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한의 기후 위기 속 살인 더위만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종 위험 요소로 싱크홀(지반침하 현상)이 떠오르고 있다. 어느새 일상 속 재난으로 자리 잡은 지반침하 사건은 자연재해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해 국가 차원의 예방과 정책적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4년 8월 5일 서울 석촌동 지하차도 인근에서 발생한 싱크홀이 세간에 알려졌고 2025년 3월 24일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로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 10년간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거대한 블랙홀'로 커져버린 공포와는 달리 정부와 지자체의 싱크홀에 대한 사전·사후 안전 점검과 주민 안내, 즉각적인 응급 대응 시스템 구축 등 기본적인 안전 대책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실옥동 한 도로에서 가로·세로·폭 약 2m 크기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오전 7시 13분쯤 발생한 이번 싱크홀은 사고 순간 다행이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은 없었다. 충남시는 우수관 누수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396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약 1000여건을 분석해 보니, 주요 발생 원인의 57%가 상하수도관 등 지하 매설물 손상에 따른 것이었고, 발생한 싱크홀의 32%는 지하철역 인근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만 73건의 지반침하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수 관리 부실, 배수 공법 위주의 설계...안전전검 이행률 여전히 낮아
지난 21일 국회에서는 국회재난안전정책포럼(대표의원 이종배·만홍철)이 주최한 ‘싱크홀 사고 어떻게 막을 것인가- 지반침하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종배 의원은 “싱크홀 사고는 도로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전혀 예측할 수 없고, 길 가다가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안고 생활해야 한다”며, “도로관리자 입장에서는 사전 예측·관리를 통해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전문가들의 대안을 입법·정책적으로 뒷받침해 싱크홀로부터 가장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종섭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는 싱크홀(땅꺼짐)의 원인, 탐지, 예방, 복구 등 사고 전반의 분석과 대책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이종섭 교수는 “싱크홀은 지하 굴착이나 터널 공사 중의 굴착량과 토사 유출량 간의 불균형, 지하수 관리 부실, 배수 공법 위주의 설계 관행 등이 주된 원인이다”라며, “정밀한 지반조사 및 검증 시스템 도입, 지하수 관리 기준 마련, 공법 타당성 검증 및 보강체 건전도 평가 등 사전 예방적 기술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지하투과레이더(GPR), 드론(무인항공기 UAV), 4족보행 로봇 등 비파괴 탐사 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기술 적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하며, “특히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 위주의 업주들 발주 관행 속에서 품질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경제성과 품질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일본 등은 다짐 장비 사용이 불가능한 도로에 대한 ‘유통화토에 대한 재료 시방’ 규정을 수립했고, 싱가포르의 경우엔 대규모 복합지하구조물 내 다양한 공간에 대해 유동화토를 적용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한국의 배수형터널과 달리 전면 비배수 터널을 적용해 지하수위 침하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지하 안전법 책임 주체 불명확...국민 안전문제에 '인력·예산 핑계' 이제 그만
이어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조계춘 카이스트 건설환경공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고, 토론자로 문준식 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 허춘근 국토부 국토안전관리원 지하안전관리실장, 박덕근 행안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재난안전실험센터장, 한휘진 서울시 재난안전실 지하안전과장, 김용수 제2차 국가지하안전관리 기본계획 책임연구원, 이영한 강동소방서 재난조사팀장이 참여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준식 경북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터널 시공 중 발생하는 대형 싱크홀 사고는 ▲지반조사 부실 ▲배수형 터널 설계 ▲공사비·공기 압박 등 복합적·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지반조사의 독립성 확보, 사고 사례 공유 제도화, 공사비·공사기간 압박와 전문인력 확보 등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하며, “국내에서만 반복되는 터널 붕괴사고의 원인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 본사직원의 투입은 줄이고 외국인 노동자 비율을 급속히 증가하는 노 시공 현장 역시 소통이나 안전교육의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자체와 지하시설물 관리자가 인력과 예산을 이유로 안전전검에 대한 이행률이 낮다는 점이다.
허춘근 국토부 국토안전관리원 지하안전관리실장은 “지반침하 사고 예방을 위해 제정된 ‘지하안전법’은 여전히 조직·인력·예산 부족 등으로 이행률이 낮고, 현장 적용과 정책 추진력도 미흡한 실정이다”라며, “실효성 있는 지하안전 확보를 위해선 정부·지자체, 국회, 연구기관, 민간, 시민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 실장은 “지하 안전법이 최상위 법이고 관리 당국에서는 GPR의 깊이(심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빈번한 조사로 지반침하를 관리·감독하는 것이 현재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며 “앞으로 지하 안전법의 책임 주체를 명확하게 하고, 이해관계 충돌과 정책 우선순위를 법 제정을 통해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덕근 행안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재난안전실험센터장은 지하 안전의 문제와 어떤 대안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대답했다.
박덕근 센터장은 현재 다양한 원인(지질, 도심밀집)에 의한 침하 위험성 간과·연역지반 시설물 밀집지역 등의 공사의 경우 굴착 깊이 10m 미만에서는 지하안전평가 대상에 포함하도록 규정을 개선했고, 고위험지역의 육안·공동 조사 실시주기를 연 2회로 상향 추진 밝혔다.
하지만 박 센터장은 “지하안전 강화를 위한 현행 제도에는 지자체의 전담 인력 부족, 평가 기준의 한계, 점검 주기의 일률성, 지하정보의 제한적 활용 등 여러 문제가 있다”며, “고위험지역 중심의 점검 강화, 지하안전평가 대상 확대, 지하정보의 개방 확대, 모래 대체 재료 도입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하철 밀집된 서울시, 전담 대책반 조직...싱크홀은 사전에 막을 수 있나
서울시는 명일동 대형 지반침하 사고 이후 ▲지하안전과 신설(7월 1일부로 4개팀 27명→추가 11명 확충 계획) ▲공사장 주변 위주로 GPR 탐사 적극 확대(대형 굴착 공사장 GPR 탐사 309개 전체 대상 연1회→매주 1회) ▲스마트 계측기 설치 및 신기술 도입(실시간 관측기 현재 12개에서 향후 서울시 전역에 250개 확충) ▲하수도 정비 예산 증액(2,250억원에서 4,250억원 확대) 등 다각적인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한휘진 서울시 지하안전과장은 추가로 “지하안전 강화를 위해 광역지자체 역할 강화, 예산 현실화, 정보 공개, 시민 신고제 확대 등 종합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GPR 탐사가 깊이 2m까지 밖에 투과가 안돼서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큰 땅꺼짐에는 효과가 없지 않느냐 의문에 대해 한휘진 과장은 "동공은 깊은 곳에서 점점 지표면으로 올라오면서 커지는데, 지표면 2m 안으로 들어올 때 GPR을 하면 땅꺼짐 전에 발견할 수 있다"며, "그 횟수를 늘림으로써 동공의 발견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로 GPR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수 제2차 국가지하안전관리 기본계획 책임연구원은 서울시처럼 제정능력이 되는 시와 달리 지방에서는 싱크홀 관련 구체적인 제반 확충이 어렵다는 한계도 언급했다.
김용수 책임연구원은 지난 5년간 ‘지하 안전법’ 실행률이 미흡한 점을 GTX 사업의 예로 대신했다. 효율성이 저하된 이유는 현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계 단계부터 특정 기업이 독점하다 보니 ‘서류 통과만 하면 끝’이라는 풍토가 만연하다. 그러다 보니 제도개선이나 평가관리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이어 김 책임연구원은 “복잡한 지하개발과 노후 지하시설물 등으로 대형 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기술 개발과 제도 개선, 지자체의 철저한 계획 수립이 시급하다”며, “사고 예방을 위한 PDCA(계획-실행-점검-조치)체계의 실천을 통해, 반복적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땅꺼짐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한 이영한 강동소방서 재난조사팀장은 싱크홀에 대한 메뉴얼 및 재난 대책 홍보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서울 강동구 명일동 사고의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이 재난조사팀장은 “강동구 싱크홀 사고 현장에서는 상수도관 파손으로 대량 누수가 발생했고, 전기·가스·주유소 등 2차 위험 요소가 노출되며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사고 지점이 인근 9호선 지하철 공사현장과 연결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유관기관 협업을 통해 인명 구조 및 2차 피해 예방 조치를 완료했다”고 사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알려지는 단편적인 싱크홀 현장과 달리 “상수도 파열, 배수·누수로 인한 사고 규모가 재난급”이라며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교통통제 및 통제선 설치 등 안전 조치의 중대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