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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문제는 준설(浚渫)이야 바보야

에코경제학(7)

 

총 길이 2만9,078km, 전국 3,832개의 우리나라의 강과 하천은 비만 오면 쉽게 물이 넘쳐 주변 저지대는 수해를 입고, 도심의 강과 하천의 고수부지가 쉽게 물에 잠기곤 한다. 강의 상류에 다목적댐을 건설해 홍수 때는 물을 가두고 가뭄 때는 물을 공급하다는 건설취지가 무색하다.

 

비가 많이 오면 댐이 무너질까 댐 문을 열어야 하고, 가뭄이 들면 물이 부족해진다면서 댐 문을 막는다.

 

이처럼 댐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100여 년 전부터 민둥산과 요즘 건설현장 등에서 빗물과 함께 쓸려 내려오는 토사와 퇴적물이 강과 하천 바닥에 쌓여 하상고(河上高)가 올라가 있어 빗물이 강이나 하천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막혀서 저지대가 물난리를 겪고, 가뭄이 들면 물 부족에 시달린다.  

 

소금 300가마를 싣고 다니던 우리나라의 강(江)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강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완만해 소금 200~300가마를 실은 강배가 한강을 통해 단양으로, 낙동강을 통해 안동으로, 금강을 타고 신탄진 등 내륙 깊숙이 왕래할 수 있었다.

 

강을 운하처럼 이용하던 우리나라였다. 그렇지만 하상 퇴적물로 인해 수심이 낮아지고, 물을 통제하기 위한 댐이 건설 되면서 배가 다닐 수 없게 됐고, 무엇보다 수량이 줄어 들어 강과 하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정(自淨)능력을 상실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이나 하천의 땅, 산자수명한 우리나라였다. 고향을 흐 르던 그런 강과 하천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보다 심각한 장면은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현격하게 줄어들거나 바닥이 말라버리는 건천(乾川)이 돼가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청계천 구하기 


지금으로부터 628년 전인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은 도성(都城) 안에서 나오는 하수(下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북악산(北嶽山)·인왕산, 낙산, 남산 등 네 개의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모여 흐르는 청계천(개천)의 자정(自淨)능력을 이용해 하수를 정화해 한강으로 흘려보냈다.

 

실제로 동고서저의 지형인 우리나라의 강은 대부분 동에서 서로 흐르지만 인공이 가미된 청계천은 다른 하천이나 강의 방향과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10.84km를 흘러 지금의 한양대학교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수한 뒤 ‘한강’으로 유입한다.  

 

그런데 처음의 의도와 달리 청계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 자행된 난개발처럼 당시 도성 주변의 산지 개간이 극성스럽게 일어나면서 비만 오면 상류에서 사석(沙石)과 토사, 그리고 한양 도성사람들이 버린 각종 오물이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이런 퇴적물로 인해 청계천 바닥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비가 많이 내렸다하면 청계천의 물이 범람했다. 주변의 수해 피해는 물론이고 한양 전체가 물난리를 치러야 했다. 해결책은 청계천과 지천에 쌓인 퇴적물을 퍼내는 방법뿐이었다. 


태종 때부터 시작된 청계천 준설...영조, 정조를 거쳐 고종 때까지


태종 11년(1411년) 개거도감(開渠都監)을 설치되고 장정 5만 명을 동원해 청계천과 지천(支川)을 준설했다.

 

이후 조선 21 대 왕인 영조는 준천사(濬川司)를 만들어 본격적인 청계천 준설과 양안(兩岸)을 석축(石築)으로 쌓고, 유로를 변경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의 뉴딜 정책을 시행했다.

 

선왕의 뜻을 받든, 제22대 왕 정조의 준설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정조 원년(1777년) 7월이었다. 정조는 준천을 게을리했다며 준천사 (濬川司) 당상관인 구선복(具善復)에게 엄중한 벌을 내렸고, 도청(都廳) 윤수인(尹守仁)을 곤장 쳐서, 도태시키라고 명했는데 그 이유를 정조는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는 오래 가물어 당초에 장마로 흙탕물이 내려갔다고 말할 수가 없는데도 듣건대, 경진 지평(庚辰地平)-경진년에 세운 수표 (水標)의 비각(碑刻)에서 거의 한 글자도 보이지 않게 (퇴적물이 쌓여있게)됐다고 한다.

 

선조(영조)께서 비를 세운 것은 어떠한 성의(聖意)였겠는가? 그런데 수거(修擧)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러한 극도에 이르게 된 것이니, 이는 또한 내가 당구(堂構, 아버지가 하던 사업을 아들이 이어받는 일)의 책임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정조의 말대로 당시 청계천의 바닥에 퇴적물이 쌓여 비각의 수위표시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정조는 4년 뒤에 개천이 준설이 되지 않았다면서 똑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어도 쏟는 듯 내리지 않아서 측우기(測雨器) 의 수심도 서너 치에 지나지 않았는데, 새벽에 수표(水標)에서 보고한 것을 보면 표 위로 물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근래 천거(川渠)가 막혀도 전혀 준설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승정원일기 1권을 차지할 만큼 논란이 거셌던 조선시대 청계천 준설


왕은 하천 범람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천 퇴적물을 준설하지 않고는 하천 범람을 막을 수 없고, 무엇보다 생활하수를 정화할 수 있는 물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준설을 담당한 준천사 등 일선 현장에선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하천 준설을 하려면 엄청난 인원이 동원돼야 하고 -실제로 백성들이 농사철에 바쁜데 준설공사에 동원하면 “된다, 안 된다”를 놓고 조정에서 엄청난 찬반이 이어졌다.

 

매일 매일의 왕정 전반을 기록한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기록한 승정원일 기 3,045책 가운데 ‘1책’이 청계천 준설에 관한 논의가 차지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준천사가 임의대로 준설공사를 실시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청계천처럼 토사로 메워진 우리나라 강과 하천 바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준설(浚渫)편을 쓴 저자이자 「맑은 물 되찾기 운동연합회 물 정책 연구소장」을 역임했던 최용택 옹은 “준설(浚渫)이란 항만·항로·강 등의 수심을 깊게 확보하기 위해 물 밑의 토사를 파내는 토목공사”라며 “우리나라는 (준설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자원확보, 수질개선, 수해방지 등을 위해 반세기가 넘게 물 관리 대책에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지금에 와서 투자효과를 보면 물 문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고 비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댐, 수중보, 하구 둑 건설로 약 100억∼120억t의 수자원을 더 확보했는데도 갈수기(渴水期, 우리나라는 겨울 철에 해당함)때 물 부족이 염려되고, 수질 개선을 위해 정화 시설을 확대하고 분리하수관, 총량규제 등 각종 조치를 취 했음에도 물이 부족한 강과 하천은 자정(自淨)능력을 상실 하고 있다.

 

더구나 수해 방지를 위해 댐을 건설하고 시설을 늘렸는데도 홍수가 나면 범람 우려와 침수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강과 하천 바닥이 조선 시대 청계천처럼 토사로 메워졌기 때문”이라며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리 수리시설을 더 늘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준설하면 1조 5천억 톤의 지하수가 강과 하천으로 유입돼 맑은 물 유지


정상적인 강이나 하천은 하류로 흐르면서 수량이 증가한다. 그러나 토사로 메워지면 하류에서 수량이 감소하거나 심한 경우 바다로 물이 흐르지 않는다.

 

남한의 지하에는 약 1조5,000억t으로 추정되는 지하수가 있다. 큰 댐이 없었던 시절, 갈수기에도 한강 낙동강 금강에 푸른 물이 흐르고, 규모가 작은 하천에도 많은 물이 모였던 것은 강바닥이 지하수위 보다 월등히 깊어 지하수가 강과 하천으로 흘러 들어왔던 까닭이다.


그는 “토사 퇴적으로 강바닥이 주변 지하수위보다 높아지면, 지하에 많은 물이 있어도 강과 하천으로 흘러 들어올 수 없고, 오히려 댐에서 물을 방류해도 지하로 스며들어 강물이 마르게 된다.

 

이 결과 갈수기에는 물 부족과 수질악화 현상이 나타나고 홍수 때는 범람 우려와 침수피해가 발생한다. 일단 강과 하천이 토사로 메워져 황폐하면 댐건설, 정화시설 확대, 빗물펌프 등의 시설을 늘려도 물 문제를 해소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황폐한 강과 하천을 원래대로 회생 시켜야 강과 하천에 지하수가 유입돼 수량이 크게 늘어나는 법”이라며 “준설이 가장 경제적인 물 관리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준설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그렇다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고 항상 맑은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강과 하천을 준설해 온 우리나라의 치수정책이 준설 기술이 향상된 현대에 들어와서 오히려 준설을 기피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2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댐을 건설해 강물을 통제하려고 했다. 둘째, 강이나 하 천바닥에 퇴적물이 쌓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준설을 하면 물길이 바뀌어 기존의 둑을 무너뜨리거나 다리의 교각 이 뿌리 채 뽑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수(洪水)때 불어나는 수위(水位)보다 높이 둑을 쌓아왔지만 갈수록 퇴적물이 쌓이면서 강이나 하천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들어 비가 많이 왔다하면 기존의 둑을 위협해 범람 위기를 맞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천 바닥은 (퇴적물이 쌓여) 비가 조금만 와도 넘쳤다.

 

원영섭 변호사(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중앙대 건설대학원 겸임교수)는 2020년 8월에 쓴 미래진단의 한 칼럼에서 그런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그의 글에 따르면, 4대강 사업은 하천의 단면적을 넓혀 하천 자체의 물받 이 그릇 역할을 확대시킨 것으로 준설을 통해 하천의 바닥을 더 깊게 파고 하천 가장자리의 퇴적층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물받이 그릇의 능력을 늘린다는 점에서 4대강 사업과 댐 은 완전히 동일하다. 물론 한 번의 준설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강이 흐르는 동안 퇴적물들은 계속 쌓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강과 강의 지천인 하천 바닥을 준설해야 하며 그 준설 과정이 용이하도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강은 자연 상태로 두면 상류에서 내려오는 흙, 모래 등이 이동하며 강바닥에 쌓이게 되고 이런 퇴적물들에 의해 강바닥의 높이가 올라가면서 강물이 옆으로 넘치는 ‘범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무리 강 옆으로 제방을 쌓아도 강바닥의 퇴적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근원적인 해결이 될 수 없고, 강 인근 지역은 상습 수해지역이 돼버린다. 그러면서 강을 자연 상태로 둔다는 말은 치수를 하지 않고 홍수를 방치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는 환경단체들이 물새가 알을 낳는 등의 친환경 장소로 예찬하는 모래톱은 홍수 때 수위를 상승시키는 강바닥 퇴적물에 불과하다고 쓴다. 그러니까 4 대강 사업의 핵심은 하천 바닥을 깊게 파내면서 물 저장 공간을 크게 해 하천 범람을 막는 것이었다.

 

섬진강은 환경단 체의 반대로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되면서 수해피해가 집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의 ‘보(洑)’들은 개폐식 수중보로 하천의 단면적을 넓히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보(洑)는 미니 댐처럼 물을 가두거나 내보내는 역할을 하며 하천의 수량을 유지하며 퇴적물이 하류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하천의 바닥이 높아지는 현상을 방지한다.

 

이 과정에서 보에 걸려 있는 퇴적물을 정기적으로 준설하는 것은 필수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준설된 퇴적물들은 건설자재로 재활용한다. 보를 상시 개방하면 퇴적물들이 그대로 하류로 흘러가 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천의 단면적은 유지하자고 주장하며 보가 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4대강의 보를 없애자는 일각의 주장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4대강 사업 때 지방하천 준설을 하지 못한 실책


요즘 섬진강을 포함한 홍수 피해는 4대강 사업이 미처 진행 되지 못한 지역과 지류, 지천에 집중돼 있다. 그에 따르면, 10 여년 전, 2011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지천 사업비 용을 정부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고, 당시 박준영 전남지사와 강운태 광주시장도 찬성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준설이란 원래 강의 하류에서부터 시작해, 그러니까 아래쪽에서부터 위쪽으로 가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대강을 준설하며 지방자치단체의 관할인 4대강으로 흘러드는 지방하천과 소하천도 준설해야 한다. 여기에 20조 원 정도의 중앙정부의 예산을 투입해서 지자체 예산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지류와 지천 정비사업을 진행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정치권과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지천 및 지류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치수의 과학이 정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만 것이었다.

 

만약 당시, 조선시대 청계천 준설에 대한 승정원의 논쟁 끝에 준설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는 사실(史實)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릴 수 있었다면 준설에 대한 오해가 많이 해소됐을 것이다.  

 

한강 9곳의 준설 퇴적물을 쌓으면 축구장에 5층 높이


(사)한국환경준설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토양 유실(流失)율은 연간 1헥타르(=3025평)당 32톤이다. 이는 OECD 평균인 11톤의 약 3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매년 하천, 항만 등에서 유지준설, 매립을 위한 해상준설, 골재 채취 등을 위한 소규모 하천준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매년 강과 하천으로 들어오는 퇴적물을 처리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형식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2018년 서울 연구원이 발표한 한강 준설토 관련 보고서에 의하면, 한강의 준설은 9개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안양천 하구, ▲홍제천 하구, ▲여의하구, ▲욱천하구, ▲한강 하류, ▲탄천하구, ▲중랑천하구, ▲잠실수상택시 승강장, ▲뚝섬 윈드서핑장을 포함한 기타지역으로, 2008년부터 2017년 까지 연평균 11만 1700㎥의 퇴적물을 준설했다.

 

이렇게 부분적으로라도 준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강과 지천이 범람하고, 고수부지는 쉽게 물에 잠기고 만다. 그렇게 부분적으로 나온 퇴적물이지만 그 부피는 엄청나서, 축구장(면적 7140㎡)에 쌓는다면 5층 아파트 높이인 15.7m에 도달한다.

 

그러니 한강으로 흘러드는 17개 지천(支川)까지 제대로 준설 한다면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부피가 될 것이다. 

 


장충체육관 주변은 청계천 준설토로 생긴 언덕

 

준설 기술이 좋아진 요즘과 달리 조선시대에 청계천과 그 지천의 준설 공사를 하려면 2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원돼야 했으며, 준설토를 처리하는데 골치를 썩였다.

 

요즘도 준설토 처리는 골칫거리다. 1789년 청계천 준설토를 천변의 민가에 쌓아둔 것이 드러나 준천사 당상이 처벌된 사례가 있었다.

 

결국 청계천 준설토는 흥인지문(동대문) 옆 청계천에 건설됐던 5개의 수문으로 된, 오간수문(五間水門)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산기슭 나지막한 곳에다 운반해 차례로 쌓아가기로 했다.

 

지금의 장충체육관 주변 언덕은 그때 당시 청계천에서 준설한 흙을 운반해 쌓다 보니 생겼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제2의 한강 르네상스 격인 지천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강 위주로 개발돼 활용되지 못한 하천 인근 수변공간을 회복해 수(水) 세권이라는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천 르네상스는 시내 곳곳에 흐르는 하천 인근 수변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서울 25개 자치구에는 한강 본류 외에 지천과 하천, 실개천 등 70여개의 물길이 지나간다.

 

오 시장은 “아파트 단지 내에 물길(도림천 지류)이 들어 가는데 정말 환상적인 그림이 나왔다”며 “서울의 큰 밑천인 동네의 작은 물길을 활용하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연환경을 만 들 수 있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의 「지천(支川) 르네상스」 가 성공하려면

 

하지만 서울 전역은 땅바닥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기 어려운데다 한강과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류(支流)는 수 미터 높이까지 퇴적물이 쌓여 하상(河上)이 높아진 상태라서 비가 일시에 많이 오면 하천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막힌 물이 주변 저지대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더구나 이렇게 높아진 하상 때문에 하천 주변에 있는 지하수가 유입될 수 없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바닥이 말라버리는 건천(乾川)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수를 정화한 물이든,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든, 수돗 물이든 어느 물이든 상류에서 흘려보내야 하천에 물이 흐르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이나 안양천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청계천이나 안양천을 자연하천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 청계천 준천사의 역사에서 보듯이, 홍수가 나건, 가뭄이 들건 관계없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하려면 원래 하천의 깊이까지 준설을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치수의 과학이 정치적 계산으로 재단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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