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에서 솔로몬에 대한 기록을 보면 방향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방향물은 지금의 향신료와 같은 단어인데 맛과 향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음식이나 음료에 첨가하는 모든 물질로 풀이된다. 프랑스에서 향신료라는 단어는‘돈’을 뜻하는 라틴어 ‘species’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처럼 돈 또는 금과 향신료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만 봐도 향신료가 금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성서 아가서에는 진기한 향유로 가득한 석류나무와 감송나무, 사프란, 향내 나는 갈대, 향나무, 몰약과 알로에, 육계나무 등 귀한 대접을 받았던 향신료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육계나무는 기원전 7세기 아름다운 여류시인 사포의 문하생들이 레스보스 섬에서 육계나무 껍질 향을 몸에 바르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사프란은 포도주의 향을 더하는데 쓰였고 꽃을 엮어서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화환으로 만들어졌다. 귀한 향신료는 왕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기에 바빌론의 왕느브갓네살은 향신료를 넣은 요리와 포도주를 좋아했다.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다리우스2세 왕은 277명의 요리사와 향신료만을 담당하는 노예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 로마문명은 절제와 검소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향신료가 널리 퍼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중에 향신료 중 하나인 후추가 널리 사용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플리니우스는 “누가 감히 음식에 후추를 넣었는가? 어째서 절식으로 만족하지 않고 식욕을 돋우려 하는가?” 하며 한탄했다고 한다.
후추
현재는 후추가격이 아주 싸다. 하지만 예전에는 후추가 귀해서 후추의 양을 늘리려고 여러 값싼 것들과 섞어서 팔았을 정도로 귀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플리니우스가 후추를 넣는 것을 대단히 사치스럽게 여겨 한탄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플리니우스는 사람들이 후추를 노간주나무 열매나 겨자씨와 섞는 것을 보기 좋지 않게 여겼다. 나중에는 이렇게 섞는 것이 너무 많아져 후추에 아무 것도 섞지 못하게 하거나 장난질을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고 어길 경우 벌금형에 처했다.
후추는 돈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 엑상프로방스의 대주교들은 그 도시의 유태인들에게 학교 개설과 공동묘지 건축을 허락하는 대신 그들에게 품질 좋은 후추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예전에는 검은 후추와 흰 후추가 서로 다른 종류의 씨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검은 후추는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따서 건조시킨 것이고 흰 후추는 열매가 완전히 익었을 때 딴 뒤 가공한 것이다. 녹색 후추는 열매가 익기 전에 수확해서 소금물이나 식초에 담가 저온급속냉동으로 처리해 얻는 것인데 196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육계나무
육계나무는 cinnamome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kinnamom에서 어원을 따왔다. 그래서 육계나무를 계피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계피와 육계나무 다른 것이다. 육계나무는 계수나무의 껍질을 가리킨다. 계피의 대용으로 육계나무 껍질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총칭해 계피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육계나무 껍질은 후추와 더불어 가장 비싸고 인기 있는 향신료였다. 육계나무 껍질은 황제와 몇 귀족의 특권이었고 13세기에 와서야 널리 퍼졌지만 그래도 값이 비쌌다.
어떤 부유한 상인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보는 앞에서 육계나무 한 묶음을 불태운 일화가 기록에 남을 정도로 다른 나무껍질들과는 역시 확연히 다른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육계나무는 포도주에 향을 입히는데 쓰였다. 중세 말에는 요리와 소스에도 많이 쓰였는데 모든 소스 중 2/3가 육계나무 껍질을 써서 만들었을 정도였고 지금 우리가 먹는 카레에도 육계나무 껍질이 들어간다.
바닐라
향신료 중 가장 익숙한 이름이 아닐까? 이름만 들어도 달콤할 것 같은 바닐라는 모든 디저트 요리의 감초 역할을 한다. 향신료라고 하면 흔히 향이 강하고 맵고 독특한 맛이 나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데 바닐라 같은 달콤한 것도 향신료에 속한다. 에스파냐의 모험가 코르테스 장군은 바닐라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처음 묘사한 사람이다. 이에 따르면 아스텍 왕국의 황제 목테수마가 바닐라를 카카오를 넣어 만든 음료인 초콜라틀과 함께먹었다고 한다. 바닐라는 앞서 말했듯 단 음식에 주로 사용된다. 18세기 초콜릿이 유럽에 널리 확산되어 엄청난 열풍을 불어 일으킨 것은 바닐라 덕분이었다. 바닐라가 카카오의 쓴 맛을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닐라를 재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그리고 바닐라를 따서 가공하는데도 많은 손과 기술이 필요하다. 바닐라는 너무 일찍 따면 향기가 덜하고 너무 늦게 따면 깍지가 저절로 벌어져 속에 있는 바닐라 씨를 다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까다로운 바닐라는 현재 공급이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값이 꽤 나가기 때문에 전 세계 필요한 양의 90%는 인공 바닐라 향으로 대체하고 있다.
겨자
이번에는 대체적으로 빠른 시기에 서민들의 식탁에 올라갈 수 있었던 향신료를 소개해 보겠다. 바로 겨자다.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겨자는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겨자가 값이 싸지고 흔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겨자 소비가 확산되면서 이런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신께서 이 세 가지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겨자도 바르지 않고 그냥 먹어야 하는 불상사로부터,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하인으로부터, 그리고 화장한 여인으로부터!”
교황 요한 12세는 겨자를 너무 좋아해 어디를 가든 음식에 넣어 먹었다. 겨자그릇을 책임지는 직책을 만들 정도로 말이다. 클레멘스 7세 역시 겨자를 좋아했는데 자신의 겨자 취향을 이해해주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줬을 정도로 겨자 사랑에 빠졌던 인물이었다. 겨자는 약으로도 사용됐다. 괴혈병 치료제로 많이 사용 됐는데 실제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여행길에 겨자를 잔뜩 들고 가서 여행 중 어느 도시를 휩쓸고 있던 괴혈병을 퇴치하기 위해 겨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MeCONOMY Magazine Ma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