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시가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최초는 아니다. 이미 2013년 경기 부천시를 시작으로 서울 노원구, 성북구 등에서 생활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시행을 발표한 직후 대전 유성구와 인천 부평구도 잇따라 생활임금을 도입하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동참함으로써 타지자체도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생활임금은 무엇이고, 문제되는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서울시가 광역자치단체로는 최초로 생활임금제를 시행했다. 올해 시급은 6천687원으로 확정했다. 서울시는 주거비·교육비·물가상승률 등 실정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시급 6천687원은 2015년 최저임금인 5천580원보다 1천107원 많은 금액이며, 1인 근로자의 법정 월 근로시간인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월급은 139만7천583원이다. ‘서울형 생활임금제’ 적용 대상은 올해(2015년)는 1단계로 본청 및 투자·출연기관의 모든 직접채용 근로자다. 시가 예산편성을 위해 실시한 실태조사(시급 6천582원 기준)로 추정한 적용 대상규모는 266명으로, 2015년 생활임금 수준(6천687원) 적용 시 대상인원은 다소 늘어난다. 향후 실태조사 및 해당부서의 사업 시행 과정을 통해 최종 인원이 확정되면 2015년 1월1일자로 즉시 소급 적용돼(생활임금 조례 부칙 제2조)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은 보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생활임금 산정을 위해 서울연구원과 함께 2013년부터 약 1년간 주거비, 교육비, 물가상승률 등 서울의 실정을 반영한 ‘3인 가구 가계지출 모델’을 개발했다. 박문규 서울시 일자리 기획단장은 “올해 공공부문에 우선 적용 후 제도개선과 홍보를 통해 민간영역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서울시민이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동시에 자주적인 경제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생활임금제 도입은 서울시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3년 경기 부천시를 시작으로 서울 노원구와 성북구 등 자치단체에서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부천시의 경우 노사민정협의회 틀을 통해 생활임금 조례제정 방안을 논의해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받는다. 서울시가 시행을 발표한 이후 대전 유성구와 인천 부평구에서도 생활임금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생활임금제도에 서울시가 동참함으로써 전국지자체로 확대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생활임금은 무엇이고, 문제되는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최저임금의 대안으로서 생활임금
생활임금제란 간단히 말하면 근로자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임금 노동자의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한 제도로 최저선의 생계비인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즉, 근로자들의 주거비·교육비·문화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수준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정책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생활임금 제도는 1994년 미국 볼티모어 시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서 시작됐는데, 이는 당시 볼티모어의 ‘빌드(BUILD)’라는 단체가 최대 공공근로자노조인 AFSCME(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와 연대해 벌인 생활임금운동의 결실이었다. 현재 140여개 도시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2001년에 런던 동부지역에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캠페인을 벌인 이후 생활임금 캠페인이 본격화 됐다. 비로소 2006년 런던에서 생활임금을 준비해 이후 매년 생활임금액을 제시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는 올림픽과 관련해 사업에 참여한 모든 업체에 생활임금을 적용해 현재 런던 생활임금제에 250개의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빈곤층 확대와 삶의 질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대안은 법정 최저임금제도다. 최저임금은 저임금·미조직 노동자의 생활보호와 최저생계 보장을 위해 국가가 임금결정에 개입하는 제도인데 최저임금 수준은 각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대체로 유럽대륙 국가들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으로의 개념이 강한 반면,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들처럼 최저임금이 사회안전망으로서 최저생계의 하한선으로 기능하는 유형도 있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생활임금 논의가 활성화된 이유는 이처럼 최저임금이 사회안전망 수준으로 낮기 때문이다.
생활임금 개념 논란, 4월 국회처리도 난망
생활임금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과의 문제, 자치단체장 권한 침해 여부, 지방자치법의 위반 논란 등 여러 논란이 발생했다. 이에 생활임금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은 지난해 1월 생활임금의 근거가 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야당은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활임금제’를 쟁점화 했다.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임금수준을 현실화해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근로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하도록 하는 취지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생활임금의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용역 근로자에 대해 실시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례가 없다”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야당은 근로자의 실질적인 생계유지에 필요한 생활임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여당은
개념이 모호하다며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논의한 끝에 애
초 최저임금법 제24조의2로 신설하려던 법안에서 최저임금의 효력 조항인 제6조 후문에 ‘종전의 임금
수준을 낮추어서는 아니 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한 임금을 보
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었다.
하지만 결국 3월 2일 법안소위에서 새롭게 추가되는 ‘적정한 임금’에 생활임금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두
고 갈등을 벌이면서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생활임금
이라는 개념이 규정이 돼야 적정한 임금에 생활임금이 포함되는지 여부가 결정이 된다”며 “개념 자체
도 규정이 안됐는데 함부로 해석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계속해 “현재 생활임금이 높은 지
자체는 최저임금보다 30% 정도가 높은데 '적정한 임금'에 생활임금이 들어간다고 하면 다음부터는 ‘생활임금 보장하라’는 주장을 할텐데 아직 우리 정부는 감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야당 간사는 “최저임금법상에서 최저임금이 있고 ‘그 이상의 적정임금을 받게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 속에 적정임금이라는 조항이 있다”면서 “‘최저임금 이상의’ 무엇이 표현과 관계
없이 최저임금 이상의 것을 받는 것은 그 적정임금의 영역에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지난번 소위에서 이 논의를 적정임금으로 했던 게 명백한데 그걸 지금 뒤집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공은 다시 4월 임시국회로 넘어갔으나 현재로선 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월17일 김무성, 문재인 대표와의 청와대 3자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생활임금을 법제화하기보다는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금방이라도 통과될 듯 했던 개정안은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간접근로자까지 확대할 수 있나
국회에서 생활임금의 개념이 문제시 되고 있다면 현장에서는 적용범위 문제가 남아있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는 근로자는 생활임금제를 바로 적용하면 된다. 하지만 민간위탁·용역 근로자에 대한 명확한 실행 방안이 없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서울시는 일단 현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민간의 위탁·용역 근로자들도 2016년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생활임금대상을 순차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문제되는 부분은 ‘지방재정법’과 ‘지방자지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위반여부다. 경기도 부천시가 생활임금과 관련한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법제처가 ‘자치법규 의견제시’라는 방식으로 부천시의회에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법제처는 “먼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으로 법인·단체 또는 기관 등의 소속 근로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지방재정법 제17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개인에 대한 보조에 해당해 위법할 수 있다”고 알렸다.
또 “법인·단체 등 소속 근로자에 대해 법정 최저임금을 초과하는 생활임금 지급을 강제하는 것은 계약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임금액을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한 바 있다. 서울시는 논란을 피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오현석 서울시 노동정책과 주무관은 “서울시는 공공사업 원가에 생활임금을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조’를 활용하겠다는 얘기다. 법 내용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행정자치부장관과 협의해 단위당 가격을 조사·공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오 주무관은 행정자치부장관과 협의를 통해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간접근로자까지 확대하고 나면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민간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생활임금제를 적용하는 우수 기업을 ‘서울시 노동친화 기업’으로 인증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또한 자치구 생활임금제 확산을 위해 생활임금 수준과 적용방식에 대한 서울시 표준안을 마련해 자치구에 권고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생활임금제를 우려하는 시선도 많다. 여야는 근거법령을 마련하는데 기본 개념에서부터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최저임금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자체에 인건비도 늘면서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생활임금제는 전국 80여개 시·군·구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발(發) 생활임금제 바람이 어디까지 불지 귀추가 주목된다.
MeCONOMY Magazine April 2015