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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동길을 걸었다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덕수궁 돌담길부터 이어지는 정동길. 역사의 숨결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고층빌딩 속 답답함과 숨 막힘은 어느새 사라진다. 옛 건물 위로 유리로 된 현대식 고층빌딩이 틈틈이 보이지만 그조차 더욱 정동길에게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줄 뿐이다. 키를 훌쩍 뛰어넘은 옛 고궁의 돌담길에서부터 정동길을 따라 걷다보면 간간히 지나가는 번쩍이는 자동차마저 이질감이 들고 어색한 건 나뿐일까. 여유롭던 7월 어느 날 정동길을 걸었다.

 

서울이 메가시티임을 상징하는 것만 같은 왕복 8차선을 넘어선 거대한 도로가 지나는 서울광장 옆 인도를 지나다 대한문 앞에서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울광장 일대는 한 달에도 몇 번이고 찾는 곳이 건만, 덕수궁의 높은 돌담길이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처럼 이날따라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고민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고궁과 거대도시 사이를 관통하는 덕수궁 돌담길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막아서며 높게 치솟은 덕수궁의 돌담은 안쪽의 궁이 아닌 오히려 바깥쪽의 돌담길을 위해 만들어진 듯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돌담 안쪽의 고궁을 생각해 보자니 현대와 과거를 가로막아선 돌담의 키가 이날따라 높아 보였다. 높은 돌담과 더 높은 가로수는 그것 자체로 도시와 고궁과 별개로 또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평일 오후 돌담길을 거니는 연인과 친구들, 그리고 돌담에 기대 잠시 쉬고 계신 머리 희끗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빠르게 흐르던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했다. 돌담과 수천년의 나무로 둘러싸인 터널을 빠져나오자 1897년에 지어진 정동교회가 100년 전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근대유산 1번지 정동

 

높은 돌담과 가로수로 이뤄진 터널을 지나자 작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한 원형교차로가 나왔 다. 그 뒤로는 100년 된 정동교회가 예상치 못한 시간여행으로 이끌었다.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정동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한옥마을처럼 우리 전통가옥이 아닌 여기저기 한 세기를 지나온 오랜 서양식건축물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개항 이후 정동에는 1882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러시아·프랑스·독일 등 하나둘씩 외 국공사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서양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런 공관들을 중심으로 각국의 선교·의료·교육 기관들이 함께 들어섰고, 정동은 서울 내에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띄고 있 다. 정동은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뜻 깊은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며, 지금도 근대유 산 1번지로 불리고 있다.

 

 

최초의 근대 중등교육기관 배재학당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배제공원이 자리하고 그 위로 1916년 세워진 배재학당 동관이 옛 모습으로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배재학당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가 18858월에 세운 최초의 신식학교로 처음에는 영어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 1887221일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하사 받았다.

 

현재 정동의 배재학당은 동관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관은 현재 고덕동으로 이전해 복원됐고, 다른 건물들은 배재공원을 만들면서 철거됐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관은 현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시 정동길로 들어서기 위해 돌아내려오는 길에 한눈에도 수십년은 돼 보이는 간판하나가 어색하게 걸려 있었다. 한자로 정동클럽’ Self-Service 라고 적힌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간판은 어떤 건물보다도 내가 근대유산 1번지라 불리는 정동의 상징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 영업은 이뤄지고 있지 않았고, 간판만이 역사의 증인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정동극장, 최초의 근대식 국립극장

원각사정신 계승

 

정동교회의 오른쪽으로 정동길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 최초의 근대식 국립극장인 원각사의 정신을 계승해 지어진 정동극장이 나온다. 원각사는 1908년 신극과 판소리 전문 공연장으로 지어졌던 원각사1914년 화재로 소실됐다. 이를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95년 개관한 정동극장은 한국 전통공연예술의 대중화, 세계화, 명품화를 미션으로 전통예술무대(2000)’ 연중 상설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춘향연가’ ‘배비장전등 우리 고전을 무대화한 전통공연을 선보였으며, ‘가온’ ‘전통ing’ 등 창작공연을 통해 전통공연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모습을 띄며, 각국 대사관들의 중심인 정동에서 펼쳐지는 우리 전통공연은 그 자체로 세계화가 아닐까.


 

구 신아일보사 별관의 붉은 건물

 

정동길을 따라 올라가다 짙은 붉은 벽돌의 이국적인 건물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간판에는 구신아일보사별관이라는 간판과 신아기념관이 함께 걸려 있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덕수궁 전각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미국기업인 싱어미싱회사(Singer SewingMachine Company)가 매입해 신축한 건물로 1930년 지하 1,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1930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철근콘트리트 구조로 된 건물로 당시의 건축구법 및 구조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근 대건축기술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신아일보사에 매각된 뒤, 1975년 지금과 같은 4층 건물로 증축됐다. 간판은 아직 신 아기념관으로 남아있지만 현재는 여행사 등 일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한편 신아일보는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경향신문에 통폐합됐다. 당시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에 의해 실행된 언론통폐합은 정치권력이 집권과 통치를 위해 언론을 폭력적으로 통제한 대표적인 예로 남아있다.

 

 

한국 여성교육의 효시, 이화학당

 

정동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이화백주년기념관이 나온다. 이화학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물로 2004년에 지어졌다. 현재는 이화여고의 멀티미디어 교육관으로 공연장인 화암홀을 비 롯해 이화아트갤러리·음악실·개인연습실·기도실이 있으며 과학실습실과 컴퓨터실 등이 있다. 원래 이 터는 이화학당이 사용하기 전에 손탁호텔이 들어섰던 자리다. 손탁호텔은 1층에 구한말 조선 개화파 중심의 사교모임 이름으로도 유명한 정동구락부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들어선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여성교육의 효시이자 여성지도자를 많이 길러낸 것으로 공적이 큰 이화학당은 1886년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가 설립한 여학교로, 1887년 명성황후가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로 1897년 종래의 한옥교사를 헐고 붉은 벽돌로 2층 양관이 지어지게 된다. 출신으로는 한국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활란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비롯,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터,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 하란사, 한국 최초의 중등학교 여성경영자 황메례 등이 있다.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서울의 화려하고 높은 빌딩속 높은 돌담 뒤로 옛 고궁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던 정동의 풍경이 높은 가로수 사이사이에서 숨 쉬고 있었다. ‘최초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정동에서 1km 남짓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를 거닐며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벌였다. 세월이 꾸며놓은 하나의 역사 테마파크 공원에 온 듯 했다. 옛 건물은 모습만으로도 과거를 상상하게 했고, 그 안에 하나하나 담겨진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다큐멘터리자 소설이었다. 빠른 시간의 흐름속에서 지치고 힘들어 조금은 느리게 사색하거나 걷고 싶을 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정동길이 있었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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