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은 26일 소속 의원들이 추진해 온 비(非)법조인의 대법관 임명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과 대법관을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철회했다.
이날 민주당 선대위는 해당 법안을 제출한 박범계 의원과 장경태 의원에게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선대위는 조기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해당 법안들로 논란이 더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철회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자격 없어도 대법관 시대 올까...조기대선 부담에 민주당 일단 철회
애초 민주당이 내세운 대법관 자격을 대폭 완화한 법안은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자격에 대해 20년 이상 법조 경력을 명시하고 있다. 박범계 의원은 여기에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도 대법관에 임용될 수 있도록 확대하자고 명시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함초롬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상근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대법원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두겠다는 전략”이라며 “법이 시행될 경우 김어준도 대법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아닌가. 이게 진짜 사법개혁인가”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사법부 개혁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개별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준비하면서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법개혁의 밑그림을 만들어 두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대법관 임명 조건에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 공공기관이나 법인의 법률 사무에 종사한 사람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이상으로 재직한 사람 중에 임용하게 돼 있다.
대법관 임용 자격 완화는 민주당이 사법개혁 방향으로 꼽는 대법관 증원과 대법원 구성 다양화와 맞물린다.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동시에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 법관 위주의 대법원 구성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은 사법개혁의 시대적 흐름은 타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도구화가 되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일로 번지게 된다”며 “비(非) 변호사를 법관으로 증원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뿐더러, 장기적으로 사회·정치적 합의를 거쳐 풀어나가야 문제다”고 진단했다.

●곪아 터진 사법부 신뢰도 바닥 수준... 대법관 증원만이 해결책일까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과 대법원 정원을 최대 100명까지 증원하는 법안은 회부됐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자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한 것이 대선 개입이라고 보고 있다. 특검법은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대법관·재판연구관에 대한 부당한 압력 행사, 증거 인멸, 12·3 계엄 개입 등 9가지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나아가 민주당은 이날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30명 (김용민 의원안)이나 100명(장경태 의원안)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대법원 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할 수 있게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도 회부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4심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 증원 및 헌법재판소원 도입 법안에 관해 “국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라며 “신중하고 치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대법관들이 너무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지 않나. 업무 부담을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데, 대법관을 늘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법관 업무량이 과도한 것은 사실이다. 2022년 기준 대법관 1인당 연간 최대 5000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한 상황인데 증원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그나마 체계가 비슷한 미국은 약 70건, 일본 약 2000건 정도에 달한다.
실제 한국의 인구 100만명당 대법관 수는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는 상위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는 하위권에 해당했다. 경제적 위상이 비슷한 국가 중에서는 높은 편이지만 유럽 국가가 다수 포진된 OECD에서는 다소 뒤처진 셈이다.
일각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처럼 대법관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단, 유럽권은 부별 심리 중심으로 대법원이 운영되는 경향성이 있어 전원합의체 중심인 국내 체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과 교수는 “독일식 전문법원체제는 재판권 자체를 나누기 때문에,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노동법원처럼 전문법원 형식의 특별규정을 두거나 참관원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을 통해 법관들과 함께 재판에 참석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 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석태 전 재판관은 “전원합의체는 독일처럼 1부, 2부 식으로 나누면 된다”라며 “형사, 노동 등 분야별로 나눠서 하면 된다. ‘전원합의체 마비’는 동의하기 쉽지 않은 주장”이라고 말했다.
●사법개혁의 어려움...검수완박과 루즈벨트 '코트패킹'의 교훈
일각에서는 만약 민주당이 차기 대권을 차지한다면, 특정 정당이 입법·행정권은 물론 사법권까지 장악하게 돼 삼권분립을 훼손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대법원장이 임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권분립 우려에 대해 강금실 민주당 중앙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은 “이재명 후보는 사법제도 개혁은 장기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향후 국민주권 정부가 수립되면 국민과 소통하며 전문가들, 법원,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내부 목소리를 모두 폭넓게 듣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사법개혁 시도에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패한 후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한 경험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 하다.
당시 법안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고, 임기 내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가 권력기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하지만 검찰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선택적 정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수사기관 개편이라는 거대 공약 속 ‘디테일’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에는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검사가 어떻게든 기소나 불기소로 종결 처리를 했지만, 바뀐 제도에선 검사가 보완수사를 지시해 사건을 경찰로 돌려보내면 검찰에선 사건이 처리된다. 또한 수사는 경찰, 통제는 검찰 기본 구조에서 감시 기구의 공백은 늘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경찰은 증가하는 사건에 인력난에 허덕이고, 검찰은 수사권이 줄어들면서 경찰 송치 사건을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많이 쓰게 됐다. 형사부 검사들의 업무는 과중하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직접 수사가 가능한 특수수사 영역 등으로 인력이 더 많이 배치되는 문제도 있다.
전 정권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검수완박’의 문제를 지적하며 윤석열 정권은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을 추진했다. 그러나 거물급 정치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다시 열어뒀을 뿐 일반 형사사건의 세부적인 불편 사항은 아직도 수정되지 않았다.

●사법부는 누구를 심판하고 있는가, 권한과 견제의 저울
차기 정부가 수사기관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주요 정당 대선후보의 수사부문 관련 공약을 정리하면 ‘검찰 수사권 폐지’ 또는 ‘공수처 폐지’가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주도의 대법관 100명 증원을 루즈벨트식 ‘코트패킹(대법관 증원 법안, Court Packing)’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90년 전, 193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뉴딜 정책’을 잇달아 통과시켰다.
루즈벨트는 “대법관들은 지금 미국 경제가 말 타고 마차 끌던 헌법 제정 시절 수준인 줄 알고 있다. 대대적인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전 정권이 임명한 ‘보수 우위’ 대법관 9명은 “루즈벨트의 뉴딜 경제개혁 법안 모두 위헌”을 선고해 버렸다.
루즈벨트 집권 1기 4년 동안 뉴딜정책은 모조리 ‘위헌’을 판결 했지만, 루즈벨트는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2차 뉴딜’을 내걸고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이후 루즈벨트는 재집권한 지 3개월 만에 1937년 2월 사법절차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연방대법원은 3주를 버티지 못했다. 중도 보수파 대법관 1명이 마음을 바꾸면서 연방대법원은 3건의 뉴딜 법안은 합헌 판결이 선고된다.
결과적으로 뉴딜 법안이 통과되면서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코트 패킹’은 실패했다. 비록 대법관 증원에는 실패했지만, 그 이후 대법원은 진보적 여론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루즈벨트의 규제 개혁에 순응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늙은 대법관’ 상당수가 퇴임했다.
한 나라의 사법개혁 미국의 예시처럼, 행정·입법을 장악해도 쉽지 않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검찰 권한의 경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경찰에 완전히 몰린 수사 권한을 누가 통제할지에 대해서도 답이 있어야 한다”며 “검찰이 해온 인권 관련 기능들을 어디에서 맡을지도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국운 교수는 “결국은 수사를 통제해야 하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것이 문제다”며 “만약 차기 정부에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해 ‘기소청’화 된다면, 그 권한이 경찰에게 이첩되면서 권력 남용, 인권 침해 등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수사 절차법’을 우선 개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과 경찰에 대한 견제는 내부규정을 만들어 법률로 명시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시민단체나 변호인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법무부가 규정 위반에 대한 감시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범죄자를 심판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했다. 12.3 계엄과 대법관 조희대의 ‘사법 쿠데타’를 목격한 국민은 의문이 생긴다. 한국의 사법부는 국민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고 그들을 지배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 세력’이 아직도 고개를 들고 활개 치는 2025년, 민주주의 모범국가에서 정치 후진국이 된 한국, 지금은 사법개혁 아래 ‘범죄자를 심판해야 국민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