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스타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대중에게 큰 관심거리다. 시대를 불문하고 팬들은 스타의 행적을 공유하고 그들의 일희일비를 함께 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화려한 이면에 감춰져 있던 세계 명배우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로널드 레이건 -“ 믿어라, 그러나 또한 검증하라. ”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예순아홉 살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됐다. 영화배우를 소개하는데 갑자기 미국의 대통령을 왜 언급했을까? 그가 전 대통령이라는 것은 알지만 영화배우였던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정치가로 살아가는 동안 종종 B급 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꽤 뛰어난 배우였다. 로널드는 경제학을 전공하던 도중 연기에 흥미를 느껴 연예계 생활에 뛰어들었는데 처음 맡은 일은 라디오 방송국의 스포츠 캐스터였다. 그가 처음 배역을 맡은 영화는 ‘러브 이즈 온 디 에어
(1937)’다. 단역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시크릿 서비스 옵 디 에어(1939)’, ‘천사들은 얼굴을 씻는다(1939)’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사실 그는 연기보다는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그는 공수부대의 비전투 대위로 복무하면서 영화를 제작하다가 1947년 할리우드로 돌아와 영화배우조합의 회장을 맡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셜리 템플 -“ 내가 14살 적에 제일 나이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더욱 어려지는 것 같다.”
1928년 4월 23일에 태어난 이 깜찍한 아역배우는 아마 할리우드가 낳은 가장 유명하고 재능있는 어린 스타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따서 만든 칵테일이 있을 정도다. 셜리 템플은 1932년 코미디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숙했고 보조개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단편영화에 주로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그러다가 폭스 영화사의 뮤지컬 ‘스탠드 업 앤 치어’에서 춤을 추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5년에는 ‘아워 리틀 걸’, ‘곱슬머리 아가씨’, ‘꼬마 대령’, ‘제일 어린 반군’ 등 코미디영화에 출연하면서 최고의 스타가 됐다. 그녀는 영화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복잡한 댄스라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1938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흥행수익을 거두는 스타가 됐다. 1940년부터 셜리 템플의 인기는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연기나 외모 등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영향, 대공황 때문이었다. 아역배우로 성공을 거둔 그녀는 성인이 돼 캘리포니아의 사업가 찰스 올든 블랙과 결혼했고 정치에 뛰어들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그녀를 유엔 대표로 임명했고 가나 주재 미국대사, 미국무부 행사를 관장하는 의전장 등을 맡았다.
비비안 리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거야. ”
위에 있는 말은 누구나 다 한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한 말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역할은 그 동안 수많은 배우가 맡았지만 그 가운데 단연코 제일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비비안 리일 것이다. 그녀가 스칼렛 오하라 역에 캐스팅되기까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감독은 스칼렛에 어울리는 완벽한 배우를 찾기까지 2년 반 동안 5만달러의 돈을 쏟아 부었다. 비비안 리는 거의 그 2년 반이라는 기간 끝자락에서 캐스팅
됐다. 당시 그녀는 연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있었다. 이들을 만난 영화 관계자가 그녀에게 배우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그녀는 연기를 시작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녀의 신체적 특징이 스칼렛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그녀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연기 생활 후반부에 결핵에 걸렸고 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남편과도 이혼했고 1967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 실제로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와 그들의 총에 사인해 사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시대까지도 살아있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 큰 키를 가진 서부극의 아이콘이다. 지금은 배우이자 감독까지 겸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매우 잘생긴 배우였다. 조각 미남처럼 잘생겼다기보단 그 어딘가 모를 반항감이 얼굴에 묻어 나오는 그런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그는 25살에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다가 ‘로하이드’ 같은 TV 서부극에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사람은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였다. 그의 영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에 주인공을 맡은 클린트는 영화 출연 이후 슈퍼스타가 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기에 있어서는 항상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인물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세르지오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을 때 똑같은 의상을 세탁도 하지 않고 계속 입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 스캔들에 휘말려보면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게 된다.”
1950년대 영화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중 하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흠 없는 외모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시대극에 잘 어울렸고 상류층 분위기를 가졌다. 그녀가 ‘아이반호’에서 유대인 역할을 했을 때 상대 배우 로버트 테일러가 그녀의 매력 때문에 아랫도리를 감추고 상반신만 촬영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그녀의 남성편력은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고 있었을 당시에도 잘 나타난다. 당시 그녀와 상대 배우 리처드 버튼은 서로 배우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요란하게 연애를 했다고 한다. 콘래드 힐튼 주니어, 마이클 윌딩, 마이클 토드, 데이 피셔, 리처드 버튼, 존 워너
등과 사귀고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그녀는 항상 스캔들 때문에 가십에 오르락내리락 했고 시간이 좀 지나서 영화계에서 물러나 TV 작품에서 활동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