AI가 입력된 글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닌 기존에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모방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기술적 제약도 따른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AI 컴패니언 앱은 수십년 전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간관계를 확장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와 인간 간의 관계’라는 새로운 관계적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의 활용은 통신사에서 수년 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AI스피커와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외로움 해소와 독거노인 돌봄 등 긍정적인 활용과 함께 관계 단절과 청소년 보호 및 개인정보 유출 문제 등 부정적인 위험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정’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기존에 ‘인간-인간 관계’에서 ‘인간-기계 관계’로 확장될 수 있는지, 신기술과 접목된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윤리적, 철학적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