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 선수로서는 사상 최초로 핸드볼 최고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드볼 최고 리그에서 뛴 그는 코리아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열리는 23일 서울 송파구 SK핸드볼 경기장에서 은퇴식을 갖는다.
한국 구기 스포츠는 그동안 야구, 축구, 배구 등에서 많은 선수가 최고 리그를 누볐지만 윤경신처럼 ‘세계 최고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 리그에서 뛴 선수를 찾기 어렵다.
숭인초교 시절 특별활동시간에 핸드볼을 만지게 된 게 첫 인연을 맺은 윤경신은 운동선수로서 갖춘 체격때문에 당시 농구, 축구, 배구 관계자들의 스카우트 공세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것은 인기종목이 아닌 비인기 종목 핸드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핸드볼은 1995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르게 됐고 외국 클럽 팀의 스카우트 공세가 본격화됐다.
경희대 졸업을 앞둔 1995년 독일분데스리가 굼머스바흐 팀에 스카우트된 윤경신은 세계의 무대에서 진가를 보여주며 자신이 소속한 분데스리가에서 여덟 차례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독일 진출 첫해 연봉은 1억2000만원. 하지만 한때는 연봉이 13억 원을 넘길 정도로 최고 대접을 받았다.
독일 언론은 그를 토레아(한국의 골잡이)라고 불렀고 2002년에는 세계핸드볼연맹(IHF)은 윤경신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윤경신은 외국에서 활약하면서도 대표팀이 부르면 주저하지 않고 한국을 대표해 국제대회에 나섰다.
한국 남자 핸드볼이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아시안게임에 6차례 출전해 5차례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도,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5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도 윤경신은 그 중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