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통상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수평적 해외직접투자(HFDI)가 국내 첨단 제조업의 생산 및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2일 발표한 ‘한국의 수평적 해외직접투자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고기술 제조업의 수평적 해외투자가 투자 이후 1~3년 사이 국내 생산은 평균 0.05%, 수출은 0.16%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수평적 해외직접투자는 현지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형태로, 글로벌 시장에 직접 대응하고 관세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수직적 해외직접투자는 생산공정을 분업하는 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해외직접투자 중 수평적 투자의 비중은 2010년 52.5%에서 2024년 62.8%로 상승했다. 특히 미국 투자 비중은 같은 기간 63.0%에서 87.3%로 급등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 미국의 제조업 육성정책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기지 확장,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투자,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설립, 현대자동차그룹의 전동화 설비 확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SGI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수출입은행의 해외직접투자 통계를 활용해 산업별 패널자료를 구축하고, 패널 고정효과모형(Fixed Effect Model)으로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수평적 해외투자 1% 증가 시 고기술 제조업의 생산은 투자 1년 후 0.04%, 2년 후 0.06%, 3년 후 0.0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식품, 섬유, 목재 등 중저기술 제조업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보고서는 “첨단 제조업은 해외 공장이 설립되더라도 국내의 R&D 및 기술 지원이 지속되면서 국내 생산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수출에 대한 영향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고기술 제조업은 투자 후 1~3년간 평균 0.16% 수출이 증가했으며, 중저기술 제조업도 같은 기간 평균 0.11% 수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현지 생산이 본사의 수출 증가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수평적 해외직접투자가 단순한 현지 대응을 넘어 본사의 글로벌 시장 확대에도 긍정적 효과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수평적 해외직접투자가 국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SGI는 “생산 증가와 달리 고용에서는 지역이나 산업 특성과 무관하게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박가희 SGI 연구위원은 “해외 현지 생산 확대가 국내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산업 공동화’ 우려는 과도하다”며 “오히려 첨단 산업 중심으로 국내 생산과 수출 활동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GI는 향후 통상 환경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전기장비, 전자부품, 자동차, 화학 등 고기술 제조업의 경우 ▲R&D 세액공제 확대 ▲핵심기술 내재화 지원 ▲해외 생산과 연계된 인센티브 신설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본국 산업 생태계 유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해외 설계·R&D 집중 ▲해외 법인과의 기업 내 무역(Intra-firm Trade) 강화 ▲공급망의 지역 다변화와 현지 조달 확대 등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GI 박양수 원장은 “해외법인으로부터의 배당과 이자 수익이 본국으로 환류될 경우, 본원소득수지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새로운 경제구조로의 전환 관점에서 수평적 해외직접투자를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