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으로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기술유출 범죄도 고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술 유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날로 커지면서 사법부와 입법부, 행정부가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시 벌금을 15억원 이하에서 최대 65억원으로 올린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방부도 방산기술 국외 유출에 대한 처벌을 기존 ‘20년 이하 징역 또는 20억원 이하 벌금’에서 ‘1년 이상 유기징역과 20억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을 새롭게 공표해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경우 최대 징역 18년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처벌과 양형 기준이 높아져도 기업기술에 대한 경제적·기술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으면 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기업의 재판 참여권이 제한적이어서 제대로 된 기술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대기업의 기술유출을 전담하고 있는 정창원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를 만나 우리나라 기술유출 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Q. 최근 헤드헌터를 통한 국가핵심기술 인력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법은 없나?
헤드헌터만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오히려 없다. 해외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 어떤 영업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취업을 도와주는 형태는 헤드헌터의 업무라 위법성이 없다. 다만 영업비밀 취득 행위나 또는 어떤 회사 직원들을 통째로 빼가기 위해 헤드헌팅을 한다면 업무방해 또는 영업기밀 부정취득, 누설과 관련된 공범으로 기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Q. 기술유출 관련해서 무죄율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런가?
해외 기술유출은 시간차는 있지만 결과는 즉각적이고 치명적으로 발생해 국익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발생시킨다는 문제의식이 있을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법정형을 높이거나 또는 양형 기준을 상향하는 거다. 그래서 최근 부정경쟁방지법이나 산업기술보호법상 국외 기술 유출법 적용은 계속 증가해 왔고 양형기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유출 범죄가 형사재판에서 다뤄지다 보니까 재판부 입장에서 법정형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건의 입증 정도를 높게 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또 기술유출은 화이트 컬러에서 일어나니까 범죄 전력도 없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다른 회사 가서 일하는 행동으로 보이니 훨씬 더 기록을 꼼꼼하게 보게 된다. 또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다보니 보수적, 소극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죄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다.
Q. 기업기술에 대한 전문 가치평가 기관도 없다는데?
그렇다. 특허의 경우 특허심판제도나 특허법원의 소송 제도를 통해 권리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반면에 영업 비밀이나 산업 기술 같은 경우에는 이를 판단해줄 전문기관이 없다. 그러니 판사가 유출된 정보 자체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해야 되는데 그게 어렵다보니 제대로 된 처벌이 나오기 힘든 게 현실이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기업 기술을 전문적으로 평가해줄 기관이 필요하다.
Q. 재판 시 기술평가를 피해 기업에서 하면 되지 않나?
재판정에서 그 기술의 가치나 영업 비밀성, 산업기술 해당성을 설명하는 주체는 검사다. 또 해당 기술 전문가는 피고인(기술유출 당사자)인데 재판에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증언하니까 기술을 폄훼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피해 당사자인 기업이 설명해야 하는데 현재 기업은 재판 절차 참여에 한계가 있다. 최근 법원에서도 이 부분에 많은 고민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최소한 피해자 변호사가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Q. 최근 기술유출에 대한 양형 기준도 높아지고, 벌금이나 손해배상 금액도 상향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에 더해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어떤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술 유출 범죄가 발생하는 주요 동기는 결국 경제적 이익이다. 그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보다 범죄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가 훨씬 더 크다면 기술 유출 범죄를 막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물건의 일부에 핵심기술이 쓰인 경우 현재 법에는 그 부분만큼만 몰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로 전체 물건 중 기술이 얼마만큼 쓰였냐 여부를 판단하는 게 너무 어려운 실정이다.
명품 상표를 도용한 물건 적발 시 물건을 통째로 압수하는 것처럼 영업기밀이 유출돼 만들어진 분리 불가능한 전체적인 물건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면 실질적으로 몰수 추징이 가능하게 된다. 이게 실제 자유형보다 훨씬 무서운 거다. 실형의 경우 2,3년 살다 나오면 되는데 몰수추징의 경우 갑자기 회사가 통째로 문을 닫을 수 있는 상황이니까 기술유출 예방이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