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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억을 품고 있는 도시 '군산'

아픔 속에 핀 꽃 핀 문학세계


서울에서 약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군산의 겉모습은 소박하다. 그러나 그 소박함 뒤에 담긴 암울한 아픔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선 군산. 5월 관광주간을 맞아 ‘희로(喜怒)의 기억을 품고 있는 도시’ 군산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경술국치 이후 시작된 식민시대, 과거 우리 민족은 얼과 혼을 빼앗기고 35년을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1차 세계대전 즈음 일본은 급속한 자본축적으로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했다. 폭발적인 도시 인구 유입은 식량난과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를 불러왔다. 그들은 일본 내 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이 후 쌀 수탈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군산은 예로부터 조선에서 손꼽히는 농사 경영지였다. 군산 주변 농토가격은 일본의 10분의 1수준이었는데 수익률은 4배가 넘었다. 일본에 호남평야의 미곡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일본은 군산에 항만시설을 만들었다. 호남지방에 일본인 농업 경영자가 몰려들었다.


군산에는 당시 ‘수탈과 착취의 역사’를 온몸으로 안고 있는 잔재들이 많다. 과거의 아픔이 여전히 군산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시인 고은과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낳은 예체능의 도시 군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든 것이 지역 특유의 한(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처럼 군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영화 촬영지로도 사랑받는 가장 단단한 이유로 작용한다. 저마다 다른 기억,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는 군산을 가보았다.


“ 군산은 아픔의 도시입니다. ”


(구)군산 세관으로 가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는 군산을 ‘아픔의 도시’라 표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에 피폐했던 삶과 현실을 군산을 돌아다니면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구)군산세관이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인 (구)군산세관은 대한제국(1908) 시절 지어진 당대 유일한 세관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국내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며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 세관의 발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료로도 쓰인다.


(구)군세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하얀색으로 외관을 덧칠한 근대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은 본래 고리대금업으로 유명했던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었던 곳이다.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금융기관이었다. 동시대 은행 건축의 일반적인 양식에 따라 폐쇄적인 외관으로 건설되었다. 부분적으로 인조석을 사용해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 옆으로 가보자. 군산 근대건축관이 자리해 있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었던 곳으로 1922년 신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은행으로 지금은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쓰인다. 일본인 건축가가 지었다는 이 건물은 지붕모양을 일본 장군의 투구모양을 본뜬 우진각 형식을 갖추었다.


조선은행 뒤편에 있는 부잔교. 부잔교는 수면의 높이에 따라 움직이는데, 일본은 1934년 이곳을 통해 무려 810만석의 쌀을 수탈해 갔다고 한다. 당시 전국 쌀 생산량이 1천630만석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양의 쌀이 군산 한 곳에서만 반출된 셈이다. 당시 조선의 식량난을 짐작케 한다.



가장 관광객이 많았던 장소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히로쓰 가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야시키 형식을 본으로 한 대규모 주택이다. 포목점과 소규모 미곡유통을 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2층 목조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신흥동 일대가 군산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 지역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듯 이 건물은 그에 맞는 고풍스러움과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내부 구경이 가능했으나, 세월호사건 이후 안전이 최우선 화두로 설정되면서 현재는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ㄱ자로 붙은 2채의 건물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조그마한 철문이 있다. 문화해설사는 철문을 가리켜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재난은 화마(火魔)로 인한 재산·생명 피해였다”고 말한 뒤 “불에 타지 않는 철의 속성 때문에 일본인들은 수탈한 재물과 각종 증빙서류를 철문에 몰래 넣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아마 지금도 이곳 어딘가에 일본인이 숨겨놓은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음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동국사’.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기도 한 동국사는 1913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 사찰은 한국 전통 사찰과는 다른 일본 에도 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랐다. 한국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단청이 없다. 사찰 옆에는 범종 하나가 있다. 이 범종은 우리가 아는 범종과 달리 크기가 아주 작다.


이를 보고 관광객들을 자전거에 태우며 유적지 설명도 곁들이는 군산시 소속 안내자가 “일본은 범종 제작기술이 뛰어나지 못해 종을 크게 만들 수 없었다”면서 “동아시아 최고수준을 자랑했던 한국 범종의 제작기술을 일본인들이 매우 부러워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국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반출되었다 돌아온 환수 문화재와 불교의 근현대사 불교사료를 함께 만날 수 있는 ‘환수 문화재·근현대불교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특별전은 5월31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므로 꼭 한 번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이처럼 군산에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인들의 위세와 지위를 나타냈던 많은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민족이 겪었을 고통과 피폐한 삶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 과거를 너무 외면하고 사는 것은 아니었는지 군산으로의 시간 여행은 여러 고민을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아픔 속에 꽃 핀 문학세계


‘만인보(萬人譜)’로 유명한 고은 시인의 고향은 군산이다. 군산의 골목길 어디를 걸어도 고은 시인의 시
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동국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고은 시인의 걸어온 삶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탁류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은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 선생은 군산을 자신의 소설에 이렇게 표현했다. 채만식 선생의 대표작 ‘탁류(濁流)’는 군산을배경으로 1930년대의 식민 조선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채만식 선생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채만식 문학관도 군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군산 곳곳에는 대한민국의 시대별 풍경이 사진으로 전시돼있다. 사진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1998년에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당대 최고 배우였던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진사와 구청 도로교통과 여직원의 짧지만 긴 여운을 내포한, 시작과 동시에 끝을 준비하는 담담한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영화의 주 배경이었던 ‘초원사진관’이 바로 군산에 있다.


영화 속 그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있는 ‘초원사진관’은 실제 사진관이 아니었다고 한다. 차고를 고쳐서 만든 영화 속 세트였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계약에 따라 다시 철거했다가 이후 군산시가 다시 재현했다. 초원사진관 내부에는 영화를 추억하는 각종 소품과 사진이 진열되어있다. 극 중 타인을 상대로 사진을 찍기만 했던 정원(한석규)이 처음으로 피조물이 되어 사진 찍히는 장면이 있다. 초원사진관은 이를 본떠 영화주인공처럼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영화를 다시 한 번 추억하고자 하는 2~30대 젊은이들이 이곳에 몰렸다.


영화 속 여행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곳, 바로 ‘경암동철길마을’이다. 2014년 개봉한 ‘남자가 사랑할 때’의 명장면 배경이 되어줬던 장소다. 주인공 태일(황정민)과 호정(한혜진)이 첫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시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총 길이 2.5km인 이 철길은 2007년도까지 실제 기차가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데 철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철길마을의 또 다른 묘미는 입구에 있는 ‘노란집’이다.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 집은 그때 그 시절 불량식품들을 팔고 있다. 어릴 적 먹던 쫀드기와 쥐포를 직접 연탄불에 구워 먹을 수 있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리 길지 않은 철길을 따라 걸으며 아날로그의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맛의 도시’ 군산


군산에 가서 안 먹으면 서운하다는 음식이 바로 ‘짬뽕’이다. 전국 5대 짬뽕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복성루’가 군산에 있다. 오후 2시 점심시간을 넘겨서 방문했지만 그 인기는 상상초월이었다. 짬뽕을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이를 증명한다. 2시간의 기다림은 기본이었다. 면보다 해물이 더 많은 복성루의 짬뽕은 군산의 바다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했다. 복성루는 오후 4시까지만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을 꼭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군산에서 빠질 수 없는 식도락 코스 중 하나가 1920년 우리나라 최초로 개업한 빵집 ‘이성당’이다. 이성당의 단팥빵과 야채빵은 군산에 들르면 꼭 먹어봐야 할 필수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하루 전에 예약하면 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 맞은편에는 ‘여흥상회’라는 츄러스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인 츄러스는 시나몬 향과 어우러져 달달한 맛을 자아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츄러스의 환상적인 궁합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초원사진관 맞은편에 있는 ‘한일옥’은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역 주민들이 공인하는 맛집으로 따끈한 국물과 풍부한 건더기가 한 끼 식사로 그만이라고 귀띔했다.군산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gunsan.go.kr]를 방문하면 주제별 군산여행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도보여행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꼭 참조하길 바란다.


기자가 다녀본 ‘군산’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오묘한 도시였다. 빼곡한 아파트 사이에 있는 일
본식 건물 사이를 걷고 있으면 마치 100년의 자취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픔의 도시’에서 ‘문화의 도시’로, 또 ‘맛의 도시’로 진화를 거듭하는 군산의 다채로움은 매력적이었다. 눈부신 5월에 도로 하나, 건물 하나가 오롯이 풍부한 기억을 품고 있는 군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MeCONOMY Magazine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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