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장군이 13척으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현장인 해남·진도 우수영관광단지 수변무대에 색다른 축제가 올려졌다. 명량대첩의 역사적인 울돌목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세계 원형민속춤 페스티벌에는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스리랑카 등 각국의 민속춤이 저녁노을과 함께 많은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주었다. 명량 ‘춤으로 만나다’ 세계 원형민속춤 페스티벌을 직접 연출한 배우 김진호 씨를 만나 이번 축제를 열게 된 계기와 의미에 대해 들었다.
우리 무형문화유산인 강강술래를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춤들과 함께 무대에 올리셨는데요.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선 이번 축제는 해남과 진도가 경년제로 개최하고 있는 명량대첩 축제(10월 10일~13일까지)속 작은 축제로 우리의 문화유산인 강강술래를 세계화 시켜보고자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해안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민속놀이로 우리 고유의 정서와 리듬이 잘 담겨있는 무형 문화유산입니다. 각 지역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의성어와 몸동작은 어떤 무형 문화유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담겨져 있는데요. 이러한 독특함과 다양성 때문에 지난 2009년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제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일종의 군사 전략으로 강강술래가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이 지역의 강강술래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서 다양한 놀이문화 형태로 만든다면 국내는 물론 세계의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주에 있는 고구려대학교와 제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예술극단 ‘예인방’이 함께 기획하고 연출해서 무대에 올리게 된 겁니다. 아주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연출자로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예산이라든지 그에 따르는 조건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축제는 그렇질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추진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축제에는 스페인, 프랑스, 브라질, 스리랑카 등 4개국이 참가했는데요. 아쉬운 점이라면 전문 단원들이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의 민속춤을 원형형태로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연출자로서 조금 더 짜임새 있게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다만, 가장 한국적인 우리의 강강술래가 세계의 춤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 강강술래가 새로운 관광산업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명량대첩 축제 3일 동안 약 40만 명이 이 지역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축제기간인 3일 동안에 40만 명이라면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축제현장에서 무얼 얻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축제가 그 지역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축제 역시 그러한 측면이 컸다고 봅니다. 물론 축제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역축제는 생산성이 있어야 하고 노고를 씻고 함께 즐기는 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관광객들 역시 그 지역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음식이라든가 특산물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관광객들로 하여금 소비를 이끌어 내야 하는 부분은 부정할 수가 없는 부분이니까요. 아쉬운 점은 현재 우리나라 지역축제는 그런 주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축제가 끝나고 나면 지역 주민들에게 돈만 쓰고 도대체 뭘 했냐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인데요.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들의 책임감과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축제들의 문제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대부분의 지역축제들은 다른 지역의 축제를 베껴 와서 이름만 달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명량대첩 축제 역시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일시적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려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축제는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한 사람이나 관광객 모두에게 감흥이 없습니다.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유수의 축제들을 보면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해 유명한 축제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축제는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가 담겨져야 하고 관광객들에게 다시 찾고 싶다는 감동을 안겨줘야 합니다."
"한국의 축제는 정(情)이 담겨져야 합니다. 농촌에서 한해 농사를 잘 지은 다음 모두가 모여 휴식시간을 가지며 서로를 축하하는 그런 장이어야 하는 것이죠. 아울려 생산성도 가져와야 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역축제들은 정치적 또는 일시적 사회현상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축제가 정치인들의 보여 주기식 성과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좋은 풍광이든가 정감이 가는 풍경들이 아주 많습니다. 해남이라든가 진도만 해도 역사적인 명량대첩의 현장인 우수영 울돌목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곳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이번 축제에서 명량대첩을 재현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들이 형식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다 무언가를 담아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강강술래를 놀이문화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소개해 주십시오.
"강강술래라는 춤을 통해서 어르신들에게는 운동효과를, 가족 간에는 대화의 장을 열어 주는 놀이문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가족 간에 얼굴 볼 시간도 없이 휴대폰을 통해 소통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강강술래라는 놀이문화가 접목된다면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우리들만의 놀이가 있었고 그런 게 정서적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아이들에게는 이런 놀이문화가 없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나 암담합니다. 강강술래가 협동심을 기르고 다양한 형태의 놀이문화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혼자서 하는 놀이가 아니라 서로가 손을 잡고 해야 하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려 강강술래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도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합니다. 이번 축제에서 강강술래가 어린이 놀이문화와 어른들의 문화까지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접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이번 축제의 연출자로서 느낌을 말한다면, 배우가 공연을 끝내고 텅 빈 무대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허전함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물론 함께 해준 분들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열정이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았습니다만, 아쉬운 부분도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잘만 보완해 나간다면 지역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합니다."
"향후 전국에 있는 강강술래를 다 모아서 함께 축제의 장을 열어봤으면 합니다. 또 강강술래 축제가 열리는 축제장에는 전국 8도의 장터를 열어 각 지역의 특산물을 알리는 장이 마련되면 어떨까도 생각해봤습니다. 문화라는 게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만큼 고전이라는 데 머물지 말고 현대적 감각과 한국적인 추임새 등을 시대에 맞게 잘 만들어 간다면 아주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강강술래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강술래와 세계의 원형민속춤을 한 무대에 올리신 소감을 한 마디 해주십시오.
"강강술래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된 것 같아 참 좋습니다. 우리 강강술래가 그렇게 애절한 가락인줄 사실 저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여인들의 입을 통해 푸념처럼 나오는 가사를 들으면서 당시 여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다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밝은 보름달 아래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 빙글 돌면서 애잔한 마음을 달랬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가슴까지 찡했고요. 다음에 이 축제를 열 때는 이 지역의 역사적 배경이나 이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점도 많았습니다만, 세계의 민속춤과 우리 강강술래가 새로운 콘텐츠로서 원형과 엮어지는 부분은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배우, 탤런트, 대학교수, 예총회장 등 참 바쁘게 생활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전문예술 극단 ‘예인방’도 직접 운영하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소개 좀 해주시죠.
"'예인방’은 1981년도 창단한 전문예술법인입니다. 창 단공연작 ‘시집가는 날’을 시작으로 130여 회가 넘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단원이 65명인데 전국의 롤 모델 극단입니다. 대부분의 지역극단들이 동호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인방’은 모두 직업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올해만 해도 25군데 지방순회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예인방’이 창작해서 무대에 올린 작품 중 연극 ‘무어별’은 유인촌 장관시절에 제가 직접 공개서한을 보내 ‘장관이 현장을 직접 돌아보라’고 해서 화제가 됐던 작품입니다."
"당시 장관님께서는 제가 보낸 서한을 보시고 직접 나주까지 내려와 관람을 하셨습니다. 나중에 문화부 장관이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나 쉽습니다. 당시 문화부 장관께서 오셔서 약속했던 창작 문화공간이 내년에 기공식을 합니다. 지난해 삼성에서 두 달간 무대에 올린 연극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인데 국내의 많은 극단 중에서 저희 ‘예인방’이 선택된 것은 그만큼 아이디어가 신선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 삼성그룹의 사장단들이 함께 와서 연극을 관람했는데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은 작품입니다.
연극과 연계한 상품도 개발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상품들인가요.
"잘 아시다 피시 문화콘텐츠만 가지고는 자생력을 길러내기 힘듭니다. 그래서 연극단체들이 어떻게 성장해 갈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합니다. 저는 순수예술에 문화 사업을 연결하는 것을 고려해 오고 있습니다. ‘예인방’에서 연극과 연계한 상품을 소개하자면 ‘김치’라는 연극 콘텐츠로 ‘향숙이네 김치’, ‘무어별’이라는 연극 콘텐츠로 ‘무어치’라는 차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향숙이네 김치’는 소비자에게 신선한 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주문을 받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배우들이 직접 김치를 담가서 소비자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또 무어별이라는 연극을 상품화한 ‘무어차’는 나주가 대단지 재배를 하고 있는 쪽을 녹차처럼 상품화 한 것입니다. 나주는 지난 2009년부터 금년까지 3개년 사업으로 총 사업비 31억 원을 들여 쪽을 향토육성산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나주예총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압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저는 나주에 있는 고구려대학에서 15년 간 교수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가장 많은 애정을 느끼는 곳이 학교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면 지방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제 욕심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지방학생들은 아무리 끼가 있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연극배우가 되거나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기회가 적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지방에서도 얼마든지 배우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안겨주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대스타는 아닙니다만, 멘토로서 교두보역할을 해준다면 가 그만큼 기회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극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30여 년을 연극배우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극을 보면서 연극을 하는 사람이나 기획하는 사람이나 연극정신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극이 갖는 미학이 없고 오직 상업화만 들어 있는 연극은 연극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 연극인으로 꿈을 품게 했던 서울의 대학로 역시 마찬가집니다. 저는 연극하는 후배들에게 연극다운 연극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혼이 들어가지 않은 연극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실력 있는 후배들이 많이 나와서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올해도 마찬가지지만 내년에도 상당히 이슈를 만들어 낼만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서울도둑과 시골도둑에 대한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말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애완견 시장이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만큼 후자의 작품을 통해 애완견 관련 상품도 개발해 볼 생각입니다. 해외시장을 무대로 개발 중인 작품도 있습니다. 과거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엿장수 가위인데요. 우리나라 엿장수 가위 리듬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세계의 그 어떤 악기와도 화음이 잘 맞습니다. 엿장수 가위 소리를 콘텐츠로 개발하게 된다면 다양한 맛의 엿을 외국에 수출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미 특허를 내놓은 상태인데 재미있는 상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향후 꿈이라면 제가 사는 나주에 연극전용 극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어느 일정시간에 종이 울리면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일종의 예배당 같은 거죠. 이 연극전용 극장의 로비에는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것들을 공연과 연계해 상품화해서 판매하면 어떨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 극단이 만든 스카프를 매고 연극을 본다든지 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순수예술이 공연문화상품과 어떻게 접목되는지 성공모델를 만들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나주가 비록 인구 9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연극의 메카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MeCONOMY Novem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