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2017년 최저임금이 6천470원으로 결정됐다. 결정과정에서 파행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올해는 유난히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하게 드러냈다. 108일의 심의기간, 14회로 역대 최다 전원회의를 거치는 동안 노사양측은 단 한 번의 수정안도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결정권은 또다시 공익위원 손으로 넘어갔다. 합의와 협의를 전제로 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있어서의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봤다.
매해 8월5일까지 결정해야 하는 다음연도 최저임금 결정시기가 다가오면 노동계·경영계뿐만 아니라 정재계·시민단체·중소상공인 등 거의 전분야에서 최저임금 결정에 본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특히 올해는 20대 총선과 맞물리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3~4년 안에 최저임금 1만원 또는 거의 근접하는 액수로 높이겠다는 관련 공약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공약이 무색하게도 2017년 최저임금은 7월16일 새벽 올해 6천030원 대비 440원(7.3%) 오른 6천470원으로 최종의결됐다. 이번에 의결된 최저임금안으로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336만여 명(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기준)으로 추정되며, 영향률은 17.4%다. 각 정당은 포퓰리즘·민심달래기용 공약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7년 최저임금, 경영계·노동계 모두 불만족 … 최저임금 결정방식 문제제기
마치 매년 테이프를 또다시 재생해내듯 되풀이되는 최저임금 결정과정은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다. 올해도 14차까지 가는 전원회의 속에 근로자위원들은 퇴장했고,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사용자 측 위원들이 퇴장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직후 노사 모두 불만족을 표출하며 최저임금 결정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양대노총은 성명을 통해 “사용자 측 요구안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하는 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이는 두 자리 수는커녕 전년도 8.1%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인상율”이라고 비판했다. 양대노총은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인상억제를 위한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의 담합구조에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13차 전원회의에서 퇴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통령이 100% 임명하는 허울뿐인 9명의 공익위원들이 있는 한 정상적인 최저임금 심의는 진행될 수 없고, 편파적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영원히 최저임금 최소인상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도 불만을 표출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경총은 “비록 사용자위원이 제시한 최종안으로 의결되었으나, 이는 공익위원들의 지속적인 증액 요구에 따라 제시된 것으로 사실상 공익위원안과 다름없다”며 “어려워진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7%가 넘는 고율 최저임금 인상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우리 경제는 대내적으로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브렉시트발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까지 떨어지고 있다”며 “이런 현실에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최저임금 근로자의 86.6%가 일하고 있는 30인 미만 사업장이 매년 2조 5천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7.3% 인상된 6천470원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현실적인 지불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기대 이상의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는 그동안 최저임금이 ‘사업 종류별 차등 적용’과 ‘적정 수준의 결정’이 이뤄지기를 주장해 왔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불능력 한계를 벗어난 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범법자로 내몰리는 상황이 우려된다”며 “앞으로 최저임금의 급속한 증가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업종·연령별 차등적용,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불합리한 현행제도의 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108일 동안 소모적인 논쟁, 결정은 결국 공익위원 몫 … 노사 모두 한 차례도 수정안 제시 無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보면 현행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심의기간은 법정기간인 90일을 지나쳐 108일을 넘겼고, 전원회의는 14회 열려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노사는 공익위원안이 제시되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수정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합의와 협의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20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치권과 각종 시민단체의 힘을 받은 노동계와 브렉시트·조선업계 구조조
정 등 대형악재를 끌어안은 경영계는 팽팽하게 맞섰다. 13차 전원회의가 시작되면서 공익위원들은 “심의 종료기한이 6월28일에서 18일이나 경과했음에도 수정안조차 내지 않고 있고, 법정 고시 시한(8월5일)도 임박했으므로, 7월16일까지는 최저임금이 반드시 결정돼야 한다”며 공익위원 심의구간(3.7%~13.4%)내에서 노사가 수정안 또는 최종안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으나, 근로자위원측은 여전히 “수정안이나 최종안을 제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근로자위원측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구간 근거 어디에도 최저임금노동자의 삶을 지탱해 줄 가구생계비를 반영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공익위원들은 최후통첩으로 노사 최종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고, 노사 어느 쪽이든 제출안이 있을 경우 그 안에 대해 표결할 것을 공지했다. 이에 사용자위원측은 최종안을 제출했지만, 근로자위원측은 최종안 제출없이 표결방침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과정은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않으면 결국 공익위원이 처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여실히 보여줬다. 노사는 공익위원이 문제라고 비판하지만, 심의기간 동안 수정안을 한 번도 제출하지 않고 결국 공익위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노사 한목소리,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 필요
합의와 협의를 전제로 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파행을 거듭하고, 사실상 공익위원안이 최저임금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면서 최저임금위원회 무용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노사가 타협에 여지를 두지 않아 2010년 이후 매년 한쪽의 퇴장과 함께 공익위원안으로 표결을 통해 결정해 왔다.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최저임금 협상이 해마다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토론문화와 의지의 문제가 더 크다”며 “우리 사회가 한층 더 발전하고 성숙해져 가는 진통의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 결정방식과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양대노총은 7월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위가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게 회의과정을 공개하고, 공익위원 선출방법을 개선해 공익위원이 제대로 된 중재역할을 할 수 있게 제도개선 투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만난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ILO에서 권고하는 노사 당사자 및 3자주의는 전제로 하되, 제3자가 정부든 공익이든 공정하고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현재 9명 모두 정부가 위촉하는 시스템에서 최저임금위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소속으로 두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소속 문제에 대한 고민과 공익위원의 위촉방식을 국회·노사·시민사회 단체가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익위원안이라며 비판했던 한국경총도 현행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하고 있다. 한국경총 최종진 전문위원은 “현행처럼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데이터나 노사 의견을 청취하고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실제로 OECD에 가입한 많은 국가에서도 협의 후 정부가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선 가능할까
최저임금위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제도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국회에서는 홍영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월17일 “현재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은 수명을 다했다”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의 틀을 국회로 가져오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최저임금위원회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을 ‘최저임금위원회의 무책임 구조’에서 찾았다. 박지순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특수성은 별개로 하고, 최저임금 결정문제도 전국단위의 임금교섭이라고 볼 수 있는데 노사가 유독 최저임금위원회만 오면 극단적인 무책임한 교섭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노사 모두 교섭 이후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단적인 교섭의 결과로 합의 결렬 이후 사실상 공익위원들에게 결정권을 주고 나서 공익위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현행 제도의 보안장치로 공익위원들의 최후적·보충적 역할론을 꺼냈다. 박 교수는 “노사가 끝까지 책임을 지고 결정을 끝내도록 하고, 노사가 끝까지 ‘결정을 못하겠다’ 하고 인정하고 나서는 경우, 공익위원이 노사의 위임을 받아 중재자로서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노사와 공익위원 모두에게 일정부분 책임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최저임금 제도개선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행과 같이 사실상 최저임금을 합의나 협의의 산물로 보고자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사 양측의 견해가 형해화되거나 무의미해지는 방식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선택적 중재방식으로 이른바 공익은 노사 양측이 주장 중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어느 일방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전한 바 있다.
최저임금제도 개선 시급
1986년 12월31일에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30여 년 가까운 세월동안 큰 변화 없이 시행돼 왔다. 결정구조 방식뿐만 아니라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노동환경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최저임금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 요구의 목소리도 높다. 지역·업종·연령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도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계속 문제제기 되고 있다.
최저임금위가 계속된 파행을 맞이하면서 지난 7월20일 최저임금위 공익위원인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이 사퇴를 선언했다. 공익위원이 사퇴를 선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336만여 명(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 기준)이고 영향력은 17.4%라고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인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제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모습이다. 제도 전반에서도 회의공개·최저임금 심의구간 산정방식 법제화 등 관련 논의도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속속 관련법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