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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쌀알에 들어있는 고향의 맛

6년 전인 2016년 국제고고학회는 충북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나온 볍씨 11톨을 방사선탄소연대로 측정해 본 결과 1만3천~1만6천 년 전의 볍씨로 확인하고 벼농사의 기원을 한국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세계적 고고학 교과서인 ‘고고학 개론서(Archaeology: theories, methods and practice)’에 쌀의 기원을 한반도로 못 박았다. 하지만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고 대개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중남부의 프레즈노에서 생산되는 향기 나는 쌀


 

최근 뉴욕타임스는(2023년 10월 6일 금요일 opinion) 우리 조상인 동이족과 유사한 몽족(묘족)이 미국으로 망명해 논농사를 짓는데 그들이 어떻게 향기 나는 쌀을 생산하는지 소개했다. 이 신문은 머나먼 조상으로부터 전래 된 몽족의 볍씨가 돌연변이를 거듭하며 미국 현지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한반도가 쌀의 기원이라는 사실과 몽족의 쌀농사가 한반도로부터 전해져 중국남부와 동남아시아의 산간 지역으로 퍼졌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쌀농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최고의 쌀과 밥맛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들의 기사를 통해 알아보자.  

 

9월 내내, 라 씨의 전화벨이 끊이지 않고 울려댔다. “(귀찮은 듯) 또 무슨 일이야?” 그녀가 수화기에 대고 대꾸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올해 남은 기간에 전화를 건 고객들은 마트에서 산 라 씨의 쌀을 먹어보고 만족할 것이라고 말이다. 라 씨의 쌀을 유통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올가을 역시 어김없이 외부인들은 라 씨의 쌀을 사 먹겠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가 농사를 지은 쌀을 꼭 사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 대는 거였다. 

 

동남아시아 산악 지역에 사는 몽족(묘족)은 올해 바로 추수한 그런 쌀을 느펠이트시압-대충 번역하면 햅쌀이라고 하면 되겠다. 하지만 그 햅쌀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식품 마트의 신선미가 떨어진 식재료가 판치는 세상에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법석을 떨며 이 쌀을 사고자 하는 이유는 이 햅쌀 자체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 때문이다. 

 

 

라 씨는-본인의 성만 밝혀주기를 원했다-쌀알이 달린 벼를 모닥불 위에서 굶는다. 그때 쌀알에 들어있는 당분이 열에 의해 변형되면서 팝콘처럼 기름지면서 맛있고 따뜻한 버터 같은, 호박파이처럼 풍부하고 강한 양념 맛의 놀라운 향이 쌀에서 풍겨 나온다.

 

하지만 사실 그 향의 매력은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는 좀 더 복잡한 것이다. 이 쌀은 그들의 쌀이다-몽족의 쌀. 그 볍씨는 누구라도 기억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수세대에 걸친 선조 세대들이 그 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가늠하기 어려운 훨씬 이전부터 몽족 사람들과 같이 이동했다. 


라오스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몽족, 라 씨가 뒤뜰에 심은 볍씨 2알


 

그녀가 태어난 나라인 라오스에서 그리고 아마도 베트남과 중국에서, 라 씨의 선조들은 그녀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의 자기 농장에서 벼를 태웠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쌀을 태워 맛을 조제했을 것이다. 원래 그렇게 한 것은 지난해 쌀이 모두 소진된 가운데 그렇다고 해서 햇벼를 수확하기에는 아직 이를 때 고통스러운 보릿고개를 끝내려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가정마다 한 끼 분량만큼 아직은 덜 익은 벼 쌀을 수확했다. 그러나 벼 쌀은 아직은 푸른색이 감도는 햇벼라서 먹을 수 없으니, 먹을 수 있게 만들려면 불에 구워야 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든 불에 구운 쌀을 먹기 전에 일정 분량을 따로 모아 그들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첫 수확의 기쁨과 다가올 한 해의 안녕을 빌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주식이 떨어진 상태로 몇 달을 보낸 뒤에 드디어 구운 쌀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입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쌀의 향기가 났고, 그 향기는 사랑을 받는 맛이 되었다. 그 맛 속에는 새로운 한 해의 풍요로운 약속이 들어 있었다. 

 

오늘날 프레즈노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보릿고개는 존재하지 않는다-쌀은 1년 365일 언제나 살 수 있다. 그러나 프레즈노에 사는 여성들이, 라 씨의 햅쌀을 솥에 안칠 때 주방에 가득 번지는 그 향기는 그들에게 또 다른 자양분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 그 향기는 밥을 지을 때 꼭 나와야 필요 조건이다. 

 

라 씨의 선조들은 그녀 이전에 셀 수 없는 세대에 걸쳐 쌀농사를 지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라오스에서 도망쳐 나올 때 가지고 나올 만한 물건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나온 건 전무(全無)했다. 

 

1975년에 라오스에서 미국인들이 사라진 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라 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된 전쟁이 끝나고 미국과 동맹을 맺었던 몽족과 다른 종족들은 그대로 남겨져 새로이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잔혹한 보복을 당하고 있었다. 

 

 

라 씨 가족은 파괴적인 권력을 피해 보려는 노력으로 나라의 북동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 매달려 생활을 했다. 대신 그들은 한때 그들이 알고 있던 그리고 사랑하던 거의 모든 것이 천천히 줄어드는 것을 감내했다. 

 

1979년에 라 씨는 태국에 있는 도피처를 찾아 산을 넘어 도망쳤다. 그녀가 가져온 것은 버리고 온 논에서 얻은 쌀과 밥을 지을 솥으로 빽빽하게 찬 배낭이 전부였다. 마침내 그녀가 메콩강을 건너 자유를 찾았을 때는 그런 그녀가 이전에 살았던 자취마저 남겨두고 떠나와야 했다. 

 

(절대다수의 몽족은 라오스 내전에서 파테트라오의 공산주의 군대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1975년 파테트라오가 라오스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 수만 명의 몽족이 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고 대부분은 미국, 호주, 프랑스령 기아니, 캐나다, 남아메리카로 망명을 신청했다. 몽족은 동이족과 가장 유사한 민족이다. 그들의 국기는 우리나라 태극기처럼 가운데 아래에 태극처럼 둥근 원이고, 태극기의 괘처럼 상하좌우 구석에 괘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무늬로 되어 있다)

 

라 씨만 라오스에서 도망쳐 나온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10만 명이 넘는 몽족이 미국에 정착했다. 1981년 10만 명 중의 어떤 사람이 라오스에서 가져온 12개의 볍씨를 어찌어찌해서 북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고, 그녀는 이 볍씨를 뒤뜰에 뿌렸다. 겨우 2개의 볍씨가 살아났다.

 


자연 현상에 따라 대비하는 눈물겨운 볍씨의 생존 


 

그녀는 이 볍씨를 다음 해에 심었다. 이런 식으로 40년의 세월이 이어지면서, 볍씨도 그 볍씨를 심는 사람들도 불어났다. 오늘날 입소문을 타고 몽족 농부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작은 논이지만 미국의 경우 노스캐롤라이나와 아칸소,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에서 이들은 쌀농사를 짓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직하게 보이는 우편물과 휴대용 가방으로 볍씨가 라오스로부터 밀수되었다. 그 볍씨는 라오스 출신 농부들이 미국 땅과 기후에서 시험 재배를 해가면서 테스트했다. 많은 쌀의 유형이 실패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번식에 성공하면, 그 볍씨를 저장해서 다음 해에 심었다. 이렇게 몇 해를 계속하면서 그 쌀의 형태가 이루어져 햅쌀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몰랐다. 

 

프레즈노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고향으로 떠나가고 농장이 조용해진 뒤에 라 씨는 농장 헛간을 떠나 논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녀는 남편이 만든 작은 낫(나이프)-판판한 나무판을 반원 모양으로 자른 뒤 반원의 둥근 가장자리를 깎아 매끄럽게 하고 반원의 지름에 면도날을 끼워 만든 것-를 낫처럼 사용해 벼 이삭을 베는 것이다. 

 

그녀는 이 연장의 둥근 부분을 손바닥 안에 단단히 붙이고, 벼의 이삭까지 손을 올려 가운뎃손가락으로 벼의 이삭 아래를 둥글게 말아 쥐고 간단하게 면도날로 휙 잡아채듯 절단한다. 이 벼 이삭은 굽기 위한 것이 아니라 팔기 위한 것이다. 

 

그녀가 벼를 베는 과정에 절대로 복잡한 과학이 들어있지 않다. 그녀는 가장 예쁜 볍씨-그녀가 보기에 쌀의 순수성을 유지해 온 것들-를 모았다.

 

순백, 진보랏빛을 가진 볍씨였다. 만약 그녀가 논에서 돌연변이나 이상한 형태의 이삭이 보이면-이건 다른 종을 창조할 수 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벼 쌀이다. 그녀는 재빨리 그런 볍씨를 훑어뒀다가 완전히 다른 종의 쌀로 창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음 해 다른 볍씨와 구별해서 묘종(苗種)으로 키울 것이다. (이어서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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